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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Nov 30. 2024

입에서 독화살을 쏘는 여자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엄마가 죽을 까봐 무서웠고, 엄마를 실망시킬까 봐 무서웠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엄마의 인생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명절마다 엄마는 까만 날에 시골에 가, 빨간 날을 거기서 모두 보내고 다시 까만 날이 시작되는 날 어두컴컴한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엄마의 고단한 시댁 길에 나도 늘 동행했다.     

제일 먼저 왔다가 제일 늦게 가는데도 늘 우리는 할머니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골에 도착할 때는 “왜 이제 왔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벌써 가느냐” 소리를 들었다.

큰엄마는 아예 명절날 아침에 와서 손님처럼 앉아있다 아침밥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휘릭 가시는데, 작은 며느리인 울엄마만 저렇게 마치 맏며느리처럼 혼자 모든 주방일을 감당하고 할머니의 친정식구들까지 다 다녀가시도록 여길 지켜야 하는 걸까, 어린 나는 자주 생각했다. 작은엄마들이 친정에 간다고 나설 때도, 우리 엄마만은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일을 했다. 나는 친가에선 거의 유일한 여자애요 큰애였지만 외가에선 중간에 섞인 애였다. 외가에 가면 여자사촌들도 엄청 많았다. 나는 늘 외가에 가고 싶었으나, 명절에 외가에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발 우리도 명절에 외갓집에 좀 가요!


아이답게 이렇게 말해본 적도 없다.

그런 말을 감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걸핏하면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르고 드러누우시는 할머니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실 것 같았고, 내 말 한마디 때문에 집에서 또 엄마아빠가 살벌한 부부싸움을 하실 것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나를 따라다녔다.



어릴 때 우리 집엔 미싱이 있었다. 오버로크도 있었다. 먼지가 미친 듯이 날려, 아침저녁으로 집을 닦으면 보얗게 먼지 줄 때가 마치 솜사탕처럼 복슬복슬하게 걸레에 닦여 나왔지만 나는 엄마 옆에 누워 엄마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엄마가 돋보기를 낀 채 미싱 바늘에 실을 꿰고, 그 실이 미싱 상판 위아래로 들락날락하며 미싱 아래 숨겨진 북실과 함께 끼워지고 오른쪽에 물레처럼 생긴 걸로 앞으로 뒤로 돌리면 바늘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침내 실이 준비되는 그 모습들은 마법의 기계처럼 보였다. 북실이 감긴 보빈은 또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는지. 몽돌해변의 조약돌처럼 반짝반짝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싱 앞에서의 멋진 모습과 달리 엄마는 많이 힘들어 보였고, 자주 우셨다. 엄마가 그렇게 우실 때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고 바깥의 화창한 날씨와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내 세계는 엄마의 눈물로 젖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우셨다. 셋이서 밥을 잘 먹고 있다가도 불현듯 밥상에 냉기가 흐르면 나는 허둥지둥 남은 밥들을 입에 욱여넣고 내 방으로 숨어들었다. 금방이라도 밥상이 엎어질 것 같은 공포가 들었다. 자라면서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나 태어나기 전에는 밥상이 정말로 엎어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엄마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베개를 꼭 끌어안았다. 걸핏하면 편도염이 걸리는 통에 목을 보호해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에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써야 잠이 왔다. 결혼하고서도 한동안은 그렇게 하고 잤던 것 같다. 미라처럼 하지 않고 잠들었던 유일한 기간은 막내이모와 한방을 쓰던 때뿐이었다.


자다 문득 눈을 떴을 때 내가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놀람과 공포였다. 이대로 조용히 나를 버려두고 떠날 것 같은 느낌. 왜, 또 무슨 일이 있어서, 엄마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저렇게 우두커니 앉아 계신 건가 걱정되는 마음.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포근한 그런 느낌을 나는 느껴보지 못했다. 매일 밤, 마치 관에 들어가는 듯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치의 바람구멍도 없이 그렇게 이불로 나를 꽁꽁 감싸야지만 잠이 왔다.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불행을 입으로 쏟아냈다. 엄마의 삶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마저 엄마를 실망시키게 되는 날엔 엄마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자주 죽고 싶다고 했고, 나만 아니면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오늘 엄마가 어디 다녀온다고 말해준 게 없는데 학교 다녀와서 빈집이면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너무 힘드니까. 도망가도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엄마는 나를 무척 사랑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때로 엄마는 내게 이루 감당하기 힘든 폭언을 했다.

독화살을 맞지만 않는다면, 나는 괜찮았고 견딜만했다.

엄마가 입으로 독화살을 뿜는 것은 엄마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어린 나는 그렇게 엄마를 이해했다.

엄마를 화나게 하지만 않는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이고 살았다.


독화살을 요령 있게 피하는 것은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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