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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전 날, 매운 거 드시지 마세요.

[젤리의 제국]

by Changers

그의 여자친구는 내 대학교 후배이자, 함께 사업을 하려고 준비했던 팀원이었다.


그런 그녀를 내가 소개해줬다.


그는 종종 그의 여자친구와 다퉜다.


왜 다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다툰 날에는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뭔가를 해야 했다.


아주 간단하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가서 영화를 보지만, 뉴욕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며칠 전에도 그는 다투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이런 나쁜 x 같으니라고.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것도 모르고 감히 나한테 이래?”



그가 그의 여자친구를 욕할 때마다 의아했다.


‘지들끼리 싸움을 왜 우리에게 다 알려주는 것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여자친구 욕을 하면 속이 시원한가?


그렇게라도 마음을 풀고 싶은 것인가?’



“너네들 일한다고 고생이 많다. 다들 요즘 기분도 별룬데 워크샵이나 다녀오자.”


“너무 좋아요. 준비하겠습니다.” X 9


우리는 워크샵 대신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걸 말하는 순간 우리는 최소 2시간 이상 그의 서운함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2시간 이상 그의 서운함을 듣고 워크샵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워크샵을 가야 하는데, 굳이 2시간 이상 그의 서운함을 들을 행동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강화도였다.


수영장이 딸려있는 곳으로 알아보라고 했다.


왜 또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알아보라 하는가 싶지만, 그런 생각조차 할 에너지가 없었다.


매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빠르면 새벽 1시, 늦으면 새벽 3시에 퇴근하는 것을 몇 달째 하다 보면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고 싶어 진다.


생존 본능이었다.


내 뇌와 몸이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했다.



PM들은 강화도에 수영장이 딸린 괜찮은 펜션을 검색했다.


여러 곳 중에서 적당히 괜찮은 3곳을 찾았다.


각각의 위치, 장단점을 문서로 정리해서 그에게 컨펌을 받았다.


“여기 괜찮네. 여기로 가자. 준비물이랑 일정들 정리해서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X 3



워크샵 가는 것도 대충 알아보는 법이 없었다.


아주 꼼꼼하게 정리해서 자신에게 검사받기를 원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해본 적은 없지만, 배워서 나쁠 것 없다는 태도로 열심히 했다.


미니 여행 가이드북처럼 만들어서 그에게 컨펌을 받아야 이후 절차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에게 여러 번 혼나고 욕먹고 하다 보니 그의 스타일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오탈자 하나도 방심하면 안 된다.


그거 하나로 우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됐다. 이 스케줄대로 진행하자. 이대로 진행시켜!”


그렇게 한 번에 컨펌을 받고 이후 일정을 진행시켰다.


언제나처럼 다들 자기 전에 가방을 싸고 전체 메신저 채널에 올렸다.


“다들 가방 잘 쌌니? 나처럼 이렇게 꼼꼼하게 싸거라. 알겠지?”


“저는 가방 다 싸고 이제 자려고 합니다. 다들 내일 뵈어요.”


“저도 다 쌌습니다.”


“저도요.”


“저도요.”


이렇게 모든 팀원의 글이 올라온 다음 그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내일 아침에 배탈 났다고 말하지 말고, 밤늦게 뭐 먹지 말고 자거라.


술이나 매운 음식 같은 자극적인 거 먹지마.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X 9



다음날 아침,


우리는 강화도를 가기 위해서 김포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10시까지 모이기로 했으나 다들 9시 30분에 도착했다.


괜히 늦었다가 한소리 듣기 싫어서였다.


9시 50분쯤 되자 그가 디자인 팀장과 함께 택시에서 내렸다.



“다들 잘 왔지?”


“네, 다 왔습니다.” X 9


“그럼 장 보러 가자.”


장 보는 내내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별거 아니야. 어젯밤에 틈새라면이라고 매운 거 먹었더니 속이 안 좋네.”



‘네? 매운 라면이요? 저희에게 자극적인 거 먹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말했다.



내로남불의 끝판왕…
한 두 번 있은 일이 아니지만 경험할 때마다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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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이전 29화지미 님이 제일 정상인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