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열연을 하다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전혀 다른 모드가 되듯이, 아기와 내가 지금 그렇다.
너무 낯설다, 너란 존재.
우린 오늘 하루 또 어떻게 지내야 할까?
아이가 뱃속에 있어서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였을 때에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편지도 썼고, 태담을 할 때는 말이 술술 나왔었는데, 이렇게 내 눈앞에 실존하는 존재로 등장하자 낯이 너무나 설어서 미추어버릴 것 같았다.
아기는 내가 왔다 갔다 하면 내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주었다.
이런 건 너무 부담스러운데_
'하... 무슨 말부터 해야 되니 대체?'
고민고민 하다가, 오늘의 날씨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가야 오늘 밖은 눈이 많이 왔구나. 무척 눈부셔. 햇살이 유리알처럼 반짝이는데, 구름이 지나가는 속도를 보니까 바람이 꽤 부나 봐. 우린 나가지 말고 집에서 유자차를 마시자. 뜨거우니깐 엄마가 대표로 마실께? 넌 조금 이따가 쭈쭈로 맛만 살짝 봐~"
"아가야 오늘은 밖이 흐린 날이야. 엄마는 이런 날씨가 멋있다고 생각해. 이런 날엔 있잖아, 통창이 큼지막하게 있는 카페에 가서 바 자리에 앉는 거야. 혼자 가는 게 포인트야.
그리고는 책을 읽는 거지. 그럼 눈도 안 부시고 이따금씩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아주 편안하고 즐겁게 책을 읽을 수가 있단다."
"이제 기저귀를 갈 건데 엄마한테 쉬아 하지 마아~ 너 진짜, 엄마가 부탁 한 번 할께. 알겠지?"
등등
처음 친구를 사귀듯이, 라디오 진행자가 된 듯이,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고 아이는 흥미롭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6개월이 시작된 무렵, "엄마"라고 나를 불러주었다.
우리 아기가 나를 불렀다고, 엄마 라는 말을 했다고 주변에 얘기했을 때, 아기엄마가 허풍이 심하다며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때 그 부름은 나를 부른 우리 아이의 첫마디가 맞았고, 아이는 열두 살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그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내게 말을 다정하게 걸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