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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님이 제일 정상인 같아요!

[젤리의 제국]

by Changers

며칠 후 새롭게 한 분이 합류하셨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시면서 양국의 게임회사가 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셨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정 OO입니다.


대부분의 커리어를 게임업계에서 쌓았는데,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게 많아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들 정 OO 님 잘 챙겨드려라. 그리고 호칭은 부장님이시다.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정 부장님!” X 9



정 부장님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셨고, 오랫동안 일본에서 일하셨다.


말씀하시는 어휘들이 일본 스러웠다.


“이건 어떻게 기동이 되는 건가요?”


“기동이요?”


“아! 작동이요.”


“아, 이것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아, 아리가… 아니 감사합니다.”



갑자기 글로벌 회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정 부장님은 익숙하지 않은 산업의 회사였지만, 빠르게 적응하시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다.


나와 다른 PM 1명은 정 부장님께서 빠르게 적응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서포트를 해드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찬찬히 하나씩 알려드렸다.


밥을 먹을 때마다 그의 일본 생활을 들었다.


나는 일본에 몇 번 가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조금씩 이해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에게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그런 날이었지만, 그에게는 뭔가 기분이 나쁜 날이었던 것 같다.


사무실에 출근한 그가 나를 불렀다.


그에게 다가갔더니 그는 갑자기 복서로 돌변했다.


그리고 내 왼쪽 팔뚝을 주먹으로 때렸다.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해서 방어할 겨를이 없었다.


“야! 내가 너 일 똑바로 해라고 했지?”


“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


“아니, 내가 그제 지시한 일 똑바로 처리해라고 했잖아.”


“네, 근데 그거 지금 사정이 있어서 아직…”


“넌 또 핑계 대는 거냐? 도대체 언제쯤 핑계 대지 않고 내가 시키는 일을 남들처럼 빠르게 처리할래.”


“그건 말입니다…”


“또 핑계냐? 또 남탓할 거냐? 너 그렇게 하면 평생 변화하는 게 없어?


맨날 제자리걸음이고, 남들보다 항상 뒤처질 거야.”



너무 억울하고 할 말이 많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이다.


눈과 귀가 닫힌 상태의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는 지금 눈과 귀를 닫고, 야생의 맹수처럼 나에게 돌진한 것이다.


그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을 푸는 대상이 나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바라본 정 부장님이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의 표정이 보였다.


잠시 후 정 부장님을 모시고 휴게실로 갔다.


“많이 놀라셨죠?”


“네, 좀 많이 놀랐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은 어느 날 제가 빌미를 제공한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데요.”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오늘이 그런 날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며칠 후,


그와 정 부장님이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봤다.


뭔가 기분이 싸했다.


‘설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다들 모여봐. 정 부장님께서 자신이 원래 가려던 길을 가신다고 하셨어.


한 달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해주신 정 부장님께 손뼉 쳐드려.


다음 주까지 일하시기로 했으니 마무리 잘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렴.”


“네, 알겠습니다.” X 9



저녁 시간이 지난 후 정 부장님이 퇴근하셨다.


그가 우리를 불러 모았다.


“사실 아까 너네들한테 말 못 했는데, 아무래도 정 부장님 역량이 많이 부족하신 거 같아.


내가 성장시켜 드리겠다고 모셔왔지만, 저렇게 1달 만에 나가신다고 하면 내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아마 정 부장님은 앞으로도 성장하시기가 쉽지 않으실 것 같아.”



굳이 나가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도 그는 정 부장님이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까 그런 거 같다.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두 사람의 표정 모두가 좋지 않았던 것을 보고,


나는 그가 아주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를 정 부장님께서 하셨을 거래 짐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 부장님과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어서 티타임을 요청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제가 뭘 고생한 게 있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알려주시려고 지미 님이 고생하셨죠.”


“아닙니다.”


“사실 저는 지미 님이 이 회사에서 제일 정상인 같아요.”


“네? 왜요?”


“지난 1개월 동안 저를 사람처럼 대해주는 분이 지미 님뿐이었거든요.


그런 지미 님께 폭력 쓰는 것을 보고 대표님께 건의를 했더니 저보고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네, 정말요? 에헤이… 저 때문에…”


“아뇨. 지미 님이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그러세요. 저는 어떤 이유였든 간에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미 님도 얼른 이곳에서 나오셔서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함께 식사 한번 하시죠.”


“네,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후배가 퇴사를 했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며칠 후 그가 말했다.

“너네들 일한다고 고생이 많다.
다들 요즘 기분도 별룬데 워크삽이나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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