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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 내가 신생아 아기띠, 슬링을 처음 하던 날

잠에서 깬 아이는 아빠를 보며 생긋생긋 미소를 짓는다. 내가 자신에게 밥을 줄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듯, 아이는 적막 속에서 천사 같은 미소를 보낸다. 그 의미를 이해한 나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아이를 위한 분유를 탄다.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 아이가 좋아하는 딱 그만큼의 온도로 아이의 분유를 만든다.

분유를 마주한 아이의 눈빛은 반짝거린다. 밤새 잤기에 허기졌음을 증명하듯, 순식간에 그것을 비워버린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트림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는데 …

"꺽 ~"

'오늘이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인가!', 아이는 분유를 다 먹고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우렁찬 소리로 시원하게 트림을 한다. 평소 트림이 안 나와 한참 동안 등 마사지를 해줬던 때와는 사뭇 다른 아침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가 한 번씩 아이를 안을 때 쓰던 신생아 아기띠, 슬링을 꺼내든다. 완벽한 아이의 첫 등원을 위해 며칠 전부터 슬링하는 법을 연습했는데 막상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할 상황이 되니  여전히 버벅댄다. 그래도 두어 번의 실패 끝에 아이를 품 안에 안착시키고, 미리 준비해둔 아이의 짐을 들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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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야 할 상황이 되면 우리 부부는 겉싸개로 감싼 아이를 안고 움직였다. 예방접종과 같은 일이 아닌 이상, 이제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갈 일도 거의 없었고, 작은 체구의 신생아를 효과적으로 운반할 도구도 없었다. 겉싸개는 그렇게 어쩌다 한번 벌어지는 아이의 나들이에서 성능 좋은 외투이자 운반도구였다.  

그러나 생후 3개월을 넘겨 4개월을 바라보는 아이를 계속해서 겉싸개로 감싸 안고 다니려니 힘들었다. 몸무게가 늘고 몸집이 커진 아이를 단순하게 안아서 운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른 운반 수단이 필요했다.

그때 아내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육아용품 박람회에서 아기띠를 사면서 덤으로 받은 신생아 아기띠, 슬링을 꺼냈다. 목이 서지 않은 아이를 품 안에 고정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아이를 운반할 수 있는 도구였다. 천의 이음으로 구성된 지극히 단순한 구조였지만 신생아를 안고 이동하기에는 꽤나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아내는 슬링이 편하다며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갈 때면 그것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슬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왠지 모르게 어색했고, 그것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기가 싫었다. 육아에 적극적인 남자였지만 슬링은 하는 것은 마치 여자들의 전유물을 빼앗는 것 같았다.

슬링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부터 한국의 어머니들이 아기를 안을 때 쓰던 보자기가 생각났다. 빨래터에서 아기를 등에 업고 빨래를 하던 어머니들, 슬링은 그녀들의 보자기가 현대적으로 변형된 느낌이었다. 그런 슬링을, 남자인 내가 한다는 것은 왠지 여자의 영역에 침범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육아가 더 이상 여성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슬링은 여자들의 그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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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단칸방에서 살다 보니 보관의 문제 때문에 돈이 있어도 유모차는 구입하기가 꺼려졌다. 겉싸개는 더 이상 사용하기가 버거웠고, 유모차는 아직 살 수 없고 …, 그런데 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등원과 하원을 시켜야 했다. 출산휴가가 끝난 아내의 복직으로 이제는 내가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는 여자들의 전유물로 느껴지는 슬링을 한다는 것이 아직도 거북했다.     

하지만 아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야만 하는 그날, 나는 슬링을 했다. 며칠 전부터 연습을 하기는 했는데 여전히 버벅대던 나는 결국 아이를 슬링으로 안았다. 딸아이의 체온이 나의 가슴으로 전달되었고, 아이의 호흡이 배를 통해 전달되었다. 겉싸개로 아이를 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의 호흡과 온기를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찬바람이 불던 1월의 그날, 슬링으로 딸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에서 나는 진짜 아빠가 된 것 같았다. 여자들의 전유물로만 느껴지던 슬링으로 아이를 안게 됨으로써 주변을 겉돌던 육아가, 중심으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외부의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딸아이를 나의 체온으로 감싸주던 그때, 나는 슬링이 민망하지 않았다.

아빠니깐 슬링으로 아이를 안는 것이었고, 아빠니깐 아이를 안고 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여자들이나 하는 것을 한 꼴불견의 남자가 아니라 온전하게 부모다운 진짜 아빠였다. 결국 슬링을 한다는 것은 나를 깨는 과정이었다. 여자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 아니라 부모답게 육아를 내 삶의 중심으로 끌어온 순간이었다.

슬링을 한 채로 맞이한 딸아이의 무게는 내가 책임져야 할 무게였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딸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책임의 무게였다. 생각해보면 슬링으로 아이를 안는 것이 꺼려졌던 것은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관념 때문이 아니었다. 완전하게 육아를 삶의 중심으로 끌어오기가 두려웠던 작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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