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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속도 모르면서

평생 미워해 온 영화 '풍란' 속 엄마와 아들에 관하여

by 장마레


성함이 뭐예요?

박여선이요.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목요일이지.

KakaoTalk_Photo_2025-01-30-17-20-13.jpeg <단편영화, '풍란' 중에서>


모른다고 하라니까.


자꾸만 모른다고 하라네요.

그녀는 아들의 채근이 못마땅합니다.


지 엄마를 아이 다루듯

이래라저래라, 오늘이 며칠째인지.


후~

답답한 마음에 그녀는

애꿎은 담배연기만 내쉴 뿐입니다.


KakaoTalk_Photo_2025-01-30-15-09-17.jpeg


행여나 들킬까.


그녀는 모른 척합니다.


요즘 자신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아들이 치매판정을 받아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결국은 그래야 한다는 걸,


그녀는 애써 모른 척합니다.


<단편영화 '풍란' 중에서>


"현세야, 엄마가 밉니.

아직도 엄마가 미워서 그래서

날 이렇게 괴롭히냐"


아들은 엄마의 물음에

아무 답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도 내가 미워 죽겠잖아.

그냥, 미안하다고 해'


처음으로 내지른 아들의 절규에

엄마는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다 잊어. 다 잊어버려'


그녀는 다 잊고 싶었습니다.

다 모른 척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아들에게도 힘겨웠던

아주 오래전 그때 그 일.


이제와 생각해 보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한 번을,

아들 편이 돼주지 못했을까.

미안하다고 말해 주지 못했을까.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와 미안하다고.


떠나야 할 아들에겐

여전히 미움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없는 시간,

홀로 견뎌야 하는 잊힘의 시절이

겁이 나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고.


'그래 우리 서로 미워하자.

미워하다 지치면 잊어버리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다른 건 다 몰라도 그녀는

단 한 가지는 알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기억할 이름,

아들 '현세' 뿐이라는 걸.





기억의 향기를 담은 단편영화 '풍란'의

정재훈감독님과 배우님, 스텝들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풍란과 낙원.jpeg 영화 '풍란'과 '낙원'에서 다시 만난 허원준 배우님과 촬영현장에서


# 2023년 영화 '풍란'에서는

엄마와 아들 현세로(이주영, 허원준),

2025년 영화 '낙원'에서

센터장과 북한이탈주민(허원준)으로

다시 만났네요.

두 영화에 함께 한 정재훈 감독님,

허원준 배우님


배우가 찍고 씁니다. 100명의 마레가 온다.

목요일에 만나요. 지금까지 장마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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