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허박 광장에서 이어진 목소리
방글라데시의 도로는 그야말로 통제 불능이다.
신호위반과 역주행이 난무하는 교통지옥, 악명 높은 교통체증, 사람들은 차 사이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무단횡단을 한다. 거기다 도로 상황조차도 형편없다. 움푹 파인 도로를 달리다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뉴스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나 역시 방글라데시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의 교통사고를 경험했었고 지인이 버스 전복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는 오랫동안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지난해에만 4천200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하니, 이러한 염려가 지나친 기우도 아니다.
안전한 방글라데시를 위하여
시위는 7월 29일 2명의 10대 학생이 과속으로 달리던 버스에 치여 사망한 소식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사고를 낸 버스 운전자들은 승격을 더 태우기 위해 레이스를 펼치듯 과속을 하며 달리고 있었고, 그 버스는 기다리던 학생 무리를 덮쳤다. 두 버스 기사들이 무면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후 교통부 장관의 실언은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수천 명의 교복을 입은 10대 학생들은 “Safe Bangladesh!”, “We want Justice!”라고 외치며 도로 안전과 교통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졌다.
처음 학생들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시위를 이어가면서도 혼잡한 교통 체증 속에 위급한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거나, 움푹 파인 도로를 직접 보수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자, 반정부 시위로 번질 것이라고 우려한 정부는 곤봉과 최루탄, 고무총탄 총으로 진압하기 시작됐다. 시위는 폭력적인 사태로 번져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고, 정부는 SNS로 촉발된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바일 인터넷까지 차단했다.
잘못된 정보를 거절할 용기
한국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학생시위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온라인 카페 등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1980년 5월 우리나라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과 같은 일이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반복되고 있다”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가 외부로 알려 우리에게 도움을 줬듯이 우리도 이를 알려야 한다”라고 관심과 정보 확산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에 없었던 방글라데시를 향한 관심과 지지였다.
국적을 넘어 방글라데시 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의미로 한국에서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환영할 받을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식들이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과 이미지만 부각되어 소비되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러웠다. 공유되는 글에는 자극적인 이미지와 영상과 함께 ‘여학생들이 강간당한 후 살해되어 버려졌다’, ‘눈이 뽑히고 손가락이 잘렸다' 등이 사실 확인이 필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언론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는 글을 그대로 받아 적어 기사 형식으로 뿌려졌다.
이처럼 악의적인 의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만 부각하는 것을 ‘빈곤 포르노’라고 하는데, 이는 자극적인 사진에 노출된 피해자의 인권 침해의 우려와 함께 ‘폭력이 만연한 개도국’의 편향적인 편견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제기된다.
또한, ‘선한’ 의도이더라도 자칫하면 사실을 왜곡하여 결과를 처음 선의와는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를 흘러가게 만들 수 있다. 같은 방향을 향한다고 하더라도 왜곡된 정보의 확산은 근본 해결책과 거리가 멀며, 학생들이 질서 있고 비폭력으로 유지하며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었던 시위를 공포나 분노로 인해 폭력사태로 변하게 할 수도 있다.
사실 방글라데시에서 ‘하딸’이라고 하는 총파업 시위는 종종 폭력 시위가 동반되어 악명이 매우 높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하딸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 국가 GDP의 3~4%를 차지한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잦은 하탈로 인한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개개인의 불안을 야기시킨다는데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폭력 시위를 동반한 하딸은 방글라데시의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방글라데시의 경제 성장과 인권 향상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고 벗어나야 하는 과제다.
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긴 시간 방글라데시 전역에 걸쳐 치안과 정세를 불안케 한 폭력 시위에 억압되었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2013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샤허박(Shahbagh) 광장에서 시작된 비폭력 시위를 환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달여간 지속하여온 샤허박의 시위는 정치적 압력과 수많은 유언비어로 해산되고 다시 일부 과격단체의 폭력시위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샤허박은 미완의 혁명으로 기록되었다.
맞다. 정부가 곤봉과 최루탄, 고무총탄 총으로 진압하면서 학생 시위는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학생들이 다치고 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인해 또다시 다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가짜 뉴스를 ‘일부러’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가짜 뉴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졌듯이, 샤허박의 비폭력과 참여 민주주의, 연대의 기억이 이번 학생들의 시위까지 이어졌으며 그다음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처음 시작과 같이 폭력이 아닌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값진 결과를 맺을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이번에 보여주었던 한국에서의 뜨거운 관심과 연대가 이어지길 소망한다.
보태기 | 이 글은 독립문화예술놀이터 <씨위드 Seaweed >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원고 송고 : 2018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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