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둘 Aug 11. 2023

감행

김만봉 가출 당일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희수는 시간을 확인하며 은수에게 전화를 했다. 휴대폰을 어깨와 머리사이에 끼우고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를 꺼내 가방에 옮겨 담았다. 곧 은수가 전화를 받았다. 

“은수니?”

“응, 언니. 지금 가는 중이야.”

“좀 일찍 오라니까, 지금 어디야?”

“생각보다 차가 너무 막혀, 앞에 무슨 사고라도 났는지 차가 꼼짝을 안 해.”

희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언니는 그만 가봐.”

희수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무튼 빨리 와! 난 지금 나가야 하니까.”

전화를 끊은 희수가 만봉에게 갔다.

“아빠! 지금 은수가 오고 있으니까 집에 가만히 계세요.”

희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집에 가만히 있지 내가 뭐 너희들 몰래 가출이라도 할까 봐 그러냐?”

만봉은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은수는 언제 온대냐?”

“지금 사고가 났는지 차가 꼼짝을 안 한대,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걱정은 무슨, 너무 일찍 올까 봐 걱정이다.”

“뭐?”

“넌 얼른 가서 안사돈 생일상이나 잘 차려. 살 사람은 생일상도 받고 축하도 받아야지.”

“살 사람?”

“넌 나이도 젊은 게 왜 그렇게 자꾸 말꼬리를 잡는 게냐?”

희수는 만봉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으로 희끗한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그리고 가방과 겉옷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갔다가 밤에 다시 올게!”

희수는 서둘러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런 희수를 멀뚱히 보던 만봉이 급하게 희수를 불러 세웠다.

“희수야!”

“응?”

희수가 신발을 신으며 만봉을 보았다. 만봉이 희수가 있는 현관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우리 맏딸 한 번 안아보자.”

“왜 갑자기?”

“살면서 널 안아본 적이 있었던가 해서.”

“치, 아빠는 싱겁게........”

희수는 짐을 내려놓고 만봉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만봉은 그런 희수를 꼭 안았다. 

“희수야! 고마웠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니 만봉은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고 그 탓에 희수를 안았던 팔을 풀고 연거푸 재채기를 해댔다.

“아빠 괜찮아?”

만봉의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그래, 괜찮아.”

“그런데 고마웠다는 건 무슨 말이야?”

몇 번 더 재채기를 퍼부어대던 만봉이 눈꼬리에 고인 눈물을 오른손으로 쓸어내고 말했다.

“시집에서는 맏며느리, 우리한테는 맏딸! 그러니 네가 그동안 사는 게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어서 그런다.”

그때 희수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만봉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희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시어머니 경자였다. 대체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 안 오느냐는 잔소리가 쏟아졌다. 지금 가는 중이라고 얼버무리고 희수는 전화를 끊었다.

“아빠! 방금 무슨 말했었지?”

“우리 맏딸 고생이 많다고 했다.”

“아냐! 난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난 바빠서 가볼게. 밤에 만나!”

희수는 다시 짐을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현관문이 닫히고 나자 만봉은 닫힌 문을 보며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일 년 전 아내가 죽었을 때처럼 세상이 다시 고요에 빠졌다. 만봉의 어깨가 툭 떨어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공기를 가르고 윙하는 소리가 귓속을 쪼아댔다. 그때 어린 만봉이 다가왔다.

“뭐 해? 빨리 서두르지 않고!”

“만봉아! 난 다른 건 하나도 겁나지 않는데 우리 희수가 보고 싶을까 봐 그건 좀 겁이 나.”

“뭐?”

“우리 희수! 지 엄마랑 꼭 닮은 우리 희수 말이야.”

“너 지금 우는 거야?”

만봉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희수가 보고 싶어지면 어쩌지?”

만봉의 목에서 ‘끅끅’ 소리가 났다.

“고생만 하는 우리 희수, 지 남편 바람난 것도 모르는 불쌍한 우리 희수. 내가 마누라 다음으로 사랑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맏딸 희수.”

만봉은 한동안 그대로 서서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옆에 있던 어린 만봉이 재촉을 했다.

“이러다 은수가 오겠어.”

그제야 만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맷부리로 얼굴을 온통 적시고 있는 눈물을 훔쳐내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물을 뿌려서 얌전히 빗어 넘겼다. 자신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그를 신사답게 만드는 중절모를 머리에 눌러쓰고 준비해 뒀던 외투를 입었다. 한쪽 주머니에는 약병이, 또 다른 주머니에는 유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봉이 너도 같이 갈 거지?”

어린 만봉이 옆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수는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 시댁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이래서 너희 아버지 요양병원에 모시라는 거다. 진즉에 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으면 이렇게 서두를 일이 뭐가 있겠니?”

들어서는 희수의 뒤통수를 향해 경자가 잔소리를 퍼부었다. 희수는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늦지 않게 준비할게요.”

경자는 희수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왔다. 

“왜 대체 요양병원에 안 모시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희수는 경자의 말에 대답대신 분주히 식자재를 싱크대로 날랐다.

“너 이제는 내 말도 무시하기로 했니?”

“어머니!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네가 좀 일찍 왔으면 이렇게 바쁘지도 않았을 거 아니니? 그리고 너 듣자 하니 우리 민준이 혼자 집에 두고 친정에 가 있다며?”

희수는 싱크대에서 야채를 씻으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 덕분에 당신 아들이 집에 자유롭게 여자를 데리고 드나든다고, 그 여자와 내 침대에서 맘껏 뒹굴고 있다고, 들고 있던 야채를 경자를 향해 내던지고 싶은 생각을 꾹 눌러 삼켰다. 그 뒤에 서서 경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렇게 곰처럼 미련해서는....... 어차피 네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노인일 뿐이야. 네 아버지가 제정신이면 자기 때문에 젊은 너희 부부가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계시겠니? 아마 스스로 요양원에 가시려고 들지도 모르지.”

순간 희수는 야채를 씻던 손을 멈췄다.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니?”

희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눈물을 떨어뜨린 희수가 고개를 돌려 경자를 노려보았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만봉은 어린 만봉과 함께 집을 나섰다. 칼날 같은 찬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봉은 차가운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고 허연 입김을 내뿜었다. 절대 5분 전에 가출한 치매 노인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잘 펴지지 않는 허리를 힘주어 꼿꼿하게 만들었고 얼굴에는 평소에 짓지 않던 미소까지 살짝 지었다. 

아파트의 노인정을 지나 정문을 향하는데 길가에 모여 있는 참새가 만봉의 시선을 끌었다. 만봉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진행하고 있었던가를 잊어버리고 참새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네 마리의 참새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쪼아 먹고 있었다. 만봉은 호기심에 허리를 숙이고 참새가 쪼아 먹고 있는 게 뭔지 들여다보았다. 내용물을 확인 한 만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지난밤에 술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자신의 위장에 들이부었을 내용물을 그대로 다시 내뱉어둔 토사물이었다. 

“요즘 젊은것들은 너무 퍼마셔서 문제야. 도대체 뭐 때문에 감당하지도 못하도록 술을 퍼 마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만봉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참새 두 마리가 더 날아와 토사물에 안착했다.

“저놈의 참새들은 이 더러운 것에서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저리 쪼아 먹고 있는 거야? 뭐 먹을 게 있긴 한 거야?”

옆에 있던 어린 만봉은 토사물이 역겨워 고개를 돌렸지만 늙은 만봉은 호기심에 토사물을 향해 고개를 더 숙였다. 만약 그때 만봉이 비위가 상해서 고개를 들었더라면 때마침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던 은수에게 발견되는 행운을 누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만봉에게는 상할 비위 따위는 없었다. 

젊은 시절 수없이 많은 살인 현장을 다니며 단련된 튼튼한 비위 덕분이었다. 때문에 은수는 아파트 입구에 쪼그리고 있는 만봉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대로 미끄러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언제까지 그 구역질 나는 토사물을 들여다보고 있을 작정이야?”

어린 만봉이 말했다.

“아, 참! 나 죽으러 가는 길이었지, 가야지, 늦지 않게 죽으러 가야지. 참 재미있지 않아? 저 조그마한 참새도 살겠다고 이 추운 날 인간의 토사물까지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넌 저런 토사물 따위를 먹어야 하는 일은 없는데도 죽으려고 하지.”

“시끄러워!”      

    

야채를 씻던 희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던 경자를 노려보았다. 희수의 큰 키로 인해 위에서 경자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됐다.

“왜? 내 말이 맞잖아. 넌 그렇게 생각 안 하니?”

“어머니!”

“왜?”

경자는 허리를 더 곧추 세우고 턱을 치켜들었다.

“제가 지금까지 어머니한테 못한 거 없잖아요. 왜 저희 친정아빠일로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거예요?”

희수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어머! 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니?”

“그렇잖아요. 제가 저희 아빠 때문에 어머님, 아버님 병원 모시고 다니는 걸 소홀히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만사 제쳐두고 달려왔는데 왜 저를 이렇게 못살게 구시는 거예요?”

“얘는 말을 왜 그렇게 하니? 내가 언제 너를 못살게 굴었다고 그래?”

“지금이요, 지금 충분히 절 힘들게 하고 있잖아요.”

경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몰랐는데 너 아주 말 잘하는구나, 그럼 말 나온 김에 해 보자. 우리 아들! 민준이 말이다. 홀애비도 아닌 것이 지금 혼자 살고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당분간만이에요, 민준씨도 동의한 일이구요.”

“걔가 착해서 그러라고 한 거지, 설마 그게 좋아서 그러라고 했겠니? 남자 혼자 사는 게 보통일은 아니잖아?”

그때 희수의 입가에 비뚤어진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알아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할지.”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그리고 너 지금 웃는 거니?”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서요.”

“뭐?”

“어머니는 지금 민준씨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시잖아요.”

“우리 아들이 뭘 하고 다니는데?”

희수는 말을 하려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경자를 빤히 보다가 숨을 훅 내뱉었다. 눈에 눈물이 고여 반짝거렸다.

“말해 봐! 우리 민준이가 뭘 하고 다닌다고 네가 지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러는지.”

“민준씨는 아마 지금 혼자 지내는 걸 즐기고 있을 거라는 말씀이에요.”

“넌 아주 너 편할 대로 해석하는구나.”

“사실이에요. 어머님 아들이 지금........”

“우리 아들이 뭐?”

희수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눈을 부릅뜨고 경자를 노려보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희수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말해보라니까! 우리 민준이가 왜?”

그때 희수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희수는 경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은수였다.

“언니! 아빠가 없어졌어.”

“뭐? 아빠가 왜?”

“몰라, 집에 왔더니 아빠가 없어.”

“잘 찾아봤어?”

“응, 여기 앞에 놀이터랑 노인정 다 찾아봤는데 없어. 경비아저씨한테 물었더니 그런 할아버지 본 적이 없대. 어떡해?”

“금방 갈게. 다시 한번 잘 찾고 있어!”

전화를 끊자 경자가 팔짱을 낀 채 희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내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금방 가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희수는 얼굴이 햐얗게 질린 채 앞치마를 벗었다. 앞치마를 벗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현애미야! 내 말 안 들리니?”

“저 지금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너 제정신이니? 이건 다 어쩌고 간다는 거야?”

경자가 싱크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가 없어졌대요.”

“네 동생이 찾겠지, 뭐 멀리 가셨겠니? 곧 돌아오시겠지.”

“죄송해요, 저 가볼게요.”

“좀 있으면 이모들 들이닥칠 텐데 어쩌라고 이러니?”

“그냥 뭐 시켜 드세요.”

“그래서 내가 진즉에 노망 난 노인네 요양원에 보내라고 했잖아!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서두르는 희수의 뒤를 따라다니며 경자가 재잘거렸다.

“너 꼭 이런 식으로 가야겠다 이 말이지?”

희수는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가방을 들었다.

“너 이러면 우리 민준이도 참지 않을 텐데 괜찮겠니?”

신발을 신은 희수가 현관에 서서 경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맘대로 하세요. 이제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뭐? 상관이 없어?”

“네! 곧 이혼할 거거든요.”

“이혼? 너 이제 미쳤구나.”

“저한테는 어머님의 생신보다, 그리고 젊은 여자를 집에 끌어들여 뒹구는 민준씨보다 지금은 치매에 걸린 우리 아빠가 훨씬 중요해요.”

“너 그게 무슨 소리냐? 뭐 우리 민준이가 바람이라도 났다는 얘기니?”

“갈게요! 아! 필요하면 젊은 그 여자 불러다 생일상 받으시든지요.”

희수는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전 13화 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