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안양복거기_ 럭키세븐이야기>
A, B, C, D
우리는 알파벳 이니셜로 불렸다.
독특한 제목의 영화.
대본에 씬 번호도 없다.
배역의 이름도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안양의 어느 야산,
B의 어머니가 맡겼다며
흙 포대 하나를 이고 배달을 하러 온 A는
그곳에서 B, C. D와 재회한다.
흙 포대를 배달시킨 지
4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이었다.
대본리딩
<연세대 강의실, 매번 대본리딩 현장을 찍어 모니터 했다>
이 영화는
77년 안양 대홍수라 불리는
엄청난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이 40여년 만에 소환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벌써 가는 거야?
이 장면은 영화의 엔딩 부분이다.
헤어질 시간.
B는 어머니가 맡긴 포대를 어찌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로 보내졌으니
여기에 놓고 가야겠지.
B역을 맡은 나는,
내가 딸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마치 어머니의 유해 같으니요.라고 말했다,
나의 의견을 감독님은 받아들였다.
원래의 시나리오에선
다시 포대를 이고 내려가는 설정이었다.
흙 포대는 왜?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왜
포대를 배달시킨 걸까?
그리고 반세기가 다 되어서야,
그 흙 포대는 B에게 온 것일까.
40분 가까운 분량,
40여 년을 넘나드는 긴 서사.
대본으로 설명해 드리는 게
빠를 것 같다.
A
이게 네게 온 택배야
한참 전에 보내진
길이 멀고 험해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C
그럼 77년도 7월 어느 날
어머니가 시키신 택배가 이제야 도착한 거네
B
엄마는 홍수와 함께 산사태로
흙에 깔려 돌아가셨어
결국 어머니는 찾지 못했어
C
오늘 우리는 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여기로 왔어
어디 계셨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산의 흙이 어머니라 생각하고
우리는 눈물을 훔쳤어
우리는 줄곧 그래왔어
그런데 어머니가 보낸 택배가
너와 함께 도착하다니
그래도 잘 왔어
D
물살도 거셌다.
다리 위에서 늘어뜨린 로프에
뭔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의 손목이었다.
허리 아래가 진흙더미에 묻힌 시신이
더 이상 떠내려가지 말라고
인양작업을 위해 우선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사진이라도 있었다면 해외토픽 감...)
<중략>
C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죄책감일지 몰라
이미 해는 떴고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올라섰어
그래도 참 다행이야
그 위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
(A를 향해)
그래도 참 다행이지?
A
(회상에 잠긴 듯 말이 없다 힘주어)
응
다행이야
이제야 만났어
(고민하다)
나는 가봐야겠어
B
(아쉽다는 듯) 벌써 가는 거야?
A
(미안하다는 듯) 응
D
흙은 어쩌고
B
여기 두고 가고 싶어
A
그래 이제 네 거야
A, B, C, D 흙포대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떠난다.
흙포대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A는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
홍수로 모든 것을 잃고 고향인
안양과 연인 B의 곁을 떠났다.
B는
엄마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인 A를 만난다.
엄마가 보낸 흙 포대와 함께.
C는
홍수의 직격탄을 피하긴 했지만
안양을 할퀴고 간 대홍수의 현장을 목격했고
여전히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D는
흡사, 나레이터다.
때로는 신문기자처럼, 때로는 뉴스앵커처럼
안양의 그날을 브리핑한다.
그랬다.
77년 7월의 어느 날.
안양을 덮친 홍수는 사람들의 삶,
그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7이 세 개나 겹친 럭키세븐.
77년 안양대홍수라 불리는
그날은 7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내린 비는 무려 460여 밀리미터.
이재민 6만 명에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유해처럼 돌아온 어머니의 흙 포대는
어김없이 그날을 소환한다.
B인 나는,
어머니의 흙 포대를 보며 생각했다.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담장이 무너질까
늘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셨던 걸까.
그래서 딸인 나의 삶만은 지키라
흙 포대를 보냈던 걸까.
그리고 이렇듯
흙 포대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 것일까.
딸아, 안녕.
C역의 신새길 배우, A역의 이귀우 배우, D역의 민원진배우 B 역의 장마레 배우 (안양복거기_럭키세븐이야기_ 스틸컷) 이 영화의 배우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그리고 대본을 읽고 나서 또 한 번,
이거 뭐지?
했다.
이걸 어떻게 만드신다는 걸까.
이름도 리딩도 촬영도 생소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기에
배역의 이름을 짓지 않고
A, B, C, D로 지칭만 하는 것일 테지.
과거를 재연하고 재현하는 대신,
시종일관 네 사람의 독백과 대화만으로
증언하듯 회상하듯 연기를 한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만큼 생소했다.
리딩과정을 통해
하나 둘 답을 찾아갔다.
그렇다고
생소함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스토리가 지닌
삶과 죽음,
그 보편적인 이야기의 힘이
생소함을 이길 거라 확신했다,
중년, 혹은 중년을 훌쩍 넘긴
네 명의 배우들,
그래서,
대홍수의 시대를 이해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진지하다.
리딩 때마다
그 많은 대사를
어찌 다들 외워 오시는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감독 전예진.
그녀를 나는 좋아한다.
탁월한 글솜씨에만 기대지 않고
꼼꼼하게 자료를 챙기고
안양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렇게 손품, 발품 팔아
만들어낸 대본, 그리고 영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다.
배우도 감독도 열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좋아한다.
<<연세대 숲에서 리딩연습, 강의실 리딩을 끝내고 인증샷> <옵신포커스 전시회에서 상영된 안양복거기_럭키세븐이야기, 관람을 마치고 전혜진 감독님과>
<2022년 겨울, 종로의 한 선술집에서>
벌써, 가는 거야?
A, B, C, D
촬영 후 그들은 어찌 됐을까?
최종 편집된 영화에는
남자 1, 남자 2. 여자 1, 여자 2로
수정되었다.
그럼에도,
어이 B~
가끔 A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
그러면 나는
에이,
이런 A.
영화를 통해 만난
네 사람,
그리고 한 사람.
그렇게 우리는,
동료가 되었다,
7월이 되면
올려야지 했다.
수요일 발행을 하루 앞두고
글을 쓰는 오늘도 비가 내린다.
단톡방에 브런치북 연재소식을 알렸다.
각자 바쁘게 지내다가도,
불현듯 말 걸게 되는 사람들.
럭키 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안양복거기_럭키세븐이야기
Color/ Fiction/ 34'00"/2023
각본/연출_ 전예진
출연_ 장마레, 신새길, 이귀우, 민원진
같이 만든 사람들_박세영, 장영해, 허윤, 김현영, 홍승기, 박세영, 홍경선, 임채원, 우희주, 김태영
픽션과 논픽션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이야기꾼
전예진 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아침 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