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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Oct 07. 2021

#35 기저귀 졸업기

우리 콩이는 다른 것도 많이 느리지만 기저귀 떼는 것도 아주 느리다.

기저귀 떼는 것이 '느렸다'라는 과거형 표현 대신 '느리다'라고 현재형을 쓰는 것은

아직도 기저귀를 완전히 뗐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100%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아닌 곳에서는 화장실 가는 데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게 유독 어린이집에서는 아주 다르다.


콩이는 우리 나이로 5살이 넘어가면서 기저귀를 졸업하는듯 싶었다.

집에서는 휴대용 변기를 잘 사용하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에서는 하루 기저귀 수가 점점 줄더니 어느날 부터 선생님 동반 없이 화장실에 가기 시작했다.

대변을 먼저 가리고, 소변도 거의 가리는 듯 싶었다.

3~4개월 동안 대소변 실수가 거의 없어졌다.

기저귀를 졸업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5살 하반기로 가더니 퇴행이 시작되었다.

등원하고 아빠랑 헤어지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변 실수가 시작되었다.

하루 1번이던 것이 2번이 되고 3~4번이 되고...

다시 기저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수가 잦다고 해서 기저귀만 채워놔서는 그대로 퇴행이 굳어질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소변이 나온 것을 콩이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기저귀 안에 팬티를 입혀보기도 하고,

기저귀 대신 두툼한 소변 훈련용 팬티를 입혀보기도 했다.

별 소용이 없었다.


40~50분이 걸리는 등원시간 동안 카시트에 앉아 기저귀에 대변을 보는 날이 많아

어린이집에 등원하자 마자 화장실 데려가 씻기기 바빴고,

하루동안 콩이가 소변 실수한 팬티 갯수에 따라 저녁 기분이 오락가락 하였다.  

주기적으로 기저귀를 사물함에 채워넣어야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될까봐 늘 걱정이었다.


그렇게 콩이의 5살이 지나갔고, 6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을 집 근처 장애통합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6살이 되어서는 아내와 반년씩 번갈아 육아휴직을 하여 발달센터 보내는 시간을 많이 늘렸기 때문에

콩이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2시간 정도였다.

등원에 걸리는 시간이 아주 많이 줄어서인지, 엄마나 아빠가 놀아주는 시간이 길어져서인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짧아서인지, 전담 선생님이 있기 때문인지

아무튼 콩이의 대변 실수는 없어졌고, 소변 실수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변 실수 없이 하원하면 콩이가 원하는 보상을 주었다.

어린이집 앞 토끼 모형이나 텃밭화분 앞에서 사진 찍기

모닝빵 사주기,

'오줌을 싫어하는 팬티동생' 같은 아빠표 이야기 만들어주기,

엄마나 아빠가 뽀뽀 100번 해주기...

  

콩이는 화장실과 친해져갔다.

기저귀는 다시 안하기 시작했고 소변에 젖은 팬티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실수'라고 불러도 될만큼 어쩌다 하루, 한번 정도 소변 실수를 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2차 퇴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콩이는 6살이 되면서는 집에서는 물론이고 발달센터나 교회 같이 어린이집이 아닌 공간에서는

기저귀를 완전히 떼고 소변 실수에서 벗어났다.


어린이집에 있을 때가 문제였다.

소변 실수가 야금야금 잦아지더니 6살 후반부에는 다시 거의 매일 2~3번 하기 시작했다.

앞서 했던 유인책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어린이집에서만 유독 그러는 것은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었다.

교사의 학대같은 가혹행위를 의심할 정황은 없었다.

콩이 스스로의 문제인 것 같았다.

또래와 소통이 안되고 친구를 피하는 녀석에게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어린이집은 스트레스가 큰 환경일 것이었다.


결국 고민끝에 올해 콩이가 7살이 되면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지금의 숲 어린이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어린이집을 옮긴 후 희망섞인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첫 주에 3~4시간만 등원시켰는데도 소변 실수를 하루 2~3번, 4~5번, 급기야 10번까지 했다.

다시 기저귀를 주문하였다.

점보형이었다.

유아용으로는 더 큰 기저귀도 더 이상 없었다.


돌이켜보면 콩이는 어린이집을 옮긴 후 첫 주에 스트레스가 아주 컸던 것 같다.  

어린이집을 한두해 다닌 것도 아니고 선생님들을 아주 좋아하는 녀석을 보고

첫날 부터 잘 적응한 것으로 생각한게 오산이었다.

하루 10번의 소변 실수는 불안과 긴장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저귀 갯수가 하루 2~3개로 안정되었다.

덥고 불편한데 기저귀를 해야 하는 콩이가 안쓰러웠다.

콩이보다 2~3살 어린 아이들도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데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 같은 걱정은 더 커졌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고 9월 말이 되었다.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다.

어린이집 사물함에 기저귀를 더는 보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고 하원한 콩이 가방에서 소변에 젖은 팬티가 나오지도 않았다.

콩이가 갑자기 스스로 원해서나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모르겠다...

그동안 대학병원을 2곳이나 가봤다.

어린이집에서만 소변 실수를 한다는 것은 기능상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심리상의 문제라 하는데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 심리상태에 뭔가 큰 변화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어린이집이 편안해진 것일 수도 있다.

매일 콩이에게 치근덕거리는 희범이라는 녀석이 콩이에게 즐거움과 안정감을 준 것일 수도 있다.


모르겠다...

일단은 기쁘고 마음이 편안하다.

콩이는 이대로 어린이집에서 까지 기저귀를 졸업할 수 있을 것인가.

믿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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