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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Oct 01. 2021

#33 이 아이는 한글 떼기 어려워요

어느덧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콩이가 5살이 되었을 무렵

콩이의 첫 언어치료사는 콩이가 한글을 깨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 콩이는 그림카드에 그려진 동물, 음식, 사물 등을 구분하지 못했다.

호랑이 그림을 강아지라고 하고, 사과 그림을 딸기라고 하고, 냉장고 그림을 비행기라고 했다.

호랑이를 고양이라고 하거나, 사과를 토마토라고 하거나, 냉장고를 세탁기라고

그나마 비슷한 사물을 갖다 대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시지각이고 인지능력이다.


한글은 본질적으로 기호를 구분하고 그것들을 조합하여야 깨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림을 보고 좌우를 구분하고 상하를 구분하고 또 서로 같고 다름을 구분해야 익힐수 있는 건데

콩이의 시지각과 인지능력으로는 앞으로도 한글을 익힐 수 없을 것이라 한 것이다.


그 언어치료사가 싫었다.

목소리가 너무 큰 것도 싫었고,

치료실 밖에서도 반갑게 다가가는 콩이에게 따뜻하지 않은 점도 싫었다.

아무리 배움이 빠른 시대라고 하지만

5살짜리 아이에게 앞으로도 한글을 떼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그 태도도 싫었다.

얼마 안되어 다른 발달센터로 옮기면서 치료사도 자연히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 안되어 알게되었다.

그 치료사가 완전히 틀렸다.




5살짜리 아이에게

더구나 남들보다 훨씬 느린 아이에게 굳이 한글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콩이는 책장 넘기는 시각과 촉각 자극 추구가 있어 그 때도 집에서든 차에서든 책을 끼고 살았다.

자연스레 글자에 흥미를 갖는것 같았다.


수원에서 회사 옆 과천에 있는 어린이집까지 40~50분 함께 출퇴근하면서

카시트에 앉아 책장을 넘기적거리는 콩이에게 그야말로 재미삼아 소리로 한글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기역'하고 '아'를 더하면 '가'가 되는 거야.

'니은'하고 '아'를 더하면 '나'가 되는 거야.

그러면 '디귿'하고 '아'를 더하면 뭐가 될까?


이게 뭐지..

첫날에는 따라만 하던 녀석이 몇번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자 제법 알아맞혔다.

자음과 모음을 불러주면 한글자 한글자 알아맞추더니 며칠 지나자 받침 없는 단어를 맞춘다.

'이응', '아', '피읖', '아', '티읕', ''가 뭐게?

"아파트"

'기역', '오', '기역', '우', '미음', '아'는 뭐게?

"고구마"

차타고 오고가며 어느새 받침없는 단어 조합을 쉽게 맞춰낸다.


'이응', '어'에 '미음'을 더하면 '엄'이 되는 거야.

'이응', '어', '미음', '미음', '아'는 뭐가 될까요~?

"엄마"

"딩동댕"


'이응', '아', '니은', '기역', '여', '이응'~ 뭘까요?

"안경"

"딩동댕"


출퇴근 시간 글자놀이 며칠만에 다섯살짜리 우리 콩이는 소리로 한글을 쉽게 익혀냈다.

눈으로 글자 모양을 익히는 건 어려울까.

여전히 자음 모음 써 있는 종이를 보여주면서 한글을 익히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소리로 익히고 나니 콩이 스스로 글자 모양을 보고 자음 모음의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책장 넘기기를 위해 책을 끼고 살아 글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이여!!

콩이는 또 며칠만에 자음 모음을 금새 익히고 어느새 한글을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2살때 시작된 '보면서 책장 넘기기'가 5살에 '읽으면서 책장넘기기'로 바뀌었다.

실력없는 언어치료사가 그어놓은 한계선을 콩이는 가뿐히 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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