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실제로 26주 동안 스텐트를 넣고 살면서 나는 단 8주간만 그럭저럭 괜찮았고, 그 외 나머지 기간은 너무 힘들었다.
걸핏하면 변기에 붉은 간장을 콸콸 부어 섞은 듯한 혈뇨가 나왔다. 배출이 시작될 때와 마무리될 때 소름 끼치는 작열감은 말할 것도 없다. 하아악 으하아아아앗, 화장실에서 매일 기수련 하는 듯한 심오한 소릴 내게 되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절박뇨 증상. 불시에 소변이 마려워지면서 다리를 꼬아도 참아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얘기하니 뭐 굉장히 오랫동안 참은 것 같은데, 꼴랑 정수기에서 컵에 물 한잔 받는 동안 그 짧은 순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절박해도 이렇게 절박할 수가 없는 절박뇨였다.
병원나이 3@살인데 아침마다 정수기 앞에서, 양치를 하면서, 소변 때문에 다리를 배배 꼬고. 종종 흘리기도 하였다. 아, 맙소사 맙소사...
스텐트(요관부목)는 콩팥부터 방광까지 가는 길을 받쳐주는 건데 나는 왜 때문인지 항상 밑이 그렇게 불편했다. 그리고 한 시간여쯤 앉아있으면 옆구리가 결리는 느낌이 들어서 자세를 바꾸거나 차라리 그냥 서 있거나 했다.
예배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우덜 다 못 배우고 몰라서 못 사는 거 아닝께 자고로 설교는 분량이 짧아야 그 자체가 은혜로워지는 거라고 수차례나 단속을 했다.
무언가 분명 정상은 아닌데, 이런저런 증상 다 있을 수 있는 거니 <열이 나면 그때> 오라고 강조하셨던 말씀 때문에 병원 가기가 망설여졌다. 앞바퀴가 들릴 것처럼 깎아지르게높디높은 언덕 위에 있는 대학병원을 가는 것 자체도 하나의 고난도 미션인데, 거 별일 아니라니까 소리나 들음 어째. 다른 땐 걸핏하면 펄펄 나는 열이 이럴 때는 침착하게도 정상체온이지.
스텐트 시술은 또 어떻고.
이게 정말 치 떨림의 하이라이트지.
수면마취를 하면 부지불식간에 몸을 움직이게 되니 위험해서 안되고, 전신마취를 하자면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8시간 이상 금식, 전신마취에 따른 수술방 스탭 추가 필요) 그냥 진통제 넣으며 넣고 빼고 한다.
그런데 마취를 안 하는데도 왜 때문에 항상 스텐트 시술 있는 날은 새벽부터 물도 마시지 말고 와야 된다 하셔서 굶고 갔넹.?
글 쓰다 갑자기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ㅎ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을 수술방에서 각 잡고 하는 건 똑같다.
수술방에서 베드 위에 누운 자와 옆에 서 있는 자의 체감온도는 엄청 다르다. 수술방 안에서 베드에 눕는 역할을 맡은 자에게 마취를 시켜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육체적 정신적 타격감이 상당하다.
사실 시간으로만 보면 정말 간단한 시술임에는 맞다. 3-40분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의 삼십 분은 참말로 영겁의 세월이다.
수술실은 너무 춥다. 수술방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단계의 방화문을 지나게 된다. 한 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온도가 더 더 낮아진다. 발가락을 꼬물대며 공포와 추위를 참아본다. 너무 추운데, 차가운 소독약으로 하반신을 덕지덕지 소독한다.
첫 번째 시술 때는 긴장으로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고 얼굴도 온통 눈물범벅이어서 몰랐는데, 두 번째 시술할 때 보니 수술베드 위에 폭신하게 시트가 여러 겹 깔려 있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한겨울이라서 나 추울까 봐 배려해주셨나 봐 속으로 생각하며 감동을 받았더랬다.
시술 막바지에 알았다. 방광이 열리기 때문에 모두 쏟아지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바닥청소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장치였다는 걸 말이다. 이건 내가 정신을 놓거나 실수를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순간적으로 수치심과 자괴감이 말할 수 없이 몰려들었다.
스텐트와의 동거는 황당하게 마무리되었는데, 때는 2월의 어느 날이었다. 2024 새해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내가 코를 엄청 골기 시작했다. 잠으로 넘어갈 때 크랑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서 깼다가 또 한참 지나 잠으로 꼽박 달게 들어가려고 할 때 또 크랑! 깜짝! 밤새 이걸 무한반복 하게 된 것이다. 수면검사를 해 보니 내가 수면그래프도 너무 안 좋고 무호흡 비중도 상당해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이참에 평생 거추장스럽게 달고 있던 양측 편도선 전절제술도 받기로 한다. 그러고 나서 이런 약 저런 약 비뇨기과 약 산부인과 약 내과 약 등등 먹는 약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지 감기가 절대 떨어지질 않았던 것이다. 2월 내내 기침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2월 마지막주의 토요일, 기침하면 자꾸 목이 아픈데 기침이 나서 캘록캘록 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조금 샌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갔는데 속옷이 축축해졌길래 '하... 또군'하며 씻으려고 손을 대는 찰나 등골이 서늘해졌다. 스텐트가 빠져나와 있었다. 맙소사!!! 아! 망했다!!
새로 넣은 지 2주밖에 안 된 게 왜 빠지고 난리?!
서둘러 패드를 받치고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들끼리 내선으로 이리저리 전화를 연결 연결 돌리고 돌리다 돌아온 답변은 "지금 비뇨기과 선생님이 없으니 참고 있다가 월요일 아침에 외래로 와라" 였다. 10분 남짓의 통화를 하는 사이 이미 패드는 넘치고 허벅다리로 졸졸졸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통증도 말도 못 하고.
"선생님 저 이거 소변이 계속 새는데 어떻게 버티라는 거예요? 꼭 담당 교수님 아니어도 아무나라도 괜찮은데요. 이거 그럼 요도에서부터 콩팥까지 고속도로 난 거나 다름없는데, 감염이 되면 어쩌고요? 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벽에다 스쿼시를 치는 듯 대답은 똑같았다. 불편한 건 알겠지만 그냥 참고 월요일날 외래로 와라.
전화를 끊고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니기들도 꼭 스텐트 껴봐라. 그리고 꼭 빠져라! 주말에!
왜 항상 문제는 금요일 깊은 밤이나 토요일 외래가 끝난 뒤에 생기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허벅지로부터 화장실 바닥까지 온통 시내를 이루고 있었고 화장실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첫째를 시켜서 부랴부랴 디펜드 기저귀를 사서 입었다.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던지 모르겠다. 나의 시간만 또, 멈추고 말았다.
1월에 받은 편도선 전절제술은 아프기로 유명한 수술이다. 그리고 목구멍이 아프니까 한동안 잘 못 먹기도 한다. 그때도 겨우 500그람쯤 빠졌던 내가 요 이틀 동안 3킬로그램이 빠졌다. 그만큼 소름 끼치는 통증이 밤낮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목이 말랐지만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또 생길 테니,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별거 마신 것도 먹은 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소변은 계속 만들어졌다.
사람 몸이 얼마나 놀라운 기관인지 아는가. 콩팥이 이토록 열일을 하는지, 이전에는 몰랐었다. 방광이 열려보니, 이곳은 수액발전소였다. 고로쇠나무가 된 것 같았다. 똑똑똑 똑똑똑 똑.... 끝없이 만들어졌다. 소변을 방광에 모았다가 한 번에 배출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인지 그날 알았다.
#징해 진짜
#어휴
나 정말 어이없네
스텐트 빼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어째서 스텐트를 만났을까요?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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