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날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습니다. 평소보다는 늦게 러닝 하러 나갔고, 아주 천천히 뛰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저 멀리서 지팡이를 짚고 계신 할머니 한 분께서 제게 손짓을 하십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11월에 제가 목욕탕에 모셔다 드린 할머니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저를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고, 저 몸이 아파서 병원을 가야 하는데, 택시 좀 잡아줘요.”
“할머니, 어디 병원 가세요?”
“연세 병원이요. 저 앞에 사거리 가면 2층에 있어요.”
“할머니 택시를 불러드리려면 병원 이름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연세 병원이 이 근처에는 없어요.”
“아니에요. 연세 병원이에요. 저 앞에 사거리로 가면 2층에 있어요.”
오늘은 다른 날보다 러닝이 늦게 끝나서 택시를 잡아드리고 기다렸다가 태워드릴 시간이 안 날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처럼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여기 잠깐만 계세요.”
“아이고, 택시 좀 잡아줘요.”
할머니는 제가 드린 말씀을 잘 못 들으셨는지 제게 한번 더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마음이 급해서 후딱 집에 뛰어가서 차를 들고 나왔다. 차에서 내려서 할머니를 차에 조심히 태워드렸다.
“아이고, 그때 그분이시네. 지난번에 나 목욕탕에 데려다준 그분이셔.”
“네, 할머니 맞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일단 사거리로 가주세요.”
할마니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사거리에는 병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기서 우회전해서 가시면 사거리가 나와요.”
“여기서 우회전하면 된다는 거죠?”
“네, 여기서 하시면 돼요. 아이고 내가 착하게 살아서 그런지 두 번이나 이런 도움을 받네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저를 보내주셨나 보네요.”
“제가 47년 전에 이 동네 와서 아파트를 샀는데…”
가는 동안 할머니의 말동무를 해드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맞은편 1층에 약국 보이시죠? 저기 2층에 연세 병원이 있어요.”
“아, 맞네요. 연세메디칼내과가 있네요. 그럼 여기 차를 세우겠습니다.”
길 건너편에 차를 잠깐 세우고 길을 건너서 할머니를 건물 1층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다행히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진료 잘 받으세요.”
“이거 얼마 안 되는데 택시비라고 생각하고 받아줘요.”
“아닙니다. 그걸로 진료받으시고 나서 기운 나는 걸로 식사하세요.”
“아이고 그래도 이렇게 신세만 지면 안되는데…”
“저 출근을 해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고마워요.”
90도로 인사하시는 할머니께 90도로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서 차로 갔습니다.
사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가는데 집 근처에 119 앰뷸런스가 서있었습니다. 소방대원 2분이 한 분을 태우고 계신 게 보였습니다. 목욕탕에 모셔다 드린 할머니가 그 건물에 사신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갔는데, 그 할머니셨습니다.
“아이고 내가 너무 아파요.”
“네, 할머니 이제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이 할머니 어디 아프신가요?”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인데 잘 모셔다 주세요.”
어제 그렇게 병원에 다녀오셨으나 오늘 아침에 몸이 편찮으셨나 봅니다.
그날 제 삶의 미션 마일리지를 채워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최근에 제 신념대로 살았던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