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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좁아서 편하기도 해

딸아이를 세 가족의 이부자리 가운데에 눕히는 것으로 시작된 단칸방 육아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었다. 도저히 안될 것만 같았던 단칸방에서 아기를 목욕시키는 일도 점차 경험이 쌓였고, 결국에는 미소를 띠며 목욕을 즐기는 딸아이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좁아서 늘 불만이던 단칸방 육아에서 딱 하나 좋다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방이 좁아서 편하다는 것이었다.


아기침대도 없고, 흔들 침대인 바운서도 없고...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물리적인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물품은 우리의 단칸방에서 모두 배제되었다. 세 가족의 이부자리에서 가운데에 위치한 딸아이의 머리맡에는 아기의 기저귀와 물티슈, 수딩젤 그리고 작은 수유등과 같은 자주 사용하는 물품을 두었고, 아이를 중심으로 좌측에 위치한 나의 잠자리 머리 쪽에는 젖병소독기를 두고 그 위에 겹쳐서 아이의 옷가지와 가제수건 등을 담은 박스를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부자리 머리맡의 빈 공간에는 방벽에 닿기 전까지 이런저런 쿠션 등을 둠으로써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의 벽에서 밀려오는 한기에서 최대한 떨어지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집에 빈 공간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공간을 빼서 단칸방 육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좁아서 불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이를 씻기려면 세 가족의 이부자리를 반으로 접어 생기는 공간에 욕조를 펼치고 아이를 씻겨야 했고, 부부가 식사를 하려면 마찬가지로 이부자리의 일부를 접어 나오는 공간에 상을 펴고 식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아기를 중심으로 배치된 필수 육아용품들을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기에 편한 부분도 있었다. 배고픈 아기에게 그리고 응가를 한 아기에게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었다. 우리는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필요한 욕구에 대해 신호를 보내는 딸아이는 신속하게 욕구 충족을 이루게 되니 만족스러워 보였다.


"방이 좁아서 편하기도 해!"


아내가 한 번씩 건네는 말이었다. 집이 좁다고 불평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집에 대해서 나에게 말할 때는 꼭 이 말로 끝냈다. 함께 고생하는 동지에 대한 배려였을까! 그래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짜 편하기도 했다. 방 안에서 식사도 하고, 빨래도 말리고, 아기 목욕도 시키고... 진정한 멀티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우리 단칸방에서의 육아는 방이 좁아서 편하기도 했다. 모든 움직임의 동선이 빼곡하게 찬 짐 때문에 최소화될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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