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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Jan 07. 2018

사랑이란 이름의 신앙

황인찬의 시 "종로사가"

 

12사랑이란 이름의 신앙

-황인찬의 시 종로사가

 


종로사가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겠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 그것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놀라워서, 위대하고 장엄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이걸 정말 원했다고 믿겠지 그리고는 신적인 예감과 황홀함을 느끼며 그것을 견디며 끝없이 끝도 없이 이 거리를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그러다 우리가 잠시 지쳐 주저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거기에 담긴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 버리겠지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황인찬, 희지의 세계, 종로사가, 민음사, 2015.




  황인찬 시인의 “종로사가”의 화자는 연인과 함께 추운 종로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하다. 연인은 화자에게 “우리 자주 걸을까요?”라고 묻고 그 물음에 이 두 연인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걷고 있다. 계속해서 걷는 일이 지치면 그들은 주저앉아서 쉬기로 하고 담배를 피우고 그때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된다. 그때 서로의 눈에 담긴 것들을 그들은 믿게 되고 그것은 신앙이 된다. 아마 두 연인이 서로의 눈에서 본 것은 “사랑”이라는 것일 거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사랑을 보게 되고 그것을 신앙으로 삼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더 이상 밤거리를 헤매며 살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밤거리를 헤맨다는 것을 계속해서 방황하는 것을 의미할 테니.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갖게 되었지만 더 깊은 곳에서 빠지고 더 헤매게 될 뿐, 출구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랑을, 서로의 눈을 통해 보이는 것들을 무엇이라 호명하고 그것들을 그것이라고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 그들은 그것을 빛이라고 호명하고 믿으며, 사람이라고 호명하고 믿는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그들의 사랑은 밤거리를 헤매는 이 두 사람에게, 서로에게 서로가 구원이 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 같다.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영원히 추운 밤거리만을 헤매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서 위안을 얻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구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연인의 결말은 이렇게 해피엔딩만은 아니다.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뺨에 흐르는 것은 눈물일 것이다. 두 연인은 울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걷고 있는 그곳은 아직도 여전히 춥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이전에 서로의 눈을 통해서 본 것을 아름답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 그러던 그들은 결국 다시 지처 주저앉을 때 서로의 눈에서 아름답다고, 사랑이라 보았던 것들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 보게 된다. 그들이 서로의 눈을 통하여 그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빛도 아니고, 사랑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뒤에 그들은 다시 걷는다. 그래도 상관이 없어서, 자꾸만, 계속, 그냥 막 걷기로 한다.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믿음이란 진정 이런 것일 거다. 작가의 말에 “나는 믿는다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믿는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건 결국 이 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의 대상은 실제와 그것의 실체의 유무가 명확하지가 않다. 안개처럼 미지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빌어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것이다. 믿음과 신앙이 그렇다면 사랑도 이와 같다. 나는 당신의 눈과 나의 눈에 사랑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다시 걷기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마음은 간절함일까? 중요한 건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나에게 “우리 자주 걸을까요?”라고 다정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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