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끼약! 먹는 이야기이닷!!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여행에 있어서 먹는 것이 차지하는 지출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관광서비스 소비에서 OECD 평균 17% 정도가 먹거리 분야로 나타난다. 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우에는 관광 지출 중 30% 이상이 음식분야라는 통계도 있다. 국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에 발표된 2014 국민여행실태조사에서 국내 관광객의 주요 여행지 활동 중 음식관광이 2위(18.8%)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행에서 음식은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뭐, 비단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요즘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프로그램의 대세는 ‘먹방’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삼시세끼’, ‘집밥 백선생’, ‘한식대첩’, ‘수요미식회’와 같은 종편, 케이블 방송이 흥행하자, 공중파에서도 ‘3대 천왕’과 같은 신생 먹방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참 먹을 것에 대한 갈망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 프로그램들을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먹고 난 나를 발견하게 된다 ㅠㅜ
먹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렇게 간단한 기본적인 욕구는 그저 먹는 것으로 충족되고 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기본적으로 채워지고 나면, 더욱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욕구가 커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_ 브리야 샤바랭
그럼에도, 그동안 바쁜 우리 네 현대인들은 먹거리를 대충 때우는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은 바쁘게 출근해야 하다 보니 대충 때우고, 점심은 직장 내 상사가 갑자기 일을 시키거나, ‘갑’의 회사에 자료를 넘겨주어야 하다 보니 대충 때우고, 저녁은 맞벌이하다가 들어와서 집에 밥이 없으니 대충 때운다.
그러다 보니 아마도 이 먹거리에 대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 맛있게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방송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를 두고 ‘푸드 포르노’의 시대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분명한 것은 이제는 ‘대충 때워’의 시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외국 음식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지는 못한다. 입이 짧은 편이랄까. 그렇다고 외국에 가서도 한식이 없으면 못 먹는 정도는 아니다. 업무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여행으로는 한식집에 가본 경험은 없다. (하지만 잘 못 찾았던 한식집 대신, 유럽에 가서 초밥집에 가서 배 터지게 먹은 경험은 있는 것 같다.) 어찌되었던 여행지에서 만난 맛있는 음식들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대게는 아마 나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은 음식들일 것 같다. 식당마다 당연히 음식의 맛 차이는 있으니 순전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작성을 해본다. (음식 먹을 때 하나하나 모두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먹는 그 순간이 소중하므로. 그래서 없는 사진은 웹사이트와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임을 밝혀둔다.)
빠에야는 쌀과 해산물 등을 큰 프라이팬에 함께 볶는 요리로, 주재료가 익숙하여 우리 입맛에 대부분 잘 맞는다. 특히, 먹물빠에야는 감칠 맛과 짭조름한 맛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밥과 함께 새우, 오징어 등 갖가지 해산물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 다만, 먹물로 인해 입술과 혀가 검게 보여 앞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다.
독일 소세지가 맛있다고는 하나, 조금 짜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소세지를 소개하자면, 우선 바이스부르스트 소세지. 바이스는 흰색, 부르스트는 소세지인데, 훈연하지 않고 짧게 물에 담가서 가열 처리하기 때문에 짠 맛이 잘 빠져있다. 그럼에도 이보다 더 맛있는 소세지는 뉘른베르크의 독특한 소세지. 손가락 두께만한 소세지는 독일식 양상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와도, 그냥 빵에 넣어 먹어도 정말 맛있다.
내가 먹어본 파스타 중 내 인생 최고의 파스타. 해산물이 많이 나는 모로코 에사우이라에서 먹은 파스타는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가 결합이 되어 있으면서, 게살, 오징어, 새우 등이 정말 아낌없이 들어가 있다. 먹으면서 쉐프에게 연신 감사를 마음속으로 표한 정말 맛있는 파스타
흔히, 쌀국수는 베트남, 태국이라고 하는데, 내 초딩 입맛에는 오히려 간이 조금은 덜한 라오스의 쌀국수가 더 입에 맞았다. 특히,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남푸커피와 화삼 집의 쌀국수는 일품이었다. 남푸커피는 전통 비엔티안의 쌀국수인 까오삐약을 먹을 수 있고, 화삼에서는 도가니 고기를 곁들일 수 있는 도가니 국수를 먹을 수 있다.
터키의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케밥이 많은데, 카파도키아에서 주로 판매하는 케밥은 항아리에 담겨진 케밥이다. 항아리 안에 고기, 채소, 육수 등을 넣어 가열한 후, 그대로 손님에게 가져다주고 그 윗 부분을 망치로 깨어 바로 먹는 케밥. 스튜와도 비슷하고, 우리 고깃국과도 맛이 비슷해서 한국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는 듯하다.
중국 전역의 음식이 맛있겠으나(호불호가 갈리긴 할 것 같다), 그중 해산물이 유명한 칭다오는 음식의 천국인 것 같다. 특히 훠궈는 중국의 샤브샤브인데, 육수도 우리 입맛에 맞지만, 정말 많은 해산물을 값 싸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 칭다오는 바지락이 유명하니 바지락은 꼭 더 시켜야 한다. 이외에, 탕수욕의 원조인 탕추러우는 우리의 탕수육과 비슷하면서도 더 쫄깃하다. 약간 단 맛이 더 강한 것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슈니첼은 우리의 돈가스와 비슷하다. 돼지고기를 빵가루에 묵혀 튀겨낸 것인데, 양도 푸짐하고 맛도 훌륭하다. 보통은 엣지 감자나 프렌치 프라이와 함께 나와서, 하나 먹어도 배가 든든해진다. 특이한 것은 슈니첼을 주문하면 딸기잼이 같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도, 자꾸 먹으면 쨈을 찍어먹지 않으면 더 어색하다.
인도에서 음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만난 반가운 인연이라고나 해야 하나? 입이 짧아서인지 생각보다 인도 커리 등이 입맛에 맞지 않았을 때, 주문한 탄두리 치킨은 그야말로 고마운 존재였다. 적절하게 매콤하면서도 불의 맛이 함께 가해진 탄두리 치킨은 우리가 흔히 먹는 숯불구이 매콤 치킨과 맛이 비슷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여행자 거리(야시장) 초입구 오른 편에는 바게뜨 샌드위치와 과일주스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그중 한국어로 ‘어서 오세요’라는 문구가 있는 집의 바게뜨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명물. ‘반시’ 아줌마가 작고 귀여운 딸과 함께 하는 이 샌드위치 가게에는 정말 많은 샌드위치 메뉴가 있으며, 참치 샌드위치와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일품. 속에 재료를 꽉꽉 채워주면서도 우리 돈 2,0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과일주스도 직접 갈아주는데, 과일을 갈고 남으면 한 잔을 더 주는 인심도 후하다. 미소가 정말 아름다운 아줌마와 딸이 있어 더 행복하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펍 스트리트는 여행자들이 언제나 북적이는 곳이지만, 펍 스트리트에서 조금 벗어나, 럭키몰 쪽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대형 음식점인 ‘릴리’를 발견할 것이다. 물론, 외국인들에게 입소문이 나서 영어로 된 메뉴도 갖추고 있다. 2~3달러 정도면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데, 말 그대로 파인애플을 파내어 그 안에 볶음밥을 주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캄보디아식 불고기인 롱락과 함께 시켜먹어도 맛이 좋다.
여행에 있어서 음식은, 그 여행을 보다 즐겁게 해 주고,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게 해준다. 여행에서의 음식을 누릴 권리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면 이를 향휴하기 위한 의무도 필요하지 않을까. 문화적 차이라는 견해도 있겠으나, 그래도 조금 생각해봐야 할 점들을 몇 자 적어본다.
첫 번째는 정찬식당에 갈 때의 예절이다. 서양의 경우, 레스토랑에 드레스코드를 적어놓는 경우가 있다. 레스토랑 앞에 드레스코드가 포멀(formal)이라고 적혀 있으면, 여성은 드레스나 정장, 남성 역시 턱시도나 정장을 입고 들어가는 것이 그 곳의 예의이며 문화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여행객은 이를 무시하고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경우 입구에서부터 못 들어가기도 하겠지만, 손님이기에 제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위의 눈은 좀 따가울지도 모르겠다.
크루즈 여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크루즈는 저녁 정찬식당이 매일 드레스코드를 달리하여 정해준다. 포멀이냐, 세미 포멀이냐, 캐주얼이냐에 따라 맞추어 입장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여행객의 경우 아웃도어를 입고, 모자를 그대로 쓰고 들어와서 밥을 먹는가 하면, 슬리퍼를 말 그대로 질질 끌고 들어와 먹기도 한다. 여행은 그 자체로 편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한정된 장소와 시간에 지켜야 할 문화까지 무시하는 것은 편함이 아니라 무례함이다.
두 번째는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때이다. 서양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불편해하는 여행객들을 볼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의 경우 조식식당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 먹거나, 고추장이나 김치 등을 한국에서 공수해 와서 먹는 경우가 있다. 입맛에 안 맞는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강한 냄새로 인해 주변에 실례가 되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외국인들도 라면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 냄새를 좋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환기가 안 되는 식당에서 냄새가 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식사에 대한 그 나라의 문화와 간단한 언어는 배워가면 더 식사가 즐거워질 것이다. 가령, 그 나라가 식사 후 팁을 주는 문화가 있는지, 음식을 손으로 먹어야 한다거나, 다른 도구를 쓰는 방법이 있다든지, 음식 먹는 순서가 있는지 등을 알아간다면 더 친절하게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언어를 배워서, 음식을 그 나라의 언어로 주문한다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해보면 종업원의 미소가 따라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당에서 외국인이 서툴지만 한국어로 주문하고, “감사합니다”, “맛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퉁명스럽게 받아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식사 시간이 ‘대충 때우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간 여행자와, 그리고 종업원과, 현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즐기는 식사는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풍성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즐겨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제목처럼, 식사를 하면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먹자!!! 사랑하자!!!!
잠깐 이야기를 돌려보자. 괴수영화의 괴물이나 ‘워킹데드’ 등의 드라마에 나오는 좀비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에만 열중한다. 나부터도 ‘대충 때우는’ 식사를 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건대, 그 모습을 하늘에서 본다면 아무 생각 없이 좀비가 된 것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좀비가 아니지 않은가. 먹는 것은 축복이다.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감사하고, 또 즐겨보자.
우리네 삶이 이렇게 되고 싶어 되었겠는가.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여유는 사라지고, 먹는 것에 대한 환희도 사라졌다. 그저 살기 위해 먹는 삶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삶을 벗어나서,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먹는 것에 대해 즐기는 법이었다. 집에서 한 끼를 먹더라도 아름답게 먹는 삶을 꿈꿔보면 어떠할까?
물론, 아침, 점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저녁만이라도 야근에, 회식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녁이 있는 삶은 가족끼리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회사 문화도 변경되어야 하겠지만, 내 스스로가 일주일에 몇 번만이라도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보면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