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미워해 온 영화 '풍란' 속 엄마와 아들에 관하여
성함이 뭐예요?
박여선이요.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목요일이지.
모른다고 하라니까.
자꾸만 모른다고 하라네요.
그녀는 아들의 채근이 못마땅합니다.
지 엄마를 아이 다루듯
이래라저래라, 오늘이 며칠째인지.
후~
답답한 마음에 그녀는
애꿎은 담배연기만 내쉴 뿐입니다.
행여나 들킬까.
그녀는 모른 척합니다.
요즘 자신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아들이 치매판정을 받아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결국은 그래야 한다는 걸,
그녀는 애써 모른 척합니다.
"현세야, 엄마가 밉니.
아직도 엄마가 미워서 그래서
날 이렇게 괴롭히냐"
아들은 엄마의 물음에
아무 답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도 내가 미워 죽겠잖아.
그냥, 미안하다고 해'
처음으로 내지른 아들의 절규에
엄마는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다 잊어. 다 잊어버려'
그녀는 다 잊고 싶었습니다.
다 모른 척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아들에게도 힘겨웠던
아주 오래전 그때 그 일.
이제와 생각해 보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한 번을,
아들 편이 돼주지 못했을까.
미안하다고 말해 주지 못했을까.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와 미안하다고.
떠나야 할 아들에겐
여전히 미움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없는 시간,
홀로 견뎌야 하는 잊힘의 시절이
겁이 나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고.
'그래 우리 서로 미워하자.
미워하다 지치면 잊어버리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다른 건 다 몰라도 그녀는
단 한 가지는 알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기억할 이름,
아들 '현세' 뿐이라는 걸.
기억의 향기를 담은 단편영화 '풍란'의
정재훈감독님과 배우님, 스텝들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 2023년 영화 '풍란'에서는
엄마와 아들 현세로(이주영, 허원준),
2025년 영화 '낙원'에서
센터장과 북한이탈주민(허원준)으로
다시 만났네요.
두 영화에 함께 한 정재훈 감독님,
허원준 배우님
배우가 찍고 씁니다. 100명의 마레가 온다.
목요일에 만나요. 지금까지 장마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