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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 목욕탕

산후조리원에서의 2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사이, 우리는 아기에게 분유를 주고 트림시키는 방법이라든지, 풀어지지 않게 속싸개를 싸는 요령 그리고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기술 등 앞으로 펼쳐질 본격적인 육아에 꼭 필요한 팁을 산후조리사들로부터 틈틈이 배워 두었다.

이제 이곳을 퇴실해서 우리의 단칸방으로 돌아가면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는 한, 어쨌거나 아내와 내가 모든 상황을 알아서 극복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딸아이를 안고, 산후조리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책임의 무게였을까! 아이를 안고 집으로 걸어오는 10분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딸아이를 우리의 잠자리 가운데에 눕혔다. 겉싸개를 풀고, 그것을 요로 삼아 놔두었다. 아이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m 남짓한 겉싸개를 벗어나지 않고 팔다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미소를 띠었다. 생각보다 단칸방이 편안한 모양이었다. 호텔 같았던 조리원에 있다가 좁은 단칸방으로 환경이 바뀌었기에, 울고 보채며 불편하다고 소리를 낼 만도 한데 딸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미소를 보이며, 가족의 보금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단칸방이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이를 재우는 것도, 아이에게 분유를 주는 것도,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그러나 한 가지가 걸림돌이었다. 그것은 아이를 씻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칸방의 한 편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아이를 씻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보통 체형의 한 사람이 들어가도 세면대와 여러 번 몸을 부딪쳐야 겨우 씻고, 볼일을 볼 수 있는 비좁은 화장실에서 아기 욕조를 펼치고 딸아이를 씻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태열로 인해 땀이 많은 신생아를 안 씻길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목욕을 시켜야 하는데 씻길 공간이 없었다. 고민 끝에 방 안에서 아이를 씻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이를 씻길 때면 세 가족이 눕는 이부자리를 반으로 접었다. 그렇게 생기는 공간에 접힌 아기의 욕조를 펼치고, 최대한 싱크대 쪽으로 붙였다. 그리고 싱크대 샤워기의 호스가 더 이상 당겨지지 않을 때까지 당긴 후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았다. 다행히 아기 욕조를 싱크대 쪽으로 최대한 붙이면 싱크대 샤워기의 머리가 딱 아기 욕조에 닿았다.

일단 싱크대에서 온수가 나올 때까지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고 뜨끈한 물이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면 샤워기를 아기 욕조로 옮겨 욕조의 3분의 1 정도 높이로 물을 받았다. 욕조 안의 물높이는 중요했다. 물을 조금만 많이 받아도 목이 잡히지 않은 신생아를 씻기기가 불편했다. 좁은 방 안에서 아기를 씻겨서 그런지 아기가 물속에서 휘청거리면 씻기는 우리도 몸에 힘이 더 들어갔고, 잘 울지 않는 딸아이도 울었다.

씻기는데 아기가 울면 그날은 녹초가 되는 날이었다. 방 안에서 아기를 씻겨서 그런지 습도는 급속도로 높아졌고, 그것이 방안의 온기와 만나면 제법 큰 불쾌감을 불러왔다. 거기에다 아기가 울어버리면 주변에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의 신경은 무척 날카로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일 회사에서 근무하고 돌아와 피곤한데 예민한 상태로 정신적 자원을 모두 소모해버리니 딸아이를 다 씻기고 자리에 눕히면 나도 그 옆에 누워 그대로 뻗어버렸다.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응가를 했어도... 딸아이는 잘 울지 않았다. 약 4시간 간격으로 주는 분유를 줄 때까지 밥 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응가한 기저귀를 빨리 안 갈아준다고 신경질을 내지도 않았다.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모의 처지를 헤아린 듯, 이제 태어난 딸은 너무도 순하게 생의 초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딸이 우는 때가 습기로 꽉 찬 단칸방의 한쪽에서 물 많은 욕조에 몸이 담겨 휘청거릴 때였다.

딸이 울면 마음이 아팠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데... 죽으나 사나 몇 달은 이 단칸방에서 살아야 하는데... 욕실에서 목욕을 하는 지극히 평범한 환경조차 만들어주지 못하는 못난 아비라는 자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이러려고 단칸방에서의 삶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는데 실질적으로 맞이한 단칸방에서의 육아는 처절했다.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내가 선택한 삶이었지만 그 선택이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견뎌야 했다. 우리 가족이 20년이고, 30년이고,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제대로 된 우리 집을 소유하려면 견뎌내야 했다. 좋은 집을 찾을 때까지 견뎌야 했고, 소유해야 할 우리 집을 살 수 있는 종잣돈이 더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때때로 한없이 슬퍼 살아가는 게 버겁다 느껴져도 이겨내야 했다. 그래야 원하던 우리 집이 생겼을 때, 지난날의 고생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아니라 치열했던 삶의 추억으로 우리의 머리에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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