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

by 예나

내가 맏며느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란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아마도 그들이 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맏며느리의 느낌은 아닌가 보다 내가. 나의 남편은 삼 남매 중 막내이지만 장남이다. 나는 그 막내아들의 아내이니 막내지만 맏며느리임이 틀림없다. 처음엔 이 개념이 너무 생소하고 와 닿지 않았었는데, 결혼 후 첫 명절을 지내고 체감했다. 아~나는 맏며느리였구나. 그리고 왜 40년을 넘게 맏며느리로 살고 있는 우리 엄마가 딸들이 맏며느리 자리로 시집간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겠다고 했는지 순식간에 알아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청난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매우 불성실한 며느리임에 틀림없고, 나의 시부모님들은 한없이 너그러우시다. 다면 명절이 갖는 고유의 시스템 안에서 나는 해당 집안에 존재하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였고, 그 심리적 부담을 정확히 이해한 뒤로는 호칭이 가지는 무게감을 실감한다. 맏이가 갖는 최고의 무게는 아마도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거의 대부분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마음속의 무게감은 항상 같은 정도로 존재한다는 것.


나는 딸 셋의 막내라 딱히 첫째가 가지는 설명하기 힘든 무게감 또는 책임감을 알지 못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됐고, 하기 싫으면 안 하겠다고 말하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으며, 또한 내가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 타격 역시 크지 않았기에, 큰언니가 입버릇처럼 나에게 "난 네가 제일 부럽다"라고 말하는 뜻을 절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집을 가고 맏이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 순간부터, 아~우리 언니가 다시 태어나면 왜 막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며느리가 됐을 때를 기억하면 나도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많이 앞섰던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스스로 어떤 며느리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주변에서 칭찬받는 예쁨 받는 며느리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함을 잃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행동하는 것 말고는 크게 없음을 찬찬히 알아갔다. 단기간에 끝나는 역할놀이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유지해야 하는 며느리라는 역할은 가끔은 소외감이 들기도 하고, 까먹고 살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은 꽤나 큰 책임감으로 내게 자리했다.


명절을 전후해서 며느리를 키워드로 하는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여전히 시댁과 남편 험담을 중심으로 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나오는 시대지만, 그저 내가 며느리이기 때문에 사회가 만든 프레임 속에 나를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댁으로 정의되는 많은 풍경들이 배우자와 당사자의 성향, 놓여진 환경에 따라 너무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단일한 프레임 속에 나를 맞춰버리는 순간, 많은 것들이 단조롭고 불만스럽게 변해버리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맏며느리라는 단어 하나에 많은 부담과 기대를 쏟는 이들이 많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에게 정의되는 역할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고, 그저 내 할 도리를 스스로 부족함 없다고 느낄 정도만 다한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 명절마다 전 부치는 일을 희생이라기보단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나는 어째도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인 것을 굳이 현실보다 과장되게 부담스러워하거나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내어 나를 짠하게 여기지 않음이 나에겐 편하다. 그리고 그래야 오래도록 이 역할을 싫증 내지 않고 고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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