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앞서 오늘 글에는 응??! 하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옴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뜨악해하는 제 심경을 찰떡같이 나타내줄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적당한 표현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제안해 주세요^^
그럼 이야기 시작합니다.
우리 시댁은 송파
친정은 인천이다.
광역시와 특별시를 오가는 거리지만, 이 정도 거리는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출퇴근하는 수준의 거리로, 1일 생활권에 속한다.
제주에 지내던 시절, 제주에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많았지만 내가 가장 놀랐던 제주의 문화중에 하나는 차를 타고 5분 이상 가야 되면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섬 전체가 새 학기나 취업 시즌에 맞추어 부동산 매물이 났다 없어지기 때문에, 그 외의 시즌에 집을 구하려면 집 구하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부동산에서 말씀해 주셨다.
응??!
차 타고 5시간도 아니고, 고작 5분이 어쩌라고 이사를 가는 거지? 집을 알아보고, 이삿짐을 싸서, 이사를 가고 하는 게 더 복잡하지 않나?
싶었지만
여기가 그렇다는데 뭐,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들 뾰족한 수가 있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집이 나온다는 이사철을 기다리는 수밖에.
제주 이야기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때 하기로 하고,
오늘은 함양댁(경남)이시면서 돌연 제주댁처럼 구셨던 우리 어머님의 일화이다.
명절 때 시댁을 가서 한 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을 먹고 치우면 이젠 친정으로 가서 또 한밤을 지내고 연휴 마지막날은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내 상식에 자리 잡혀 있는 명절 지내기의 정석적인 타임테이블이었다.
그런데 명절 둘째 날이 되어 아침을 먹고 났는데 어머님이 "점심은 몇 시쯤 먹을래?" 하신다.
그러자 남편이, "아침부터 많이 먹어서 배가 안 고플 거 같은데 이따 한 세시쯤 먹지 뭐."하고 대답을 한다.
응??!?
이게 지금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우리 집은 언제 가??
그러더니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50킬로 거리 친정길을 서울-대전 이상의 장거리 떠나듯 챙기시며 자꾸 지연시키시는 어머님이었다.
뭘 그렇게 자꾸만 가다가 차에서 먹으라는 건지..
그거 차에 가다 다 먹으려면 해남 땅끝마을 정도는 가줘야 할 것 같은데_
이미 빠져나갈 차들은 다 지방으로 내려갔고, 서울 도심 안에는 차도 없는데 어머님은 자꾸 지금 가면 길 막히니까 밥을 먹고 가고 운전하려면 힘드니까 낮잠을 자고 가라고 하셨다. 얼마가 걸리든 그냥 먼저 출발하면 더 빨리 도착할 텐데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엔 온통 하나뿐인 딸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실 아빠 얼굴이 떠올랐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경차에 짐 실을 곳도 없는데 이것저것 가져가라고 꾸역꾸역 담아주시는 게 그땐 정말 싫었다. 그건 마치 친정 안 가고 우리 집으로 복귀할 줄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나는 그런 거 저런 거 받아가는 것보다, 빨리 친정에 가고 싶었고 우리 집으로 돌아갈 땐 우리 엄마 음식도 받아오고 그러고 싶은데, 조수석 자리의 내 발치까지 뭐를 싣고 나는 한쪽으로 구겨져 짝궁뎅이로 앉아서 가야 되는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어머님이 챙겨주신 물품들엔 냉동실에 있던 음식들도 많아서, 그게 언제부터 얼어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차에 그냥 두고 하룻밤을 보낼 수도 없어서 친정에 다 이고 지고 끌고 올라갔다가, 또 담날 다 챙겨서 가지고 내려와야 되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두어 번 명절을 보냈을까?
그 이듬해부터는 우리 가족 다 모여도 단출한 식구들인데 명절 때 만이라도 한번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시자는 제안을 해오셨다.
모두 모여서 즐겁게 맛난 식사를 하는 건 좋았지만 그러고 나서 이제 우리 집 쪽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자꾸 산책하러 가자, 차 마시러 가자, 하시는 게 아들내외를 붙들고 늘어지신다고 느꼈다.
그 당시의 내 남편은 참말로 찹쌀떡같이 몰랑몰랑하기가 그지없는 사람이어서,
어머님의 지연 시그널을 읽지 못하고 언제나 어머님이 하자는 대로 휘둘렸고, 나는 이대로 살다간 속병이 날 것만 같았다.
아아, 어머님은 왜
우릴 보내주시지를 않으시는 거야?
매주 또 우리 집에 오시기도 하면서!!
말을 해야지 안되겠다
나는 이런 때 아니면 사실 친정에 잘 가지 않는 앤데, 어머님은 '넌 전업주부이니 또 언제든 차 가지고 친정 가서 두세 밤씩 자고 올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은근히 명절을 다 자기가 독차지하시려 한다는 느낌.
평소에도 어머닌 나에게 전화를 거시면 항상
"뭐 해? 자나." 하고 말씀을 시작하신다. 잘 시간이면 전화를 안 하셔야 되고, 그게 아니면 나를 '늘 자빠져 하릴없이 잠이나 자고 있는 애'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신 게 말씀으로 드러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니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잠을 자요?
저 아침 일찍 일어나서 OO이 아침밥 먹여 어린이집 보내고 살림하고 있어요."라고 또렷하게 말씀을 드렸다.그리고어머님이 내가평일날 시간 많을 것이라는, 친정나들이에 대해 갖고 계신 선입견을 깨 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부모님이 친정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봐주시면
"저도 잘 몰라요. 가질 않으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오, 그래?! 하고 반신반의하시는어머님께, 난 연이어 두 번째 잽을 날렸다.
네. 아범은 항상 바쁘고
어머닌 저를 보내주시지 않으니,
언제 우리가 친정 갈 시간이 나야 말이죠.
지금 어머님이 시댁의 권리를 너무 누리고 계시고 나도 가야 될 집이 있는 누구의 딸이라는 것, 어머님 아들이 처가에서 사위노릇을 할 수 있게 배려해 달라는 내 나름의 표현이었고, 다행히 어머님은 알아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