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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Apr 11. 2021

모질게 살아와도 사랑하는 것

이병률의 "이 넉넉한 쓸쓸함"을 읽고

20. 모질게 살아와도 사랑하는 것

-이병률의 "이 넉넉한 쓸쓸함"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저녁빛이 마음의 내벽
사방에 펼쳐지는 사이
가득 도착할 것을 기다리자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쓸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것으로 살자

밤새도록 몸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자는 일에 육체를 잠시 맡겨두더라도
우리 매일 꽃이 필 때처럼 호된 아침을 맞자




이병률, '이 넉넉한 쓸쓸함',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7.



  사랑의 열병은 청준 영화에나 어울린다. 중년이나 그 이상 연인의 로맨스에서는 "현실적인"이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하는 연애가 열병에 가득 차 있으면 어색해하는 것 같다. "젊은이도 아니고, 어린 것도 아니고 한 청춘도 아닌데 뭐 저렇게 열성이야"라는 느낌.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버린다. 사랑에 목을 매는 일이 부질없는 일이 되고 철없는 일이 된다. 그건 어릴 적에나 청춘인 시기일 때나 가능했던 일이라고. 누군가가 나의 전부가 되고 우주가 되는 일들이  한때의, 어릴 적의 착각이며 순수함이었다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한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세상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에서 여러 번 좌절을 맛보고 상처를 받는다. 상처받아 비어있는 마음엔 그건 단지 감정 소모이고 감정 낭비일 뿐이라는 위안과 최면만이 남는다. 마치 일을 하듯이, 습관처럼 사랑을 하게 되는 시기에 이른다. 대부분 그렇게 되기 마련이고 어떤 이는 너무 크게 데였는지 아니면 데이지 조차 못했는지 사랑을 경멸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사랑같은 것은 환상이고 없는 것이고 결국 남는 것은 오롯이 나 하나. 이 생에 고독한 단독자 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도 사랑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나는 오히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사랑 이야기는 유치하다. 그래, 유치하다고 말한다. 진부하고 유치하고 어리석고.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순진해서 아니다. 단지 그 사람들이 순진하기 때문에 사랑을 믿는 걸까?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사랑의 힘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가는 길을 계속해서 꾸준히 걷고 있는 이들 나는 응원한다. 나는 사랑을 믿는다.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사실 사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무능하고 무력하고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고 한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그 안에 담긴 힘이 세상을 바꾸고 타인을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생기는 작은 기적들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 sns에 남겼던 어떤 마음도 같이 남겨둔다.


누군가가 돌아가는 길에 건네준 핫팩 같은 것, 보내주는 마음 같은 것, 때론 다른 입으로 말해진 시 같은 것, 가끔 하나의 어절에 담긴 무한 같은 것, 때문에 나는 관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초월적인 사랑 이후의 선악의 저편에 일어나는 사랑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을 포기하지 않는 것까지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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