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영화에 등장한 닮은 캐릭터에 관하여
어느 해, 볕 좋은 가을.
그녀는 행주를 있는 힘껏 쥐어짜고는
반들반들해진 옹기를 닦느라 여념이 없다.
'할멈~'
일에 열중한 나머지 연신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돌린다.
'아, 동희'
이번엔 또 뭐가 궁금해서 온 것일까.
애지중지하는 옹기와 부적에 탈이 난 걸까.
동희는 그녀가 뭐라 할지 빤히 쳐다본다.
'집안에 잘 못 들인 게 있네, 물건이든 사람이든'
'수호신도 사람 맘이랑 똑같아.
끼고 살면 변하는 거야'
언니가 엄마처럼 자신을 두고 떠날까
내심 불안한 동희는 안절부절.
그녀가 하라는 건 뭐든 할 태세다.
옹기할멈, 영험한 기운을 내뿜는 그녀는
동희가 의지하는 단 하나뿐인 조력자.
동희는 과연,
언니 기선의 마음을 되돌릴 부적을
그녀에게서 얻을 수 있을까.
24년 11월 9일에 찍고 다음 달인 12월,
서울예술대학교 졸업영화제에 올린
강혜나 감독의 단편영화 '옹기종기'의
한 장면이다.
아. 그런데 잠깐.
그녀는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다.
'이거 뭐지?'
어디선가 본 것 같아. 이 장면.
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들리는
또 하나의 목소리.
'인녕하세요'
어느 해, 가을 볕이 좋다.
옹기를 닦느라 여념이 없는 그녀.
그녀는 절의 공양간을 책임지는
공양주보살이다.
재차 들리는 낯선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다.
누구더라.
그녀는 이번에도 행주를 힘껏 쥐어짠다.
물기 젖은 손을 바지춤에 닦아대며
휴대폰 속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혹시, 이 분 아세요~"
'누구시더라...'
'어머나'
그녀의 얼굴엔 반가운 미소가 터진다.
'어머나, 오랜만이시네 보살님'
엄마를 위해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사춘기 소녀 정희는 그녀의 반응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인다.
뭔가 잔뜩 물어볼 태세다.
정희는 과연 그녀에게서
할아버지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2022년 10월 10일.
강원도 도성사에서 촬영하고
올해 25년 1월 22일에 개봉한
신현규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
'문워크'의 한 장면이다.
그녀는 머리가 다시 핑~
돌기 시작한다.
작품도 감독도 시기도 장르도 다른데,
이렇게 비슷할 수가.
상대역인 주인공의 이름도
'동희'와 '정희'라니.
집을 나간다는 언니,
오래전 집을 나가버린 할아버지를
되돌린다는 서사라니.
그녀는 다시 '핑'
아, 그래.
그렇다면, 그녀는 설마.
하나의 시간에선 공양주보살.
또 하나의 시간에선 옹기할멈.
궁금증을 찾아 나선 소녀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나타난다네.
공양주보살이건 옹기할멈이건
그녀가 머문 공간에는 크고 작은
옹기들로 빼곡하다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그거?
시.간.여.행.자.
아니면, 이 우연을 뭐라 할 건데?
이거야말로 영화다.
영화, 어메이징하다.
그렇다면,
그녀의 다음은 어. 떨. 까.
그때도 똑같이
소녀들이 찾아 오고
행주를 들고 선
반들반들하게 옹기를 닦느라
소녀들을 재촉하게 할까.
어느 해, 볕 좋은 가을날.
그녀는 다시 머리가 핑.
돈다.
돈다.
돈다.
실로 궁금해지는,
다음 영화.
다음 시간.
다음 소녀.
'옹기종기'의 강혜나 감독님
'문워크'의 신현규 감독님
두 영화의 배우님과 스텝들
모두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2025년 1월 22일, 바로 어제죠.
'문워크'가 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저에게는 첫 번째이자 유일한
장편영화인 동시에 극장에서 개봉한
첫 영화입니다.
https://tv.kakao.com/v/452250368
마음이 촉촉해지는 '문워크'와 함께
가족의 온기를 느끼시기를 바래요.
배우가 찍고 씁니다. 100명의 마레가 온다.
목요일에 만나요. 지금까지 장마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