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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Apr 25. 2024

쓴소리도 들어주세요

하인리히 법칙

공기업에 지원했던 학생이 면접에서 탈락했다. 아쉽게도 예비 합격 1순위였다. 취업부선생님들과 학생 본인은 합격자 중 한 명이 포기할 수도 있다며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현장실습이 가능한 시기가 되었으므로 일반 기업체로 눈을 돌려야 한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업 입사지원을 통해 훨씬 어려운 전형 절차를 경험한 학생들에게 일반 기업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할 것이다.


이미 지난주까지 A사에 6명이 지원해서 최종 면접까지 마쳤고, 이틀 후에는 B사에 2명, C사에 4명의 면접이 각각 오전과 오후에 예정되어 있다. 순탄한 진행이다. 다만,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니 만큼 내가 인솔을 해야 한다.


오늘은 현장실습 나갈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특강을 하는 날이다. 주제는 '현장실습 비즈니스 매너'로 현장 적응력을 높이고 복교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 교육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다. 지난 33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실제로 보고 겪었던 사례 위주로 강의 자료를 준비했다.


이렇게 요새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33년 차 직장인 출신 알바'의 내공 또한 만만치 않다. 일이 적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시간이 부족해 허덕이지 않는다. PPT로 작성한 강의 자료를 최종 검토하고 있는데, 책상 한쪽에 밀어둔 핸드폰이 울어댄다.


오후 1시쯤 도착합니다. 아, 맞다. 오늘 구청 담당자가 방문한다고 했지. 점심시간에 오시라고 했었는데 식사하고 올 모양이다. 방문 목적은 '복무 및 근무 환경 확인'이라고 했다. 구청 담당 부서에서 관할에 있는 사업 대상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는 일정인 것 같다.


비좁은 취업준비실에 구청 팀장과 주무관, 취업 부장과 나, 이렇게 4명이 앉으니 거의 무릎이 맞닿을 지경이다. 벽 한쪽에 붙어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는 오후 특강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간식이 쌓여 다.


이 취업준비실로 말할 것 같으면, 계속 '준비 중'이었다가 얼마 전에 세팅되었다. 한쪽 벽면으로는 구형 데스크톱 컴퓨터 3대와 프린터 2대가 설치되어 있다. 반대편에는 작은 테이블과 접이식 간이 의자 두 개가 있다. 그런데 이 마저도 툭하면 사라진다. 테이블은 다른데 가져다 쓰겠다는 걸 겨우 붙잡아 두었다.


주무관 : 취업지원관 자리가 교무실 안에 있나요?

나 : 네.

주무관 :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나 : 아닙니다. 취업 부장님 바로 옆자리라서 아주 좋습니다.

(출입구 바로 앞자리라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주무관 : 일하시는데 누가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나요?

나 : 전혀 없고요. 오히려 제가 취업부장님을 괴롭힐걸요?

(다들 배꼽을 쥐고 웃는 걸 보니 조크가 먹혔다.)


주무관 : 업무량은 적절한가요? 담당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라고 하는 일은 없나요?

나 : 제가 더 할 일이 없나 찾아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땜빵으로 취업특강을 벌써 두 번이나 했어요. 물론 무료죠.)


주무관 : 근무 시간은 잘 지켜지고 있나요? 초과 근무는 안 하시죠?

나 : 네. 그럼요.

(그런데 근무 시간 안에는 제가 잠깐만 안 보여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네요.)


팀장 : 나이가 좀 있으신데 취업부장님 하고 잘 맞으시는 것 같네요.

취업부장 : 그럼요. 얼마나 좋으신데요.

주무관 : 계약서 쓰실 때는 어떤 분인지 자세히 못 봤어요.

(이 대목에서 나이 팩폭을? 그리고 구청에서 계약서 쓸 때는 아무런 관심도 없더니.)


나 : 아, 그리고 1월에 한 달 재계약해야 합니다.

(취업부장이 이 부분에 예민하거든요.)


팀장 : 내년에 계속 안 하시고요?

나 : 저는 12월까지만 했으면 하는데 학교 측 요청으로 1월까지 한 달 더 하는 걸로 했어요.

취업부장 : 너무 아쉬워요.

팀장 : 새로 뽑으셔야겠네요.

주무관 : 절차가 있으니까 거기에 따라서 진행해야죠.

(그럼요. 언제든 대체 가능할 텐데 뭐가 걱정이겠어요.)


여기까지 얘기를 마친 주무관이 들고 온 체크리스트에 쭉 체크하고는 내게로 서류를 디밀며 서명을 하라고 한다. 내가 서명하자 서류를 챙겨 든 주무관과 팀장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제 그만 가보겠다며 일어난다. 왜 벌써 일어나시냐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지금 물 한 잔조차 대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빨리 면담을 마치는 것이 상책이다.


1층 현관까지 배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서 취업부장이 자평했다.


취업부장 : 잘 끝난 거 같아요.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 :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그 자리에서 미주알고주알 하면 뭐 하겠어요?)


약 15분에 걸친 '취업지원관 복무 및 근무 환경 확인'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학교 입장에서는 내년 이후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구청은 본인들의 계속 사업인 만큼, 상급 기관인 시청에 쇼잉(showing)할 만한 움직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취업지원관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한 번씩 다녀가 주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가끔씩 존재가 확인되니까.


굳이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별도 간담회를 열거나 또는 취업지원관들을 각각 따로 불러서 얘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좀 더 건설적인 내용들이 들리지 않을까? 이기적인 불평불만이 난무할 공산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쓴소리를 피하면 안 된다. 만약 의지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혹시 펄 밭에서 진주를 건질 수도 있다.


내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직업계고 취업지원 사업과 관련한 몇 가지 해결 과제가 있다. 이를테면, 취업지원관의 업무 역량이 평준화되어 있지 않아 개인차가 심하다. 또한, 각 학교에서 요구하는 역할 범위가 단순 행정 지원에서 전문성을 띤 업무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크다. 그리고 단기 계약직이다 보니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취업지도의 연속성 부족하다.


만약 이런 부분들이 현장의 목소리와 의견을 들어 정리되지 않으면 머지않아 '직업계고등학교 취업률 제고'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취업지원관 사업에 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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