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정민의 학교는 봉적산 자락에 있다. 봉적산은 해발 740미터로 서울에 있는 도봉산과 높이가 같다. 백두대간의 한줄기에 있으나 산세가 험하지 않아 평소 주민의 등산 코스로 인기가 많다. 봄이면 산기슭을 따라 만발한 개나리며 진달래꽃이, 여름에는 우거진 녹음 사이로 산들바람과 소쩍새 소리가, 가을이면 노랗고 빨간 고운 빛깔의 단풍이 그리고 겨울에는 가지마다 소복한 눈꽃송이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정민은 특히 소쩍새 소리를 좋아했다. 방과 후 자율학습 시간에 졸음이 밀려오거나 교실이 답답해지면 옥상으로 올라갔다. 먼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람 자락에 실려 그 소리가 들려온다. 소쩍! 소쩍! 자연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주말에는 아예 책상을 들고 올라가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 앉아 공부하기도 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작은 언덕만 한 화단을 중심으로 길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이 길은 그리 넓지 않은 운동장으로 합쳐진 다음, 운동장을 지나 중앙에 있는 건물을 사이에 두고 다시 나누어진다. 오른쪽은 여학생이 다니는 길, 왼쪽은 남학생이 다니는 길이었다. 교칙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모든 학생이 이를 지켰다.
그런데 한 번은 이 '룰'이 공공연하게 깨지는 순간이 있었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내려 쌓인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었기 때문에 길이 매우 미끄러웠다. 게다가 이 길은 약 45도 정도의 경사가 있어 거의 스키장 슬로프 수준이었다.
등교 시간 무렵, 다른 학생들은 조심조심 발을 디뎌가며 올라갔지만,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한 여학생이 선뜻 길을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 다니는 길'로 달려가더니 여학생을 냉큼 등에 업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한 학생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응원했다. 이 소리를 듣고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합류하여 창문을 열고 환호성을 질렀다.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교실이 있는 건물은 두 개 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앞동은 남학생이, 뒷동은 여학생이 사용했고, 두 개의 건물을 잇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오작교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앞동에 있는 교무실과 부속 시설을 이용하는 여학생과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만 통행할 수 있다. 남학생은 그 다리를 건너 여학생 건물로 건너갈 수 없었다. 체육이나 교련 시간처럼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뒷동 교실의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일제히 쳐졌다. 반면, 앞동에는 아예 커튼 자체가 없었다.
건물 옆으로는 넓고 긴 계단이 봉적산을 향하여 가파르게 놓여 있었다. 계단을 100개쯤 오르면 좀 으스스한 분위기의 하얀색 이층 건물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학교의 자랑인 도서관이다. 정민의 학교는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대학 측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소장 도서를 꽤 훌륭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읽을 만한 책을 접할 수 있는 곳도 이곳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도서관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정민은 1학년 때부터 도서위원에 선정되었다. 도서위원이 되면 조회, 종례, 청소 같은 학교나 학급 행사에서 열외를 받을 수 있다. 대신 그 시간에 도서관 청소나 정리정돈, 책 대출과 반납 업무를 했다. 그런데 정민은 모든 학기 동안 반장 또는 부반장이었기 때문에 학급 일과 도서관 당번이 중복되는 일이 잦았다. 이러면 임원으로서 학급 일에 우선을 두어야 했다. 그래서 도서위원 역할에 다른 위원만큼 충실하지 못하였다. 대신 학급 일이 없을 때면 당번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올라가 봉사 활동을 했다.
사실 일도 일이지만 정민은 도서관 특유의 분위기와 책 냄새가 좋았다. 정해진 분류 기호에 따라 있어야 할 곳에 나란히 정리된 책들은 안정감을 주었다. 어떤 책은 말을 걸기도 하고,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책은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졸고 있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며 언제든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감성과 낭만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방과 후 늦은 오후 시간, 정민은 텅 비어있는 도서관에서 반납된 책을 서고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도서관 출입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가 딸랑하고 울렸다. 누군가 도서관에 들어온 것이다.
열람과 대출이 안 되는 그 시간에 도서관에 들어올 사람은 선생님 아니면 다른 도서위원 학생뿐이다. 키 높은 책장들 사이에서 책 정리에 열중하고 있던 정민도 그렇게 생각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누군지 몰라도 곧 정민을 발견하고 알은체를 할 것이다.
그런데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 책장들 사이에서 김보은이 보였다. 그 애는 정민을 놀라게 해주려 한 듯 까치발을 하고 걸어오다가 정민과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는 어둑한 도서관이 환해질 만큼 미소가 가득했다.
도서위원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도서관 담당 선생님의 주관하에 전체 도서위원들의 상견례 겸 야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선후배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친구들의 인사와 소개가 있었는데, 보은과 정민도 그때 얼굴을 익혀 서로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정민은 1반이고, 보은은 6반이었다. 1~3반은 문과, 4반은 이과, 5~6반은 여학생으로 학급 편성이 되어 있었고, 이과 여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아서 예외적으로 4반에서 남학생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 구분이 과하다 할 정도로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어 교내에서 남녀학생이 한 공간에서 마주칠 일은 드물었다. 이에 비해 도서관에서 도서 위원인 남녀 학생이 같이 활동하는 것에는 특별한 규제가 없었다.
보은은 보통의 키에 약간 통통한 편이었고 이목구비가 인형처럼 또렷하였다. 여학생들은 같은 교복에 똑같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 전부 비슷비슷하게 보였지만 보은은 항상 금방 눈에 띄었다. 게다가 서글서글한 성격에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 적극적인 태도는 낯을 많이 가리는 정민의 마음에 쏙 들었다.
보은은 성악 전공을 목표로 음악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실이 있는 건물 옆 동에 음악실이 별도로 있었는데 방과 후면 그 음악실에서 따로 연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애도 정민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봉사활동을 하러 올라왔는데, 정민과 처음 맞닥뜨린 그날 이후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겹치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런 날이면 무거운 책들과 씨름을 하면서도 힘든 것을 몰랐다. 서고의 책장 사이를 오가며, 데스크에 앉아 북카드를 교체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늘 너무 부족했다. 툭하면 분필을 던지는 백묵 선생님, 어려운 과목과 좋아하는 과목, 모의고사 성적 얘기를 하다 보면 금방 창 밖에 어둠이 깔렸다. 시간에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민은 이때 알았다. 물리적인 시간과 마음속에 흐르는 시간.
정민은 보은이 연습하는 시간, 음악실 앞 벤치에 앉아 그 애가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중에서 정민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김동명 님의 시에 김동진 님이 곡을 붙인 '수선화'라는 가곡이었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 위를 나르는
애달픈 마음
(중략)
부칠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추이고
찬바람에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중략)
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서 눈길을 걸으리"
그렇게 간질간질한 찰나의 순간과 함께 3년이라는 전쟁 같은 시간이 다 지났다. 그러나 정민은 노래에서처럼 '그대를 따라서 눈길을 걷지' 못하였다. 눈부시거나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묻어날 듯 샛노란 수선화 꽃잎 같던 그 감정은 과연 첫사랑이었을까? 학창 시절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솜사탕 같은 그런 사랑. 이후 보은은 지망하는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택했고, 정민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교가 있는 강주를 떠나던 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본 보은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보은은 수선화 꽃잎처럼 손을 흔들며 정민이 탄 버스를 보냈다. 그리고 이후에는 서로에게 연락이 닿지 못하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중에 서울에서 다시 만날 거라는 운명론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은에 대한 기억은 추억이 되었고, 세월 따라 빛이 바랬으며, 흐르는 시간 속에 잊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