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적은 편이다. 말수가 적었던 내게 친구가 많다는 건 생각만 해도 조금은 피곤한, 그래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편도 아니며, 오히려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 관심이 많다는 걸. 그리고 내게 친구가 적은 이유는 어쩌면 내면의 내가 세워둔 친구의 기준이 무척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나는 친구가 적지만, 신기하게도 몇 년 만에 연락하게 되는 친구와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함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1년여 만에 전화한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생각했다. 아 친구는 이런 거구나. 적어도 내게 친구라는 건 그저 그 자리에 있어줌으로 많은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이고자 했다. 그래서 소위 이런 '코드'가 맞아야 친구가 되고 오랜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여중 여고를 줄줄이 졸업하고 나면 여자들끼리의 우정에 대해 조금은 신기한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 대부분의 일과를 함께하고, 상대가 무엇을 먹고 듣고 생각하는지 모두 알아야 진정한 친구라 여기는 특수성이랄까. 그래서 대부분 단짝 친구가 있고, 단짝보다는 조금 덜 친하지만 밥도 함께 먹고 체육시간에 함께 뛰어나가는 정도의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구분된다. 나는 이 신기한 구석이 영 불편했다. 혼자 있고 싶음을 굳이 이유를 대어 설명해야 하는 친구라면 (건방진 생각이었지만)차라리 친구를 하지 않음이 편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이 곁에 다가와도 먼저 거리를 두는 게 나였고, 그런 시간을 거쳐 사회인이 된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와 사회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나는 조직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일부분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사회인으로 가지는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큰 차이점을 발견하고는 사람을 조금 더 가까이 두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사회에서 연을 맺은 다양한 사람들과 직장상사 또는 동료, 선후배로 시작해서 결국엔 친구가 되는 그 과정을 거쳤다. 이 정도 나이가 되고 보니 친구의 적고 많음이 크게 중요치 않다는 걸 안다. 그보다 어떤 이와 인연을 맺을 때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과, 그 사람의 결을 알아채는 것, 그리고 큰 노력을 들여 친구가 되어야 한다면 한걸음 물러서서 지인으로 남을 수 있는 판단력 정도가 사람을 곁에 두는데 필요한 요소라는 것도 알게 됐다.
어떠한 관계도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기본 전제이기는 하나, 친구를 흔히 말하는 인간관계의 범주에 넣어 '관리'하고 '유지'하고 '확장'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처세술의 일환으로 삼는 사회적 풍경에 그대로 대입시키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내게 동료든 선후배든 결국에는 친구로 귀결되는 지점에 놓여지는 그들이 있기에, 딱 잘라 어느 선을 넘어야 친구다 아니다를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내겐 어려운 일이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그렇게 자주 안 보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살아가는 환경과 지내온 배경이 너무 다른데 제각각 어떻게 친구가 되냐고.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아주 가끔의 시간이 내게는 무척 즐겁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무엇인지라 그냥 친구로 남는 거라고 밖에 달리 대답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