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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l 21. 2021

#13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이의 일상

콩이는 바쁘다.

우리 콩이는 바쁘다.


놀이를 위주로 하는 숲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초등학생들이 학원 뺑뺑이 도는 것 마냥 어린이집 하원 후에 아동발달센터나 집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받는다.

물론 콩이한테는 '치료'라는 부담스러운 용어를 쓰지 않는다.

'수업'을 받는다고 말한다.

콩이는 '발달센터', '치료'라는 것을 글씨로는 알지만,

그러한 것들이 발달이 느리고, 어딘가 아픈 아이들을 전제하는 개념임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사실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도 치료의 관점에서 선택했다.

이전에 장애통합 어린이집에 다니기도 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전문가에 의한 발달지연의 치료나 상태의 개선보다는 전담 교사의 '돌봄'에 가까워

좀 더 치료적인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어린이집으로 현재의 어린이집을 고른 것이다.

숲어린이집은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대응 4단계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매일같이 근처 산에 가서 뛰노는 것이 주요 일과여서 대근육과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고,

나이별로 구분되지 않고 통합하여 보육을 하기에 사회성 발달에 조금이나마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등원 아동들의 가족 간에 유대감도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조금은 더 특별하기에

하원 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동네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콩이는 8시 20분쯤 어린이집에 등원해서 선생님과 논다.

친구들과 놀아야겠지만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하여

나들이 때 자연스레 선생님과 짝이 되고, 실내놀이 시간에도 선생님과 놀이하는 것 같다.

때로는 선생님과의 놀이도 거부하고 혼자 책을 보다가 필요할 때만 선생님을 찾기도 한다.

하원 후에 친구들과 노는 일은 거의 없다.

숲어린이집이 사회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감은 이미 상당히 빗나간 상태다.

어린이집에서 밀가루 반죽 만들기


돌봄 이모님을 따라 하원 하면

월요일엔 발달센터에서 40분씩 '인지치료'와 '특수체육 치료'를 받고, 집에서 '언어치료'를 받는다.

인지치료는 아동이 실제 생활하는데 필요한 인지능력을 높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통은 상황인지나 생활인지를 인지치료로 구분하는 것 같은데

작업인지나 학습인지 등 방향이 좀 다른 인지치료도 다양하게 있다.

콩이는 주로 시계 보기, 신호등 구분하기, 친구와 대화하기 같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상황 이해하기를 배운다.

특수체육은 몸 쓰는 것을 배우는데 징검다리 건너기, 배드민턴 라켓으로 풍선 치기 같은 활동을 한다.

요즘은 몇 주째 줄넘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발달센터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목욕하고 저녁 먹고 방문 선생님과 함께 '언어치료'를 한다.

방문 선생님은 언어치료를 '말놀이'라고 하여 콩이에게 말놀이 선생님으로 불린다.

콩이는 말 표현력은 상당히 양호해서 조음 치료나 발음치료 같은 원천적 언어치료보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적절한 언어를 구사하는 훈련을 주로 한다.

방문 치료는 발달센터 치료에 비해서 좀 더 성의가 있게 진행되는 것 같다.

가격도 더 비싸거니와 아동의 집에 와서 아동의 공간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화요일에는 '미술치료'와 '인지치료', '작업치료'를 받는다.

콩이가 받는 미술치료는 일반 미술학원처럼 그리기, 만들기 같은 걸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감, 클레이, 수수깡 같은 여러 가지 미술재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가지고 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청소의 부담으로 집에서는 쉽게 하기 힘든 놀이들을 하는 데다 선생님이 무척 활동적이어서

콩이가 아주 좋아하는 수업이다.

인지치료는 월요일 인지치료와 약간 다르게 주로 장난감이나 책을 이용해서 상황에 대한 인지를 학습하는데

미적지근한 진행으로 콩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곧 정리할 예정이다.

수업 후 집에 돌아오면 월요일과 마찬가지로 방문수업이 있다.

콩이의 소근육과 시지각, 눈손 협응 등 발달을 위해 작업치료 선생님이 집으로 오신다.

선생님의 외모나 성격이 뭔가 오밀조밀하고, 수업시간 활동도 대체로 뭔가 오밀조밀해서

역시나 콩이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이다.


수요일에는 어린이집에서 5시에 하원 해서 그룹으로 '놀이치료'를 받는다.

원래 같은 나이의 여자 친구 3명과 함께 총 4명으로 진행되던 수업인데,

지난주부터 코로나로 그룹수업은 멈추고 놀이 선생님과 1:1로 수업을 한다.

놀이는 참 어렵다.

얼음땡이나 숨바꼭질 같은 단순한 놀이도 콩이에게는 매우 복작하고 힘든 작업이다.

규칙을 알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해야만 놀이가 진행되는데

콩이는 제멋대로 다른 친구들의 놀이에 참여했다가 이탈했다가를 반복한다.

아이가 자연스레 놀이를 못하고 놀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목요일에는 '음악치료'와 '작업치료'가 있다.

음악치료도 미술치료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음악학원이 아니다.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것은 소근육 발달과 눈손 협응을 위한 치료가 된다.

간단하나마 악보를 보는 것은 시지각 훈련이 되고,

선생님의 지시대로 라운드 벨을 치는 것은 눈손 협응이나 상황인지 훈련이 된다.

콩이는 청각이 예민한 탓에 음감이 좋고 그래서인지 음악에 흥미가 많아서 이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집에 돌아오면 화요일과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고 작업치료를 한다.


금요일에는 '감각통합치료'가 있다.

선생님이 열의가 있고, 실생활에 꼭 필요한 여러 가지 신체활동을 하는 수업인 데다

콩이가 아주 좋아하여 연이어 2시간을 한다.

이 시간에는 시각, 청각, 공간감각, 회전감각 등 몸의 여러 가지 감각을 복합적으로 써야 하는

다양한 놀이 활동들을 한다.

이를테면 그네 타기, 사다리 오르기, 줄 사다리 건너기, 한 발 들고 움직이기 같은 활동이다.

평범한 아이들은 몇 번 실수하면서 일상에서 자연스레 익히는 활동들을

콩이와 같은 아이들은 치료실에서 훈련을 통하여 배운다.


토요일에도 콩이는 바쁘다.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음악치료'가 있다.

금요일에 만나는 선생님과 다시 1시간 30분을 감각통합치료실에서 놀고,

이어서 1살 많은 언니와 함께 언어치료를 한다.

선생님과 1:1로 하는 것보다 다양한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연습을 할 수 있어 유용한 것 같다.

점심먹고서는 목요일과 같은 음악치료를 8살 언니와 함께한다.


일요일에도 마냥 쉬지는 않는다.

오전에 교회 유아반에 갔다가, 이어서 문화센터 발레반에 간다.

콩이가 교회 유아반에 가는 것은 사실 신앙과는 상관이 없다.

자폐성 장애 아동들에게 교회 유아반에 참석하기는 상당히 추천되는 치료법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정상 아동들 틈에서 율동과 노래를 배우고,

예배시간에 착석하기, 선생님 지시 따르기 같은 사회활동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이다.

발레수업에 가는 것도 발레 동작을 배우라는 목적이 아니다.

역시나 정상 아동들에 자연스레 섞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정한 몸동작을 해 보고,

착석하고 일어나고, 뛰고, 점프하고 하는 활동들을 해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불행히 최근 코로나 유행이 심해져 교회나 문화센터가 다 문을 닫았지만...


콩이는 바쁘다.

다행히 아직까지 치료실에 가고, 집에 방문 치료사가 오는 것을 좋아라 한다.

치료와 일상생활, 그리고 그 경계선에 있는 활동들로 콩이는 오늘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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