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by 예나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다.

"어릴 적에 눈물이 나면 엄마가 생각났다. 이제는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제는'을 경험하는 나이는 각자의 인생에서 모두 다르게 찾아오겠지만, 언젠가 오게 되어 있는 건 확실하다. 그것이 엄마라는 존재가 가지는 힘(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지만) 아닐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엄마 친구분 중에 하나가 내게 '넌 네 엄마 웃을 때 입 가리는 것 까지 똑 닮았구나' 할 정도로 나는 엄마 판박이다. 생김새와 성향 모두가 비슷한 터라 엄마와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대충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집순이라서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엄마랑 티비보면서 빨래는 개는 게 더 재미있었고,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엄마 곁을 서성거리며 수저도 놓고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하는 게 싫지 않았다. 이게 엄마를 좋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타고난 성향이 그랬기 때문에 싫지 않았던 건지는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그 무엇도 싫은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장 보러 가거나 쇼핑을 갈 때도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고, 그런 소소한 시간들이 쌓여 나와 엄마는 가장 친한 친구가 돼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된 날, 서울로 올라온 그날 밤 엉엉 울었다. 이제 엄마와 나누던 그 당연한 일상이 없어진 게 너무 속상해서. 그렇게 떨어져 살게 된 모녀의 시간은 각자의 그것 속에서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졸업과 취업, 결혼을 하며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도 변했었다. 결혼과 동시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선택한 후, 그 속에서 무던히도 지치고 힘들었던 나는 어느새 세상에 싫은 게 없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버거워졌고 그래서 함께하는 시간이 자꾸 줄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나는 직장 때문에 원치 않는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그곳에서 마냥 겉돌고 있었다. 딱히 이런 이유 때문에 힘들었다라고 집어내기 힘들 만큼 고된 시간들이었다. 낯선 곳에 혼자 살게 된 딸이 걱정된 부모님이 찾아오신 그 날, 나는 별다르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 말과 행동들이 엄마에겐 상처가 됐고 그 이후 한참을 서운함으로 채웠다. 엄마와의 불화는 처음이라 힘들었고, 힘든 만큼 외면하고 싶었다. 세상 모두가 내 편이 아닌 것 같던 시절, 엄마까지 그렇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애써 아닌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들이 엄마한테 전화라도 해라 죄송하다고 해라 하며 잔소리를 부어댈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나 사이엔 그런 사과 없이도 당연히 이해받을만한, 그럴만한 무언가가 당연히 있다고 터무니없이 믿었다.


나 좋을 대로 하고 살던 막내딸은 결국 엄마에게 미안함을 전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아직도 생각한다 엄마는 그때 내 마음을 알 거라고. 워낙에 겉으로 티 내지 않는 엄마 성격을 알기에 막내를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말로 하지 않았을 뿐, 엄마는 내 마음 알 거라고 또 나 좋을 대로 생각하며 사는 중이다.


딸이 셋이나 되는 엄마는 항상 바쁘고 치열했다. 가까이에서 본 엄마는 늦잠 한번 자는 일이 없었으며, 다섯 명이 북적대는 집이지만 항상 깔끔했다. 작은언니는 아직까지도 가끔 투정 부리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우산 없이 하교하는 날 엄마가 우산을 챙겨 학교에 와주지 않음이 너무 속상했었다고. 비록 우리 엄마는 우산을 들고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지는 않았었지만, 무심함 속에 묻어있는 따뜻함 만큼은 누구 못지않았으리라는 걸 경험한 나는 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우산 하나 챙겨주지 않았다고 그것까지 왜 하지 못했느냐고 질책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딸 셋에게 모두 엄마여야 했고, 아내여야 했으며 맏며느리이자 막내딸이었던 엄마를 나는 부족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울지 않고 글을 써보는 게 목표였지만, 역시나 엄마는 내게 울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시간이 오래 흘러 엄마의 나이가 환갑에 가까워서야 나는 엄마가 가진 소녀스러움을 발견했다. 늘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던 엄마지만, 길에 피어있는 꽃 하나하나 예쁘다를 연발했던 엄마였음을 내가 참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부끄러움이 많아 가족이 된 사위 앞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리 엄마고, 눈썰미가 좋아서 예쁘고 쓸모 있는 물건을 보면 딸들것 부터 챙기는 게 우리 엄마다.


사회가 부여하는 다양한 역할에 대한 당연한 정의는 없다. 특히나 엄마라는 존재 앞뒤로 붙는 수많은 수식어와 의무들에도 당연함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을 그 역할을, 내게 와서 엄마가 되어주고 묵묵히 지금껏 수십 년을 꾸준히 해 준 그녀에게 한없이 고마울 뿐. 이 글을 저장해 두고 며칠을 생각했다. 나의 엄마를 담아내는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역시나 엄마는 한없이 편하지만 또 그래서 한켠으로 찡하고, 너무 잘해주기만 해서 되려 그만 좀 하라고 성질부터 내게 되는 이상한 존재다 내겐. 하지만 내가 부르는 '엄마'라는 대상이 우리 엄마라서 지금 그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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