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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May 09. 2019

서로는 서로가 되지 않기로 한다.

이현호의 시 "아무도 아무를 부르지 않았다"와 "폐문"

19. 서로는 서로가 되지 않기로 한다

-이현호의 시 "아무도 아무를 부르지 않았다"와 "폐문"


  이현호의 새 시집 제목은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이다. 시인은 왜 아름다웠던 이름을 "우리"도 "서로"도 아닌, "혼자"라고 했을까? 그의 시집을 빼곡히 들여다보면 의문이 든다. 그의 시집엔 나와 네가 녹아 있는데, 시인을 너를 계속 아름답다 말하는데, 왜 시인은 혼자라고 했을까? 그의 시 몇 편들을 읽다가 생각이 나 시 옆 한 구석에 글들을 적었다. 시인이 "혼자"의 이름으로 부른 것은 시인이 사랑을 버리고 믿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현호, 폐문   

내복을 입고 외투의 단추를 여미며 나는 나를 생활했다    
떨켜라는 말을 모르고도 떨어질 때를 알고 있었던 지난 계절  
그 낙엽의 거리를 다시 거닐며 나는 나를 생활했다
어묵 국물을 두 손에 꼭 쥐고 먹먹한 하늘의 강설을 점치다가
옥상에 널어둔 빨래의 안부를 걱정하며 나는 나를 생활했다
지구와 태양이 가까워지면 겨울이 오는 북반구의 나라에서
자전축처럼 비스듬히 기울어 있던 등을 잠시 떠올리며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겨울 햇빛을 맞고 있는 나를
나는 생활했다, 나는 나를 생활했으므로

"나를 떠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생각하던 나를 떠난 것이다."
날 위한 한 줄 문장을 끄적이고
술잔 속에서 흔들리는 눈빛을 마시며 나는 나를 생활했다
통증은 잊지 말라는 신호라며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잊었을 거라고 다독이는
나를 나는 생활했다, 출렁이는 눈으로 문장을 고쳐쓰는;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으려는 나를 떠났다."
퇴고할 수 없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읽는;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생각하던 당신을 떠난 것이다."

나를 나는 생활했다, 닫힌 문 앞을 되돌아
가로등 불빛들을 장마의 징검다리같이 건너는,
철학의 대가들이 삶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나를 향한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랑스런 영혼에게 이 폐문을 덮어주며
나는 나만을 생활했다, 다른 누구를 생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잠시도 당신 집 앞을 서성이지 않는다



이현호, '폐문',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24-25쪽


  시의 화자는 나를 생활하는 나를 살고 있다. 화자가 고쳐 쓰는 문장들은 아래와 같다.


"나를 떠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생각하던 나를 떠난 것이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으려는 나를 떠났다."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생각하던 당신을 떠난 것이다."


  너와 나는 결국 서로의 곁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화자의 입을 빌어 보면 화자는 너를 떠나지 않았고, "너를 생각하던 나를 떠난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자는 사랑하던 이를 떠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던 화자를 떠난 것뿐이다. 그것은 단지 화자뿐만이 아니다. 화자가 생각하고 사랑했던 너 또한 화자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이다. 당신 또한, "나를 생각하던 당신을 떠난 것이다."라는 말로 나를 떠나지 않은 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도 아무도를 떠나지 않은 것이 된다. 너도 나도 서로를 떠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떠나지 않았다.


  떠난다는 것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버린다는 의미로도 내게 읽힌다. 그러나 위 시에서는 그 누구도 서로를 떠나지 않았고 그러므로 누구도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라는 생각도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통증은 잊지 말라는 신호"라고 말하는 화자는 아픔을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잊었을 거라고 다독"인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로는 서로에게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했던 자기 자신이기에, 화자가 잊지 않게 되는 것은 너를 생각하고 사랑했던 나를 떠난 나이기에, 결국 서로는 서로를 아픔을 통하여 잊지 않으며 그 아픔으로 인해 기억할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을 다독인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화자는 이별이라는 사태를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떠난 상태로 남겨진다는 건 꽤 많이 슬픈 일이니까.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그러니까 너와 나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그래서 화자는 떠나지 않고 서로가 아니었던, 우리가 아니었던 "나는 나를 생활"하기로 한다.



이현호,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았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지옥이 있어."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듯이 네가 말했을 때
아름다운 네 앞에 서면 늘 지옥을 걷는 기분이니까
그 어둠 속에서 백기같이 흔들리며 나는 이미
어디론가 투항하고 있다

네 손금 위에 아무것도 놓아줄 게 없어서
손을 꼭 쥐는 법밖에는 몰랐지만
신이 갖고 놀다 버린 고장난 장난감 같은 세상에서
퍼즐처럼 우리는 몸이 맞는다고 믿었었고
언제까지나

우리는 서로에게 불시착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우리가 비는 것은 우리에게 비어 있는 것뿐이었다
삶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습관
우리는 살아 있다는 습관
살아 있어서 계속 덧나는 것들 앞에서
삶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불행
그것마저 행복에 대한 가난이었다

통곡하던 사람이 잠시 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를 때
그는 우는 것일까 살려는 것일까
울음은 울음답고 사랑은 사랑답고 싶었는데
삶은 어느 날에도 삶적이었을 뿐

너무 미안해서 아무 말 않고 떠났으면서
너무 미안하다 말하려 너를 서성이는 오늘 같은 지난날
아름다운 너를 돌아서면 언제까지나 지옥을 걷는 기분이니까
조난자가 옷가지를 찢어 만든 깃발처럼 그 어두움 속에서 펄럭거리며 나는 벌써
무조건항복 하고 있다, 추억을 멈추고 잠시 삶을 고른다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 지옥과 지옥은




이현호,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았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32-33쪽.


  이어지는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았다"도 내게 "폐문"과 같게 읽힌다. "우리는 서로에게 불시착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연인들은 이것이 불시착(다음 사전: 비행기가 기관 고장이나 기상 악화, 연료 부족 따위의 예상치 않은 장애로 인해 지정되지 않은 곳에 착륙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연인들의 연애는 달콤해 보이지 않는다. "네 손금 위에 아무것도 놓아줄 게 없어서, 손을 꼭 쥐는" 일밖에 서로가 하지 못하고 서로를 "퍼즐처럼 우리는 몸이 맞는다고 믿었었고, 언제까지나"라는 말을 통해서 서로는 서로를 사랑했으나 서로는 서로에게 또한 지옥 같았던 것 같다. "아름다운 네 앞에 서면 늘 지옥을 걷는 기분이니까" 화자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 앞에서의 자신의 심정을 지옥 같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고 아픔이 되는 사랑을 또한 나는 알고 있다. 해당 매거진에 쓴 글 중  "15. 사랑은 함께 타락하고, 파괴하는가?"의 두 연인이 그러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그 순간들이 지옥이 되는 날들이 있다. 이 둘이 사랑을 끝내려고 할 때도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 지옥과 지옥은"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았다.


  시인의 다른 시 "문장 강화"에서 "슬프다는 한마디, 그 속에 벌써 우리가 산다"라는 말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너와 나는 이미 각자여도, 각자가 너무 슬퍼서 우리가 될 수 없는 너와 나라는 것을 읽게 된다. 우리는 이미 너와 나로도 슬픈데,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가 되면 그것이 너무 가난하고 아파서 그게 너무 괴로운 일이 되어버려서. 결국 서로는 서로가 아닌 너와 나로 남았다고. 처음부터 너와 나는 서로였던 적도 우리였던 적도 없고 마지막까지 결국 너와 나로 남은 너와 나는 너무나도 아픈 일이고, 아픈 사랑이다. 서로는 그러므로 서로를 떠나지 않은 것이 되지만, 시 속에 느껴지는 이별의 절규와 괴로움을 나는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현호의 시에는 슬픈 모순이 있다. 서로는 서로의 이름으로 불리지 아니하고 그렇게 하지 않지만, 결국 너와 나가 서로가 되는 길을 버림으로써 너와 나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조금 덜 아플 수 있다. "아무도 아무도를 부르지 않아"도 이미 "지옥과 지옥"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또한 자신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길을, 서로를 떠나지 않는 길을 택한다. 이 둘의 사랑은 나와 네가 너무 아픈 일을 빗겨나가기 위한 외침으로 들린다. 그 아픔을 알기에 서로의 이름을 너와 나라고만 부르고 우리와 서로로 부르지 않는 그들을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다. "폐문"의 화자는 "사랑스런 영혼"이라 부른 이에게 "폐문(廢文)을 선사하며 그러므로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로 남는다. 나와 너를 위한 또한 그 자신을 위한 일이었기에 혼자라는 말에 한없이 슬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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