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글만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건축사는 도면만 그리면 될 줄 알았고,
전도사는 설교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지가 않다.
이세상 그어떤 일이든, 상상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다.
‘현장 일’이라고 치부하는 바로 그 일들을 알아야, 도면을 그릴 수가 있고 현장과 도면이 동일한지 알아보고 감리를 할 수가 있다. 도면만 잘 그리면 되지가 않고, 타일샘플 박스를 이고지고 낑낑대며 미팅을 다니는 게 현실이었다. 고상하게 도면도 그려야 했지만 손에 먹물을 묻혀가며 먹줄을 튀겨야 했다. 생각보다 전화 통화를 무척이나 많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실내건축사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공간을 건축주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3D MAX프로그램을 끼고 살아야 했다.
전도사가 되어보니, 아이들을 예뻐하는 건 기본이었다. 교사들을 잘 아울러야 하고 학부모들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왜 그리 영상 편집할 일이 많은지! 다음 세대 어린이들은 미디어가 익숙한 세대이기에 어쩔 수 없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한글 프로그램 만큼이나 파워포인트와 베가스를 켜고 앉아있게 되었다. 만들기에 시간을 쓰는 것은 물론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더 효율적으로 글을 쓰려면 배워야 할 잔기술들이 참 많았다. 구글폼 작성법을 배우게 됐다. ‘퍼널마케팅’이라는 것도 배웠는데, 반쯤 이해하다 만 것 같다. 생전 처음 알게 된 세상이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잠깐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투고 시 보낼 기획서도, 한글로 쭉 나열한 것은 매력이 없다. 마치 한 편의 광고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스토리텔링을 구상하고 그것을 한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만들었다.
편집장의 연락을 받으려면 ‘나’와 ‘내 글’을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투고 메일 제목부터가 첫인상의 시작이다. 일단 메일을 클릭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내 기획서를 읽을 리 만무하다.
처음에는 글 쓰는 일만 잘하면 작가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글이 세상에 나가기 위해선 ‘보여주는 기술’도 필요했다.
그렇게 망설임의 시간들을 보내던 9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클릭을 눌렀다. 투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메일을 돌린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드렸으니 확인해 보시라”는 출판사의 전화를 받았으며 그 외에도 출판사 수곳에서 이메일과 문자 연락을 받았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온몸이 짜릿했다. 이건 대학 합격보다 신나고, 프러포즈보다 설레었다. (그것들은 이제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해져서 그런 것일까?ㅎㅎ) 모 작가님이 출간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나도 정말 공감한다. 이거 정말 중독적인_ 어떤 굉장히 특유의 맛이 있는 감각이다!
그런데, ‘업계 용어’라는 것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서, 편집장님들의 잘 포장된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이 지금 ‘기획 출간’을 하자는 말씀이신 것인지 ‘자비 출판’을 도와주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요즘 출판시장이 어려워서요, 이와 같은 애달픈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메일은 참으로 나의 마음을 두드렸고, ‘그래, 나 같은 신인 작가의 글을 뭘 믿고 100프로 자본을 투자해서 내주겠어. 나도 일부 보탤까? 어쩌면 지금 나의 수준에는 그게 맞는 거 아닐까?’하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투고의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지망에 투고하고, 답신을 기다린 후, 가부에 따라 그다음 2지망에 투고하고 이를 반복하는 방식과/ 다수의 출판사에 동시다발적으로 원고를 투고하는 방식이다.
앞의 방식은 원하는 출판사가 명확할 때 유리한 방법이며, 가부를 확실히 한 뒤 다음 출판사에 연락을 취하는 방법이므로 여러 곳에서 동시에 연락이 와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 방법은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이나,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면 현재의 기획서를 업그레이드해서 다음 투고 시 성공확률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메일 읽씹’을 당할 수도 있고 답변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듯이 수십, 수백 곳의 문을 동시에 두드려 답이 오는 곳과 컨택하는 방법.
이 방법은 시간차를 두고 늦게 연락이 오는 출판사가 생기면 곤란해진다는 크리티컬이 있다. 다수의 출판사에 동시 투고하는 방식은 중복 투고가 되지 않도록 메일주소 체크를 잘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엑셀에서 손쉽게 검열을 할 수 있으니 발송 전에 체크해 보면 좋다.
그리고, 번거롭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 개별발송 방식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 옛날에는 손으로 쓴 원고를 들고 직접 찾아다니며 투고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투고하는 것이 얼마나 간편한지, 나는 우리 작가님들이 이런 것에 인색한 사람이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투고는_ 받는 사람을 배려하여 작은 디테일들이 모아졌을 때 기술이 되어 빛난다.
이를테면 투고 메일을 발송하는 타이밍도, 아무 때나 그냥 내 기분 내키는 날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간회의 전에 도착하도록 요일과 시간을 고려하여 보낸다던가 하는 것이 있겠다.
그 한 통의 메일마다, 나는 내 글의 명함을 건넨다고 생각하며 정중함을 담아 보냈다.
그 명함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랐다.
출간 방법도, 투고의 방식도,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는 없다.
본인의 목적을 분명히 하여 그것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
나는 투고를 할 때, 쉽게 보여주려고 했다.
출판사를 고르는 기준은 단 한 가지, 내 글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편집자, 결이 맞는 출판사를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고의 최종 목표는 이것이었다. 반드시, <기획출간>을 하겠다.
작가가 되는 길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자비로 책을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 글이 선택받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획 출간을 목표로 했다.
글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내 명함을 두 손으로 받아주시는 분을 만나게 된다.
#나, 프로n잡러였네
#기술 #실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