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타이틀씬>
'기형도 시인을 어떻게 아세요?'
'교과서에서요'
단편영화의 타이틀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물었고
감독의 대답에 그녀는 잠깐 멍해졌다.
아, 나의 청춘은 고전이 되었구나.
<감독이 찍어 보내 준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영화의 시작은 어쩌면 그 시절,
내 살던 그 청춘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를 써보겠다며 학교 2층 도서관에
틀어박혀 종이와 씨름하던 낭만의 시절.
선배가 좋아하던 기형도 시인의 시를
좋아라 따라 읽었던 어설픈 청춘의 밤.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데에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했을지도.
그녀의 이름은 오진희.
새벽부터 서둘러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그녀의 건조한 동공은 왠지 슬퍼 보여.
포스터를 쥔 그녀의 주름진 손은 절실하다.
끝내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백발이 다 된 지금이라도.
전철에서 만났을 테지.
어쩌면
전철에서 헤어졌을까.
전철은 진희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사랑과 이별의 공간.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그녀는
자문한다.
그도 나를 그리워할까.
내 사랑 안들.
<오진희가 찾는 그 사람, 안들>얼마나 됐을까.
왜 그러는 것일까.
그녀에겐 그런 의문 따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그녀가 사는 이유의 전부라도 되는 듯.
<지금의 진희와 과거의 진희>'나 오늘 이상한 할머니 봤다'
과거의 진희는 전철 안에서 미래의 진희를
알아봤을까.
알아봤다면 달라졌을까.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처럼,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처럼.
잃은 것인 줄 알면서도 찾아 나서는 것처럼.
그럼에도 계속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삶도 사랑도 그리움도.
그래서 시인은 가엾다고 했을까.
그래서 감독은 가엾다고 했을까.
아, 쓸쓸하다네.
가엾은 내 사랑.
이런 사랑 어때요.
그대라면.
<2023년 여름 촬영현장, 안들역의 공민규배우님과 함께>
단편영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함께 한 변진감독님과 배우님들, 스템들,
가빈팀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씁니다. '100명의 마레가 온다'
매주 목요일에 만나요. 지금까지 장마레였습니다.
길이가 짧고 미공개된 단편영화를 소개할 때 늘 고민이 됩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
배우의 추천사로 여겨 주세요. 우리의 아껴 둔 만남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