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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준 Oct 02. 2019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와 아빠는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았다. 하지만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 나, 그리고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 대한 얘기이다.



아버지란 존재는 늘 어렵고 무섭고 먹먹하다.

친구 같은 아버지는 딸 같은 며느리만큼 쉽지 않다.

우리 세대에도 쉽지 않고 아버지 세대에는 더욱 어려웠다.  

분명히 엄마, 아빠 하면서 말을 트기 시작하고 대략 초등학교 때까지는 동일한 호칭을 사용했는데

턱수염이 나면서부터 엄마는 여전히 엄마라 부르는데 아버지는 아빠라 부르지 않는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엄마와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아버지와는 인사 외에 수다를 떨거나 가슴속 깊은 얘기를 한 기억이 많지 않다.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것도 매우 무섭고 재미있는(?) 선생님으로 유명하셨고 젊으셨을 때는 대단하셨다고 들었다. 다행히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아버지 학교의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맞았다며 장난 삼아 복수를 하곤 했다. 나의 담임 선생님 역시 아버지를 선배님이라 부르셨고 내가 사고를 치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알고 계셨다.  



선생님 자식들이 '모' 아니면 '빽도'라는 얘기가 있다. 사실 내가 만든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기대치에 비하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모'에 있다가 '빽도'에 가깝게 된 케이스이다. 하필이면 동료 선생님들 자식들 중에 유독 동갑내기 '모'가 많았고 그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만족시켰다. 당시에는 다른 '모'들과 비교하시던 아버지가 야속했지만, 나도 자식이 생기고나니 한때 '모'였던 아들이 '빽도'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속이 상하고 마음 아프셨을지 이제 이해가 된다.



멀어져만 가던 아버지와 나의 사이는 군대가 이어주었다. 군대 생활이 그다지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건 아버지와의 관계였다. 내가 입대하던 날, 아버지가 논산 훈련소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우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 역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자주 면회를 와주셨고 서먹서먹했지만 부자간의 끈은 조금씩 단단해졌다.



제대 이후 본의 아니게 여러 차례 인생의 쓰나미를 겪으면서 아버지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지만, 고등학교 생활보다는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고 아버지의 자랑까지는 아니지만 창피한 아들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나도 아이가 생기고 아버지가 되었다.



기러기 아빠가 된 나를 아버지는 지금도 늘 걱정하고 염려하신다. 한국에서 혼자 지내는 아들과 타지에 있는 며느리와 손자들 걱정에 늘 노심초사하신다. 밥 먹는 것도 걱정이고 하고 있는 사업도 늘 걱정이다.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으셔야 할 나이에 오히려 도움을 못주어 늘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런 모습에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사십 대 중반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늘 걱정스럽고 물가에 내놓은 아들이다. 물론 육십 대가 되어도 그렇겠지만.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씀으로,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너무나도 보수적인 문화로 눈치가 보여 나를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했노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손주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사랑하고 예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백 퍼센트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 성격을 보면 대충 이해가 된다. 암튼 그래서인지 손주 사랑만큼은 국가대표이고 내가 샘이 날 정도로 지극정성이시다.



어찌 보면 비단, 우리 아버지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유교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알아도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던 우리의 아버지들.

표현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고 서툴렀던 우리 아버지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나 취미생활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오직 가족들 먹여 살리고 고생 안 시키기 위해 젊음을 희생했던 우리 아버지들.

그렇게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늙고 힘이 없어져 찾아주는 이 많지 않은 외로운 우리 아버지들.

우린 그런 아버지들을 무뚝뚝하고 말이 안 통하고 무서운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버지를 보면 내가 보이고 나를 보면 아들이 보인다.

아들을 보면 내가 보이고 나를 보면 아버지가 보인다.

아빠가 되니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가 되니 아빠가 이해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들의 막연한 꿈 중에는 아버지에게 좋은 차를 사드리는 것이 있다.

나처럼 아들에게 크면 포르셰를 사달라고 세뇌시키는 아버지도 있다. ㅎㅎ

십 년이 넘은 소형차를 타시는 아버지께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조만간 벤츠는 아니어도 그렌저는 한 대 사드리겠다고.  



엄마한테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존경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빠! 사랑해요!!


 



아버지 - 싸이


https://youtu.be/9p11W518Q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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