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것도 배워야
선생님들이 정문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한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경쾌한 음악도 틀어 놓았다. 처음에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정겹기까지 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문에 들어서면 위압적으로 버티고 서있는 선생님과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었다.
아침 8시가 지나면서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이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울린다. 그 알림에 따라 학교가 어느 순간 고요해지고 또 어느 순간 시끌벅적해진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무실에서는 학생들끼리, 선생님과 학생들이, 선생님들끼리 서둘러서 할 이야기를 나눈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에게는 꽤 익숙한 10분간 휴식처럼 짧지만 치열한 시간이다.
당겨진 고무줄같이 팽팽한 오전이 지나고 점심을 위한 한바탕 대이동이 끝나면 살짝 늘어진 오후 일과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먼저 학생들이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간다. 이어서 교사들이 하나둘 교무실을 나선다. 주인공인 없이 텅 비어버린 학교에는 적막만이 감돈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의 시간이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높아진 학생들의 권리 의식, 일부 학부모의 넘치는 자녀 사랑, 놀라운 파급력을 가진 SNS의 기능에 대한 부담에도 많은 교사가 학교의 시간 안에서 분투하고 있다. 미래의 동량이 될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다. 교사는 아니지만 나도 그 선상에, 아주 작은 점 하나 만한 크기로 서 있다.
오늘 해야 할 주요한 업무는 A 공공기관에 지원하는 학생의 입사지원서 접수와 B 공기업에 도전하는 학생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주는 일이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픈 허리와 어깨를 두드려 가며, 수시로 밀려오는 지끈지끈 두통을 달래며 해야 하지만 행여 소홀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자기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은 지난 33년 동안 몸에 배어있는 태도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만사 모두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십인십색,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경험과 소신이 있고 생각이나 가치관 또한 다르다. 하물며 이곳에서 나는 임시 계약직 신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어떤 사안이든 주류 측에서 허용하거나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게 아무리 선의이고 합목적적이라도 말이다.
짧은 기간 피상적으로 관찰한 내용이지만, 그동안 알게 된 교사들의 보편적인 속성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온화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 둘째, 자기주장과 소신이 강한 편이다. 셋째, 상대가 누구든 가르치려는 본능이 있다.
또한 교사들은 각자 정해진 과목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유 업무를 하는 수평적인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어떤 행정적인 과제 또는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공동 목표 설정, 컨센서스 형성, 전략과 전술 수립, 일관된 추진력, 성과와 보상 같은 일련의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입체적으로 전개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학교 나름의 흐름과 룰이 있겠지만 33년 차 기업인 출신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 취업을 돕는 일'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관계자의 목적이야 당연히 같겠지만, 그 방법이나 수단에 대한 생각은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오늘 내가 들어버린 '희망고문'이라는 충격적인 단어가 그 일례이다.
내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공기업, 공공기관, 금융기업이다. 이들 기관은 실업계고 학생에게 입직할 수 있는 길을 정책적으로 열어 주고, 취업해서도 직업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경력 관리가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반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일반직 고졸 채용이 거의 없고 현실적으로 고졸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직무 구조이다. 또한, 소규모 기업과 개인 회사의 입직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으나 환경이나 복지 등이 열악하여 사실상 장기근속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전년도 이 학교 취업 현황을 분석해 보았더니 그렇게 진취적이지는 않았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고, 고졸자 취업이 다 그렇지 않으냐고 치부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눈높이를 학생의 현재 수준에 맞게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 직장은 인생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최대한 높여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학교 측에서는 취업률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학생들에게는 어디에 취업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직장 생활 33년 경력자인 나의 소신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 공공기관, 금융기업 관련 취업 정보를 최대한 많이 학생들에게 노출하려고 노력한다. 1~2학년 또한 이 채용정보가 일종의 목표 또는 로드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런 채용 공고를 검색하여 해당 정보를 취업 게시판과 학생들에게 공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동기부여가 되고 도전해 볼 여지도 생긴다. 어차피 재학생은 수업 일수의 3분의 2를 지나는 10월까지는 현장실습을 나갈 수 없으므로 일반 기업 채용 공고는 나온다 해도 지원이 불가능하다.
다행히 이 학교 취업반 학생들은 기본적인 자격증 취득이 나름 잘되어 있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자신의 객관적인 취업 역량이 다소 부족하다면, 꼭 합격한다는 생각보다는 도전해 보고 경험해 보는 것에 의의를 두면 된다. 지는 것도 배워야 한다. 한두 번 떨어진다고 인생이 끝장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실패의 경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앞으로도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준비된 자가 성공을 거머쥘 것이다.
반면 일부 교사들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기업, 공공기관, 금융기업 등은 경쟁률이 치열하여 애당초 합격 가능성이 매우 낮고, 전형 절차가 길고 복잡하여 치다꺼리할 일만 늘어날 것이며, 높은 기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떨어지면 학생들이 취업 의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이를 한마디로 '희망고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리하여 나는 졸지에 희망고문하는 취업지원관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도 그런 시도를 했었지만, 희망고문에 그쳤을 뿐 번번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싫은 내색을 했다. 누구도 대놓고 제지하지는 않았으나 나를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 걸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반드시 한 명이라도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겠다는 투지가 생겼다.
'희망고문'이라 말하는 선생님의 경험적 판단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사가 너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게 되면, 결국 학생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루어질 가능성은 무조건 제로이다.
나도 어려운 현실을 잘 이해한다. 현재 취업반 학생 중에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금융기업의 합격권에 들 정도로 역량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저학년 때부터 목표 의식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준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업은 덧셈, 뺄셈이 아니다. 따라서 해보지 않으면 그 결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 학생이 써서 온 자소서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 본인의 가치관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취업반 수업을 처음 하는 날 교실 뒤에 걸려 있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는 현수막 문구를 보고, 무질서한 자신의 생활 패턴을 뜯어고치기로 하였고, 이후 이게 본인의 좌우명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이처럼 어이없는 대목에서 깨달음과 변화를 도모한다.
당연히 교사들은 이런 당위성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답답하다며 가슴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33년 차 직장인이 고교 알바'를 하는 동안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속은 좀 상하겠지만 희망고문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다.
그러니 얘들아 어때, 나와 함께 한 번 도전해 보지 않으련?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단다. 다만, 혹시 뜻대로 안 되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기.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