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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둘 Aug 11. 2023

최적의 장소

만봉은 경기도 외곽으로 향하는 버스 맨 뒷자리에 어린 만봉과 나란히 타고 있었다.

“그냥 택시 타고 가면 편할 걸 대체 왜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면서 가는 거야?”

옆에서 어린 만봉이 투덜댔다.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택시를 타면 금방 추적을 당한다고.”

“추적?”

“그래, 그렇게 되면 내가 수면제를 꿀꺽 삼키기도 전에 추적에 나선 형사들에게 발견되는 불상사가 생기게 돼.”

“그래도 버스를 이렇게 많이 타는 건 너무 힘들어.”

“넌 나이도 어린 게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 게야?”

“나 때문이 아니라 늙은 너 때문이잖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는 늙은이가 버스라니, 너처럼 늙은 사람이 이렇게 사람 많은 버스를 타면 젊은 사람들이 싫어한단 말이야.”

“그런데 도대체 젊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늙은이들을 싫어하는 거야?”

“음, 그건 간섭하고 대접받으려고 하기 때문이지.”

“무슨 대접?”

“어른 대접! 그것도 맥락 없이.”

“난 그런 적 없어.”

“잘 생각해 봐.”

“그런데 넌 나만큼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뭘 그렇게 아는 게 많아?”

그때 앞에 타고 있던 젊은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는 만봉을 흘금 돌아보았다. 

“그것 봐! 젊은 사람이 싫어한다니까.”

어린 만봉이 말했다. 늙은 만봉은 어린 만봉을 향해 손가락을 입술 위로 가져갔다.

“그건 네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러는 거잖아, 제발 가는 동안 조용히 좀 해!”

서울을 벗어난 버스가 한 시간 여를 더 달려 한적한 정류장에 도착하자 만봉은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낮은 기온에 외투를 여몄다.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두 정류장 앞에서 내린 만봉은 허리를 쭉 펴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외딴 길가에 버스 정류장만 덩그러니 있을 뿐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썰렁한 그 길에는 눈에 띄는 CCTV도 없었다. 만봉은 주변을 다시 한번 살핀 후 몸을 웅크려 오른쪽으로 이어진 좁은 산길로 빠르게 돌아섰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더군다나 양쪽 무릎에는 인공관절이 장착돼 있는 노인이 길이 아닌 산으로 걸어갔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었다. 역시 오랜 형사 생활로 인해 터득한 이런 치밀함에 만봉은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다. 

어린 만봉이 옆에서 부지런히 따라왔다. 산으로 들어서서 잠시 걷자 좁은 등산로가 앞에 나타났다. 만봉은 혹시 누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잔뜩 경계하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유지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로 인해 오히려 뻣뻣하게 뒤뚱거리는 모양새가 됐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걷는 거야?”

어린 만봉이 물었다.

“내 걸음이 어때서?”

“아주 이상해.”

“그럴 리가, 엄청 신경 쓰고 걷는 중이야.”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사람들 눈에 수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야.”

“다행히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망정이지 만일 한 사람이라도 지금 널 본다면 너무 이상한 나머지 즉시 경찰에 신고할 것 같은 걸음이야.”

만봉은 걸음을 멈추고 어린 만봉을 보았다.

“너 자꾸 옆에서 잔소리하면서 성가시게 할 거야?”

어린 만봉이 주눅이 든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 조용히 따라갈게.”

늙은 만봉이 어린 만봉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어린 만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늙은 만봉을 보았다.

“너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왜 나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걸 지금 와서 갑자기 왜 물어?”

“그것 때문에 난 한참이나 널 형이라고 불렀잖아.”

“형이라고 좀 부르면 어때?”

늙은 만봉이 어깨를 툭 떨어뜨렸다.

“넌 원래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이야?”

“난 사실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

“너는 나야!”

“그럼 그런가 보지 뭐.”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경우 있게 행동해!”

늙은 만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 앞으로 나아갔다.     


희수는 차를 몰아 빠른 속도로 집으로 향했다. 머릿속이 까만 재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깜깜했다. 아침에 평소와는 다르게 자기를 껴안고 고마웠다던 만봉이 떠올랐다. 아빠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은수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거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몰라, 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아빠는 없었어.”

“아빠 소지품은? 휴대폰이나 지갑은?”

은수는 손에 들고 있던 만봉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휴대폰은 있는데 지갑이 없어졌어.”

“그럼 아빠가 지갑을 가지고 나가셨다는 말이야?”

“아마도.”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두 사람은 서둘러 경찰서로 향했다.    

 

추모공원에 도착한 만봉은 곧장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한 겨울의 추모공원은 그렇잖아도 무거운 공기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찰 무렵 만봉은 아내의 사진이 있는 봉안묘 앞에 도착했다. 

만봉은 숨을 몰아쉬며 이제는 정말 무릎을 충분히 사용했다는 듯 다리를 쭉 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이 많이 차가웠다. 솜바지를 입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잠깐 스쳤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닥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만봉의 시린 무릎을 쓸고 지나갔다. 만봉은 재채기를 한 번 하고 고개를 들어 아내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아내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 왔어! 왜 왔냐고? 죽으러 왔어.”

만봉이 멍한 얼굴로 아내를 보았다.

“왜 죽냐고? 당신이 그랬잖아 애들한테 짐이 되지 말라고.”

만봉은 긍정의 대답을 바라듯 아내를 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말이 없었다.

“당신이 있을 때는 몰랐어, 늙은 내가 애들한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 당신이 죽고 나니까 알겠더군. 늙고 병든 부모는 자식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깨달았어.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말이야.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은 꼭 뒤늦게 깨닫게 되는 건지.......”

고개를 떨군 만봉의 입에서 한숨이 새 나왔다.

“이제는 당신도 곁에 없는데 젠장할 치매에 걸리고 말았지 뭐야! 다행히 아직은 정신이 맑으니 지금이 딱 죽기 좋은 시간이야. 만약 이 좋은 시간을 놓치면 점점 흐려진 정신으로 더 살겠다고 징징댈지도 모를 일 아니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또 얼마나 힘들어지겠어. 특히 우리 희수가.”

희수의 이름을 내뱉고 나자 만봉은 코끝이 찡해졌고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

“우리 희수한테 미안해서라도 안 될 일이지. 암! 안되고말고! 어차피 슬픈 건 잠깐일 테니 결국 희수는 앞으로 행복해질 거야. 다만 강서방을 혼내지 못하고 죽는 건 조금 억울해. 그 빌어먹을 놈이 젊은 년이랑 바람이 났거든, 내가 평소에 저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 나쁜 놈이 내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나한테 거짓말을 하더군, 조금 전까지 주둥이를 맞춰보던 여자는 바람난 여자가 아니라 동료 간호사이며 내가 오해하는 거라고 말이야. 주둥이를 맞춰봤던 게 아니라 말을 맞춰본 거라고, 흥! 치매에 걸렸다고 날 무시하는 거지.”

다시 바람이 휭하니 불어왔다.

“이곳은 생각보다 많이 춥군 그래. 당신 그동안 많이 추웠겠어. 하지만 이제 걱정 마 내가 왔으니까.”

말을 마친 만봉이 눈치를 보듯 아내의 사진을 보았다.

“당신은 내가 그다지 반갑지 않겠지만 난 그동안 당신이 많이 그리웠어.”

그때 옆에 있던 어린 만봉이 물었다.

“아내가 대답을 해?”

만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마누라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이 과묵한 편이야. 젊었을 때는 그게 답답해서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과묵한 마누라라도 옆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그런데 대체 언제 죽을 거야?”

어린 만봉이 다그치듯 물었다.

“넌 왜 그렇게 날 다그치는 거야? 어련히 알아서 죽을까 봐 그래?”

“너무 추워서 그러잖아, 추워서 죽을 지경이야.”

“너도 추위를 느낀단 말이야?”

“나는 너라며? 네가 추우니까 내가 춥겠지.”

만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내가 죽고 나면 넌 어떻게 되는 거지?”

“음, 글쎄.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지 않을까?”

만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넌 나니까.”

만봉은 주머니에서 수면제가 든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기 전에 샀던 생수를 꺼내 들고 아내의 사진을 보았다.

“여보! 난 꼭 당신 곁에서 죽고 싶었어.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내 마지막 소원을 이렇게 당신 옆에서 이룰 수 있으니 말이야. 우리 곧 다시 만나자고.”

만봉은 한숨을 크게 쉬고 생수 뚜껑을 열어 한 모금 입에 물었다. 생수병을 옆에 내려놓고 이번엔 수면제가 든 병의 뚜껑을 열어 손에 쏟으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부스럭대는 인기척이 들렸다. 화들짝 놀란 만봉은 입에 물고 있던 물을 그대로 꿀꺽 삼켰다. 그 바람에 사레가 들어 기침을 연거푸 해댔다. 손에 꺼내 들었던 수면제 몇 알이 떨어져 언덕 아래로 굴러갔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건너편에 한 중년의 남자가 슬픈 얼굴로 앞에 놓인 묘에 꽃을 꽂고 있었다. 만봉은 곁눈으로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수면제의 병뚜껑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멍하니 앉아있었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비관해 마누라 옆에서 죽으려는 못난 늙은이라는 사실을 절대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짓고 아내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만봉을 한번 흘깃대던 중년의 남자는 잠시 머물다가 그곳을 떠났다. 

“여기는 안 되겠어.”

만봉이 약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왜?”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것 같아. 젠장! 다들 죽은 사람이 그리워서 이 지랄 같은 날씨에도 찾아오는 거겠지?”

“그래서 어쩌려고?”

“내가 여기서 약을 먹고 잠이 들면 오가는 사람들이 또 나를 응급실로 데려가겠지, 그리고 힘들게 구한 이 수면제를 위에서 깨끗이 씻어낼 테고.”

만봉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으니 약은 이곳보다는 더 안전한 곳으로 가서 먹어야겠어.”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기능을 다 한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무릎이 움직이질 않아.”

“그럼 무릎은 벌써 죽은 거야?”

“내 무릎은 6년 전에 이미 죽었어. 지금 이 무릎은 가짜야.”

“그럼 가짜 무릎이 고장 난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만봉은 손으로 무릎을 문질러댔다.

“빌어먹을 의사 놈이 세라믹인지 뭔지 이 최신 관절을 해 넣으면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돌팔이 놈이 나한테 싸구려를 팔아먹었군 그래. 생각해 보니 그 의사도 강서방이 소개한 놈이었어. 바람 난 놈이 돌팔이 놈을 나한테 소개한 거야.”

“돌팔이?”

“그래. 20년은 고사하고 이제 고작 6년을 사용했을 뿐이야, 그런데 이 모양이라니. 내가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그 돌팔이 의사부터 찾아가서 이 세라믹을 면상에 던져버릴 테야.”

씩씩대며 한참 무릎을 문질러대던 만봉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약간의 열로 데워진 무릎이 다시 삐그덕 작동하기 시작했다. 만봉은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추모공원 뒤에 위치한 얕은 산으로 올라갔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언덕 모퉁이로 돌아가자 사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공간이 나왔다. 게다가 그곳은 차가운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고 있었다. 만봉은 죽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그곳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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