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아직 짐을 푸느라 난리북새통이라 다른 부목사님 댁에서 다 같이 얼굴도 익힐 겸 함께 식사를 했다. 각자 개인메뉴를 고르자, 대표로 집주인 목사님께서 중국집에 전화를 하셨다.
여기 사택인데요, 짜장 3개 짬뽕 2개 볶음밥 4개랑 탕수육 대자요.
이럴 수가,
이렇게 다짜고짜 본론을 말한다고?
주문할 게 많아서 주소 말씀하시는 걸 깜빡 하신 건가? 그런데 통화를 다 같이 듣고도 아무도 목사님께 주문 덜 넣었다고 얘기를 안 하시네?
설마, 이 동네 사람들은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알아?
대충격이었다.
이 동네에 교회가 한두 개도 아니고,
그보다 더 여러 개의 사택이 있을 텐데?
아하, 이 목사님은 엄청난 짜장면 애호가 셔서 중국집 VIP이신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건물이름과 동 호수를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철가방 아저씨는 잠시 후에 초인종을 누르셨고,주문한 대로 메뉴를 착착 꺼내놓고 쿨내 뿜뿜 하며 가셨다.
ㅡ
이사 후 유모차를 끌고 집 앞을 나섰다.
응~ 새로 이사 온 분이구먼~?
시골은 마을 길에 뜬금없이 평상이 막 있고 그렇다.
거기 앉아계시던 동네 할머니들이 나를 보시더니 대뜸 하신 말씀에 나는 또 대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무렵의 내가 얼마나 순진했냐면,
마트나 식당 등 어디에서 누가 기혼 여성에 대한 올림말로 사모님 하고 불러주시면 속으로 흠칫 놀라곤 했었다. 헉, 내가 사모인 거 어떻게 아셨지? 하고. 이삿날이 히트였는데, 사람들이 전부,몽골리안 힘센 아저씨까지!나에게 사모님 이라고 부르시는 거였다.
'아니 이 사람들 내가 사모인 건 어떻게 알았어??
아아 불편해.. 짐 이렇게 저렇게 놔달라고 요구하고 싶은데 까탈 부린다고 할까 무섭다아...'라고 생각하며 하루종일 사모로서의 차분함과 위엄을 보여드리려 애썼던 무지한 햇병아리였다.
그 후로도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아는 상황이 계속 일어났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닌데,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눈이 항상 있는 것만 같았다. 다들 옷을 입고 있는 중에 나만 발가벗은 기분이랄까.
그렇게 서울 한 바닥에서 태어나 일생을 서울 경기권을 벗어나 본 적 없었던 나는 시골교회에서 4년을 살고 나서 누구든 눈만 마주치면 일단 그냥 인사부터 하고 보는 인사봇이 되었다. 교회 사람이든 아니든 인사는 좋은 거고 인사를 안 해서 보는 내 이미지 타격은 상당했지만 인사를 해서 손 될 건 없었다. (아기는 벌써 둘째를 임신 중이지만 아직 만 나이 이십 대, 끝자락의 수줍은 새댁의 톤으로 인사했다가 새로 온 사모는 네 가지가 없는 것 같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이다)
낯이 익은 얼굴이면 반가움까지 추가해서
"아~! 안녕하세요오~~"한다.
옆에 있던 아이가 "엄마, 아까 그분 누구였는데?"하고 물어보면 "글쎄 잘 모르겠어. 그냥 낯이 익어서 일단 인사한 거야." 한다.
엄마가 인사를 잘하게 되자 아이들도 덩달아 인사봇이 되어서, 우리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인사성이 바르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하
#인사는_ 일단 하면 좋은 거
#HELLO
#외쿡에서는 인사 안 하면 응큼하고 나쁜 놈이래요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시골쥐와 도시쥐
#문화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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