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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Jun 18. 2017

어리석게 사랑하는 것과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

-피츠 제럴드 “분별 있는 일” 그리고 영화 “연애담”

 

10. 어리석게 사랑하는 것과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

-피츠 제럴드 “분별 있는 일” 그리고 영화 “연애담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이 한 문장 때문에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을 모아 둔 “리츠 호텔 만한 다이아몬드”(민음사)를 구매했었다. 해당 문장은 그의 단편 중 “분별 있는 일”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마지막 단락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절대 헤어져서는 안 된다. 오래 헤어짐 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장 르누아르는 이런 말을 했다. 그 모든 순간마저도 같은 순간은 없다. 그러니 헤어지고 나면, 돌아서고 나면 같은 사랑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남자는 존퀼이라는 한 여자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 여자는 그 세상의 중심이다. 그에게 그 사랑이란 너무 순진하고 너무 크고 너무 절박해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는 회사도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야망도 미래도 상관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남자는 이 한 여자를 보기 위해, 얻기 위해 자신의 다른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방관한다. 하지만 성공은커녕 제대로 된 직장도 야망도 없어진 이 남자와 존퀼은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여자에 빠져 있는 바람에 그는 다른 곳에서 서 있을 그의 다른 세계들을 잃었건만, 이제는 마지막 남은 그의 세계마저도 사라진다. 이를 보니 영화 “연애담”이 떠오른다. 한 여자(윤주)가 한 여자(지수)를 만나 사랑에 빠져 당장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어느 것도 사랑하는 한 여자(지수) 말고는 집중하지 못하는 한 여자(윤주)가 되어버리고 만다. 막상 준비해야 하는 졸업전시는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교수님께 촉망받는 제자였었는데 돌아오는 건 실망밖에 없다. 그 뜨거운 사랑의 열병은 한 사람(사랑을 하고 있는 이)을 다른 한 사람(사랑하는 이) 말고는 다른 세계에 고개를 돌려버릴 수 없게 만든다왜냐면 그 뜨거운 열병에 걸리면 그의 세계가 단 한 사람, 사랑하는 이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연애의 끝이 비참하게도 사랑에 빠진 자는 그의 나머지 세계뿐만 아니라 오직 단 하나였던 세계조차 잃는다. 몰락하고 절망한다. 그 사랑에 빠진 자는 오직 단 한 세계만 바랄 뿐인데, 신도 야박하시지 우리에게 그 마지막 세계조차 빼앗아 가신다. 


영화 <연애담> 스틸컷

  나는 “연애담”을 보면서 윤주를 보는 내내 그렇게 사랑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어찌 내 사랑하는 이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도 그 열병의 마수에 빠져 한 사람이 한 세계가 되어버리고 마는 그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한 사람의 세계가 단 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그 사람이 얼마나 위태해지는지, 그 세계가 무너질 경우 그가 어떠한 절망과 몰락의 과정에 빠지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것들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랑에 빠진 윤주를 보면서 너무나 마음 아파했다. 그렇게 어리석게 사랑하지 말라고 현명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한 사람 덕에 그 열병을 앓았던 계절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교, 과제와 시험, 그리고 졸업. 늘 내 앞에는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 내게 시간을 요하는 일들이 많이 널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부르면, 함께하면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해도 될 것 같이 느껴졌다. 실제로 아르바이트를 나가지도 못하는 날들이 생겼고, 과제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급하게 준비하게 되고, 모든 것들이 시간에 벅찼지만 그 사람을 만나는 시간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다 할 수 있다고, 다 해내고 말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다행히 절망에서 구원받았지만, 한 사람으로 집약되는 하나의 세계는 내게서 영영 사라졌다.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는 건널목을 지나 탁 트인 교외를 통과하여 기차는 기울어 가는 황혼을 향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잠과 더불어 과거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어쩌면 그녀도 그 석양을 바라보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추억에 잠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밤의 석양은 그의 청춘의 태양과 나무와 꽃과 웃음을 영원히 덮어 버릴 것이다.”

  다시 피츠제럴드의 소설로 돌아 가보자. 거의 그의 중심이면서 모든 것이었던 한 여자가 그의 삶에서 사라진 한 남자는 이제 모든 것을 일에 바친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찾아 돌아왔다. 끝난 사랑, 지난 사월을 돌아 다시 돌아온 그는 그가 사랑했던 그 여자와, 그 시간과, 그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그날의 기억은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는 바로 이 소파에 앉아 이제는 다시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고뇌와 슬픔을 느꼈다. 다시는 그렇게 무기력하거나 그토록 지치고 비참하고 가난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십오 개월 전의 자신에게는 신뢰라든가 따뜻함 같은 것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별 있는 일- 그들은 분별 있게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능력과 바꾸었고, 절망으로 성공을 빚어냈다. 그러나 삶은 젊음과 함께 그의 사랑이 지녔던 신선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더 현명하게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어리석게 사랑하는 것과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만 있을 뿐이다. 사랑의 열병에 전염된 사랑이 당신의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는 더 현명하게 사랑하는 것은 없다. 그 순간에 현명이라는 단어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현명이 발휘될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일까라는 의아함도 든다. 그 강렬한 열정과 열기를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이 발휘되는 그 정도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후에 사랑의 열병이 면역이 되어 우리는 현명하게 사랑을 지속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병에 걸린 자가, 지금 앓고 있는 자가 현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현명이라는, 그러니까 분별 있는 일을 하자는 말이 사랑을 결국 파괴한다. “연애담”에서 지수의 행동들은 결국 윤주를 불안하게 하고 윤주는 사랑을 잃는다. 다시 만나 재회하는 그들은 다시 사랑할 순 없을 것 같다. 분별 있는 일로 사랑을 미루고 나면 사랑은 열병은 거짓말처럼 식는다그러고 우린 그렇게 다시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슬픈 사실이 어디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그 사실을 그걸 알고 있지만 온몸으로 차라리 경험해도 좋으니, 절망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것을 절감해도 좋으니, 만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역시 내 욕심일 걸까. 끝낸 사랑을 뒤에 두고 우리는 다시 그 계절처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알지만 이렇게 그 사실이 이 사랑을 아프고 비참하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한 대사를 덧붙인다. 



I am one who loved not wisely but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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