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결혼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떤 드레스, 어떤 웨딩, 어떤 살림살이 등에 관한 계획이나 생각이 전무했던 상태로 그냥 이 오빠랑 살면 태백 산간에 살든 어촌 바닷가에 살든 재미날 것 같아서 선택한 결혼이었다. 로망은 커녕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청첩장 디자인, 예식장, 드레스, 사진 컨셉, 신혼여행지 등을 고를 때 "응 아무거나 좋아."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듣기에 따라 그게 얼마나 짜증 나는 대답인지 알지만 정말 뭐든지 좋고,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신혼 여행지가 인도네시아인지 태국인지 필리핀인지, 정확하게 기억을 못 했다. 그냥 푸껫 그리고 피피섬 이라고 기억할 뿐ㅋㅋㅋ
결혼 바로 직전 주간에 철야근무를 꼬박 두 번을 하고 그전에도 계속 살인적인 스케줄을 버텨야 했던 나는 그저 결혼식을 올리면 일주일간 출근을 안 할 수 있다는 게 기다려질 뿐이었다.
신혼여행을 떠올리면 방에 바다가 보이는 풀장이 있었던 것과, [우리 둘이] 떠난 [유일한 여행]이었다는 점만 기억난다. 오늘은 이것에 대한 이야기다.
내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면, 아기가 생긴 뒤로 거의 매주 어머님을 만났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우리 둘은 사실 지금까지도 싸울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점 때문에 항상 싸웠던 기억도. 특이한 점은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생기기 전 휴가에도 시어머님이 항상 오셨었다. 왜 오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항상 휴가 두어 달 전부터 이번 휴가는 언제 가느냐, 어디로 가느냐고 전화가 왔었고...우리가 휴가를 지내는 펜션 동네 인근으로 갑자기 지나갈 일이 있으셨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가 머무는 펜션에 오시는 날은 어디냐 식당 예약했냐 우린 몇 시쯤 도착한다 하시는 내용을 담은 적극성으로 무장한 통화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자꾸 싸우고 힘들어서 그냥 이 부분의 기억은 흐리게 지워버린 것 같다)
아무튼 봄부터 이번 여름휴가는 언제 가느냐고 전화가 오는 게 난 정말 싫었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해부턴가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 졌을 때 부모님은 이미 너무 늙어버리셔서 무릎이 아파 어디를 다니시기 힘들어지실 수도, 이가 약해지셔서 맛난 음식을 드시기 어려워지실 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 내가 조금 양보하면 모두에게 다시없을 젊은 날에, 함께 행복한 기억을 쓸 수 있잖아. 하고 생각했다.
양가가 모두 모여도 성인 여섯에 아이 두 명인 단출한 우리 일가. 부목사 휴가 1년에 달랑 5일뿐인데 이 집 저 집 쪼개지 말고 양가 부모님 사이도 좋으신데 모두 함께 휴가를 떠나자고 남편에게 제안한 뒤로는 속이 시끄럽지 않았다.
두 돌도 안 된 아기부터 6,70대까지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만큼 챙길 것도, 신경 쓸 것도 참 많다. 그럼에도 양가 부모님과 함께 떠난 휴가는 인생에 다시없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나)
언젠가 남편에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우리도 우리 아이들과 오롯이 여행 다녀볼 날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애들이 언제까지 우리 품 속의 아이들로 있겠어? 이제 곧 자기 친구들이랑 논다고 할 거야. 그러니 효도는 이만 내려놓고 우리끼리 휴가 좀 가자고.
부모님 하루라도 젊으셨을 때 함께 모시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오롯이 함께 지내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도 저 마음도 다 내 마음이 맞고 함께 하기 싫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기에 좋았던 기억도 참 많다.
신혼여행 말고는 남편과 즐긴 휴가가 없었던 나, 올해 여름 처음으로 어머님께 정식으로 휴가를 받아 말썽꾸러기 아들 둘 어머님 손에 맡기고 남편과 홀연히 단둘이 휴가를 즐기고 왔다는 말씀.
이게 꿈이야 생시야 '0'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고 하니,
돌아가시기 전에 외동딸 속 많이 끓게 하고 떠난 엄마
언제 가게 되실지 몰라 우리 올여름휴가는 전면 백지화 되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세 번째 인생 대수술을 겪은 내가 상을 치를 만큼 회복된 뒤 이면서, 우리 여름휴가 주간이 오기 전에, 마침맞게 하늘나라로 소풍을 가신 덕분에_
어머님께서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맘고생 몸고생 많이 한 너희 둘이 오붓하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하신 것이다.
양가 어머님들이 마련해 주신 선물처럼 느껴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의 2 콤보 위에
자라면서 할머니와 자주 만나 충분히 친밀한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네 밤짜리 여행에 순순히 협조해 주었기에 가능한 쾌거였다.
할머니와 보내는 휴가라니?
아이들은 통제 없이 밤늦게까지 놀 생각
태블릿 게임 왕창 할 기대
매일매일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할 기대감에 들떴고
우리 부부는 단둘이 여행 갈 기대감에 설렜다.
4일간의 달콤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우리를 공항에 마중 나오신 어머님이 너희 아들 녀석들이 얼마나 개구지고 틈만 나면 오지게 싸워댔는지 하소연을 하시는데, 웃음이 나면서 걱정이 들었다.
이제 다음부터 우리랑 휴가 안 지내신다고 하면 어쩌지?!
나는 이미 북적북적 사람 많은 휴가에 완벽 적응을 했는데! 어머님께 꾸러기들 맡기고 바다에 뛰어들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