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마음을 비우라는 말 앞에서

간절함과 내려놓은 그 사이

by 스크류바

난임 당사자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음 편하게 먹어"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내 사정을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말한다.


"마음 편하게 가져, 내려놓으면 오히려 애가 생기더라."


그래서 정말 마음을 내려놓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토록 복잡하고 무거운 시술의 과정과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싶어진다.


과배란, 자가주사, 수면마취, 난자 채취, 이식..

몸을 갈아 넣는 이 과정을

정말 편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친정엄마에게 말했다.

"난 사실 지금의 나도 너무 만족스러워서, 아이 안 생겨도 이대로 충분히 좋아"

그러자 엄마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간절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정말 나보고 어쩌라고!


시술의 과정을 버티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건 바로 이 '간절함'이다.

간절하지 않고는

시술 후의 기다림조차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그 과정을 겪는 이에게,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은

참기 힘든 모순처럼 들려온다.


과배란으로 복수가 차오른 배를 움켜쥐고 출근길에 나서며

어떻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시술의 부작용으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내 몸을 보며

어떻게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주사 자국으로 멍이 든 배를 매만지며

어떻게 간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임 당사자가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편하게 먹고 싶지 않아서

매 순간 눈물을 삼키는 게 아니다.


사람이 모나고 속이 좁아서

타인의 임신 소식에

축하보다 먼저 씁쓸함이 올라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

매일 내 몸을 갈아 넣는 사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를


이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이

넘치도록 간절하길 바란다.


기대하고,

또 희망하고

다시 또 기대하길 바란다.


그 간절함이, 지금의 고통을 견디게 할 자양분이 되기를


그래서 마침내,

그대의 기대와 소망의 끝자락에서

간절함의 결실을 마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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