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막내딸

by 예나

나는 흔히들 생각하는 막내딸처럼 애교나 어리광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래서 막내지만 막내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이렇게 각목 같은 뻣뻣한 성격을 가진 탓에 나는 막내지만 애교를 떨며 아빠에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사춘기가 지나고 내가 가진 성향이 아빠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서부터는 아빠와 간단한 이야기 나누는 것조차 내겐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이제 70대로 접어든 우리 아빠는 한 회사에서 40년을 넘게 근무하며, 사원으로 시작해 CEO까지 오른 이력을 가진 대단한 분이다. 아빠 인생의 절반이 넘는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껏 이렇게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없었다는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기에 항상 그 점에 감사드린다. 또한 나의 아빠는 유머감각 또한 수준급이 시라 연령과 성별을 넘나들며 누구와도 잘 소통하며 유쾌함으로 시간을 채울 줄 아는 분이다. 게다가 부지런한 성격 덕에 지금도 매일 산책을 겸한 운동으로 동안 외모를 유지 중이시기도 하다. 글로 다 옮기지 못할 만큼 나의 아빠가 가진 특징과 장점은 너무도 많다. 특히나 유려한 글솜씨와 책을 좋아하는 성향 덕에 어릴 때부터 신문과 책을 가까이 두고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내가 우리 아빠를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이렇게 대단한 아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빠와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가 못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할 말 다 하는 막내딸 성격을 아빠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셨을까 짐작해본다. 아빠와 나 사이에는 30년 넘는 나이 차이가 존재하기에,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쌓아온 견해와 아빠의 그것 간의 간극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크고 작은 문제들, 하다못해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두고도 티격태격하기 일쑤였고, 그런 시간들이 체화되고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내겐 꽤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만 아빠를 보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은 결국 나는 우리 아빠 말고 자연인 그대로의 그 사람과 지내는 법을 알고 싶었다. 아빠니까 이것저것은 당연히 해야 하고, 나는 딸이니까 이런저런 것들은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무적 논리 말고, 책을 좋아하는 누구 또는 소통하는 법을 아는 누구처럼 그 사람이 가진 특징을 조금 더 깊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게 이해받고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모두에게 진리일 수 없듯이 아빠 또한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든 불편한 말을 꺼내면 아빠는 으레 '너는 딸이 돼서~'라고 시작하는 말로 언짢음을 드러내셨다. 심정적으로의 서운함은 이해하나, 문제의 본질이나 사실들이 감정에 가려져 보이지 않음이 나는 더 속상했다.


나는 우리 아빠가 아직도 멋지고 좋다. 다만 나 또한 표현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좋으면서도 제대로 표현조차 못하는 무뚝뚝한 딸로 오랜 시간을 지냈지만, 세월이 흘러 내 나이대를 살았을 아빠를 떠올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자꾸 아빠가 짠하게 느껴졌다. 내가 조금 더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 아무렇지 않은 척 너스레를 떨며 아빠 유머에 화답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만 가지고 시간은 흐른다.


이제 아빠 품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한 시간이 아빠와 함께 살 부비며 살았던 시간과 맞먹을 정도가 되고 보니 정말 느리게 알겠다. 그리고 배우자를 선택함에 따라 행복한 순간들 보다는 견뎌야 하는 무채색의 일상이 대부분인 삶을 어느 정도 지내고 보니 짐작이 간다. 또한 아직은 없지만 혹여 내가 2세를 낳는다면 그때 조금 더 정확히 알겠지.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마음이고 어떤 마음일지.


아들이 없는 아빠는 가끔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다. 아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딸이 셋이나 있어도 외로운 게 우리 아빠라는 걸. 제각각의 딸들이 나름의 삶을 살아보느라 살아내느라 여념이 없는 동안도 우리 아빠는 외로울 것이라는 것도. 까칠하기만 한 막내딸의 이런 말이 아빠의 마음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느리게 철들며 더 크게 후회하기 전에 말이 아닌 글로라도 적어두려 한다.


내가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당신이어서 나는 참 좋다고.

그리고 당신이 내 아버지가 아니였다고 해도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참 좋아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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