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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Jul 11. 2021

등장인물과 함께 -젊은 사람

딱히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어떤 캐릭터

젊은 사람 - 



어제는 우연히 강철 부대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나는 여자라서 한국에서는 군대에 갈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 이상한데 군대를 20대에 갔어야 했다면 굉장히 막막하고 심상치 않게 


힘들었겠지만 한 편으로는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 딱히 특혜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나이브하게 전쟁자체가 다 없어져야 하고 군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고 어쩔수 없구나, 싶어졌다. 그러고 나니 우연치않게 총 쏘는 법도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직업 군인이라도 해보지 그러냐 는 말은 사양하겠다. 직업으로 군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원체가 제복을 입는 직업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그 제복이 권위를 상징할 때는 더더욱 거부감을 갖는 나인데 인간을 한계까지 밀어 넣고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면서 


‘나는 죽어도 저런 상황에 있고 싶지 않다’고 강력히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버티는 정신력과 


육체의 훈련된 강인함이 경이스럽다고 보며 잠깐의 관심을 가졌다. 뭐 세상일이 그렇듯 저 사람은 


대단하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세간의 관심을 끌다보면 어떤 이들은 


불미스러운 과거의 먼지를 가리지 못 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구설수에 휘말려 이런 저런 


뉴스가 나오는 경우를 봤다. 강철 부대도 그런 경우가 있어서 ‘세상 참 넓고 사람은 알 수가 없고 


무섭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고 알게 된 사람도 있다. 



유디티 하사 출신이면서 화가라고 했다. 모델도 하는 것 같았고 젊은 나이 치고 신기한 분위기가 


풍겼다. 어떻게 보면 만화에서 튀어 나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마음껏 자신의 어둡더라도 표현하는 그의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그림의 분위기도 내 관심을 끌었고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줄타기를 오로지 정신력으로 


해내지는 못했지만 버텨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 모습과 특유의 약간은 음울한 분위기가 


지금의 나에게는 ‘젊음’이라고 느껴졌다. 청춘이 아니라 젊음이었다.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해내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몸이 녹아들어가도 그런 줄도 


모르는. 그것은 무조건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또 치기어리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 



발로 줄을 꼬아서 탄력을 받지도 않으면서 두 팔의 힘에만 의존해서 중력을 거스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을 실어다 줬다. 어떤 부분에서는 강한 정신력이라고도 


보여졌지만 결국엔 거기에 좌절하는 모습에 슬픈 표정을 짓는 그에게서도 뭐라 딱 꼬집을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백퍼센트 멋있지도 백퍼센트 슬프지도 백퍼센트 안타깝지도 백퍼센트 우러러볼만 하지도 않는데 탄성이 나온달까. 물론 그의 이목을 끄는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컸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깊어 보이던 선배가 ‘그렇게 까지 안해도 되는데..’라며 안타까워하는 그 


눈빛도 참으로 이해가 됐다. 



그런 상황이 딱히 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내 나름대로 ‘끈기’와 ‘근성’을 가져보자며 내 자신을 


코너로 몰았던 어떤 20대의 나날이 투영이 되었나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딱히 군대의 극기훈련이나 그의 멋있어 보이는 외관과는 상관은 없다. 



어둡다는 느낌이 드는 그의 그림도, 예민하고 복잡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면서도 뻑뻑하고 뭔가 전혀 달라 보이는 군대를 택한 그의 선택도 나에게는 참 ‘젊어’ 보였다.  



내가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간의 어둡고 알 수 없는 검은 심연을 굳이 강박적으로 들여다 보려 하지 않는다. 한 편으로는 내 심리적인 장애들을 스스로 치료하고 또 시간이라는 약을 들여 가며 진도를 뺀 탓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 수록 검은 옷을 싫어하게 된다는 어렸을 적 선생님의 말이 한 편으로 몸소 이해가 되어 간다. 슬픈 노래도 더 이상 찾아 듣지 않는다. 일상에서 슬픈 노래를 듣게 되면 그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볼륨을 낮추고 긴 호흡의 영화도 보지 않는다. 



짧은 호흡으로 일상에 ‘에고, 아이구, 죽겄네, 힘들다, 나 죽겠네, ‘ 넋두리를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음울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것도 젊은(물리적 나이도 그대로 젊은) 시기의 특권이다 싶었다. 


아닌 걸 알면서 안되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극단으로 몰아 부칠 수 있는 것도 그 떄만의 


특권이다 싶었다. 게다가 적절한 음울함까지 더해지면…… 영화 ‘비트’같은 ‘젊은’ 그 느낌의 향수를 조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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