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여행 관련 강의를 할 때 많은 청중들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패키지 여행과 자유여행의 예약 선호 정도이다. 패키지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사에서 모든 일정을 짜서 함께 이동하고 식음과 숙박을 함께 한다면, 자유여행은 알아서 모든 것을 내 스스로 준비하고 떠나야 한다. 두 가지의 여행 방법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모두 지닌다.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말라니깐!!
우선, 패키지 여행은 대체적으로 여행비용이 자유여행에 비하여 저렴하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면서 교통비용이나 가이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단체 할인 등을 통해 입장료도 개별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직장인들의 현실이 오랫동안 휴가를 낼 수 있지 않는다면, 압축적으로 핵심만을 보고 여행하는 패키지여행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자유여행으로 유적지 등을 볼 때, 정보가 부족하여 그저 겉모습만 보고 오는 문제점을 줄일 수 있다. 생각보다 수준 높은 가이드 또는 인솔자가 꽤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준 높은 가이드와 인솔자가 꽤 많이 있지,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수준차가 나기도 하고, 옵션투어 등의 강매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게다가 여행이 아니라 고문 수준의 일정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도 한다. 몇 해전 서유럽을 패키지로 갔을 때의 일이다.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서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밤 10시 정도였다. 오래 버스를 타서 너무나도 지쳤는데, 그나마 위안은 스위스 전통가옥인 ‘샬레’ 풍의 호텔은 내게 위안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경치의 스위스에서 내일은 좀 여유 있게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인솔자는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내일은 아침에 일찍 융프라우에 올라가야 하니,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5시 반에 만나면 됩니다”
에잇! 쉬러 온 거야? 고생하러 온 거야?
이렇게 패키지 여행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들은 자유여행으로 눈을 돌린다. 말이 잘 안 통해도 그래도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든 해결하게 되는 내 몸안의 해결 세포들이 꿈틀거리며, 여행을 하는데 그동안 큰 무리 없이 다니고 있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내 마음대로 일정을 짜고, 보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즐기고 싶은 대로 다닐 수 있는 것일 게다. 이른바, 그 지역의 냄새를 제대로 맡고 싶다면 자유여행이 아무래도 여행하는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여행지를 이해하는 첫 조건은 그곳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
- 러디어드 키플링
나에게는 그러한 의미에서 여행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짬뽕과 짜장면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이 무슨 짬짜면 같은 소리냐고? 패키지와 자유여행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자유여행을 선택했다면 그 안에서 이동수단을 결정하는 것, 다시 숙소를 결정하는 것, 또 그 안에서 세부 체험 프로그램 등을 결정하는 것 모든 것이 결정의 연속이다.
도시와 도시 간을 항공으로 가려한다면, 우선 항공사별 비행기 시간과 가격을 알아보고, 공항과 도심 간의 거리 등을 비교해보아야 한다. 항공이 마땅치 않다면 기차 편은 없는지 보고, 기차 편이 없다면 버스 등의 방법도 알아보고, 미리 예약 가능한지, 가격이 얼마인지 다시 따져보게 된다.
렌터카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렌터카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닐 걱정 없이, 또 대중교통 출발시간표에 영향을 받지 않은 훌륭한 여행수단이 된다. 미리 예약을 한다면 생각보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독일의 로맨틱가도를 달리고 싶거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해변도로를 달리고 싶다면, 이만한 이동수단이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잘못 예약하면 낭패를 볼 경우가 있다. 얼마 전 스페인을 갈 때 지도를 잘못 보고 예약을 한 관계로, 하루 만에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이동해서 차를 반납을 해야만 했다. 두 도시 간의 거리는 900km였다.
900km를 운전하고 산화되어 버렸다!
이동수단만이 아니라, 숙소를 결정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예약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숙소는 조용하고,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 조식은 어떠한지,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는 되는지 등을 확인해봐야 한다. 체험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프로그램의 질도 확인해야 하겠지만, 프로그램 운영장소까지의 이동 방법 등도 결정해야 한다. 장소까지의 이동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로컬 여행사에 예약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 결정들의 연속은 마치 짬뽕과 짜장면, 그리고 그 중간에서의 짬짜면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점심에 뭘 먹을까를 함께 논의하면 너무 간단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이 이어지거나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아무거나’이다. 식당이 정해 지고 나서 식당에 가더라도 짬뽕과 짜장면 사이에서 갈등이 계속된다. 연속으로 결정장애가 온다.
‘아무거나’란 메뉴는 없다고!
여행은 그 결정의 연속들이다. 하나의 결정이 안 되면 다른 일정이 진행이 안 된다. 신속하게 결정하여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를 결정하거나, 타협점으로 짬짜면을 먹을지를 빨리 결정해줘야 한다. 그렇게 여행준비를 하고 나더라도,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여행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정장애는 나라는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 나의 주장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욕먹거나 책임지게 만들지 않던가?
“그럼 네가 하던가?”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대리나 하고 계세요? 대리님?”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모든 회사가 이렇지는 않겠으나,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나를 점점 더 위축시키고, 결정을 못 하게 만든다.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는 창의성을 말살시킨다. 결정장애는 결코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에잇.. 내가 회사를 관둔다. 관둬!!
여행은 결정장애자인 줄만 알았던 내가 그렇게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고, 그 결정이 상당히 유용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연속이 된다. 물론, 결정이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음 여행에서 더 잘하면 되니깐. 여러 여정 중 하나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다음 여정을 더 잘해나가는 시행착오에 불과하니깐 말이다.
사회가 내 결정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회사는 그저 기계의 부속품인 것처럼 개인을 취급하고, 부속품이 낡고 쓸모없으면 버리면 그만인 사회. 부모들은 아이들의 생각은 비성숙한 개체의 생각이므로, 모든 진로를 결정해주는 헬리곱터맘이 판치는 사회. 젊은이들의 생각이나 가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스펙이나 영어점수와 학교 성적만이 전부로 만드는 사회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닐까?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는 그만큼 사회 구성원을 부속품이 아닌, 개별적인 인격체로 바라보면서 출발할 수 있다. 여행에서의 내 결정은 대부분 나만 책임지면 되지만, 사회에서의 결정은 그 사회가 감내하여야 한다. 잘한 결정에 대해서는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잘못된 결정에 대해서는 함께 위로하고 극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결정을 걱정하며, 결정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살아가는 주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건, 네 잘못이 아냐! 하지만, 하나하나 결정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짬뽕이나 짜장, 짬짜면을 선택해서 먹고 있는 너를 발견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