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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Jul 11. 2021

등장인물과 함께- 딥스

놀라운 아이의 세계


길거리에 사람들이 패딩도 입었고, 반팔도 입었다. 패딩도 이해가 되고 반팔도 이해가 되는 

날씨다. 어느 새 봄이 이미 와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멍하니 미세 먼지에 반사되는 봄볕에 눈을

찌뿌리다가 하나의 이름이 지나갔다. 

딥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독서시간이 있었는데 찌그러진 학급 문고 캐비넷 안에서 찾은 책이었다. 

어쩌다 잡게 된 책은 나를 독서의 몰입의 시간으로 빨아들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안데르센 동화

집을 몇 번씩 읽고 80일 간의 세계일주도 읽기를 좋아했지만 이 책은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자기 안에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 가둬 버린 ‘딥스’라는 아이가 모래에 아빠의 무덤을 만든다든지

말로 다는 설명할 수 없는 놀이를 통해 딥스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나오는 이야기다. 내가 읽었던 

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책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걸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좋았다.

‘딥스’라는 아이는 살아 있다. 내가 숨쉬는 이 세상에 살고 그 방 안에서 나왔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회색의 잘 열리거나 닫히지도 않았던 작은 학급 문고 안에 그닥 읽을 만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도 몇 번 읽었던 것 같다. 

네모나고 모난 책상과 걸상과 흑색 칠판, 유난히 삐그덕 거리던 나무 마루. 정신없이 장난치고 

하라는 대로 하다가도 창문 밖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손가락으로 그림자를 만들기도 

했던 그 교실의 장면은 오래된 사진이 되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그 기억은 내 무의식에서 

어두운 방안에서, 교실의 책 걸상과 칠판에 더 싸늘했던 공간에서 창 밖의 햇살로도 나갈 수 

있게 했을 수도 있다. 물론 방 안 어느 모서리 진 곳에 엎드려 있는 여러 장의 낡은 사진도 많다. 

이 딥스라는 아이는 의외로 부모님이 교수이고 풍족한 집 안의 아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만이 

다 행복하다라고 할 수 없다는 건 알 것이다. 모자랄 것 없고 빛이 나고 광이 나도 불편하고 마음이

삭막해지는 것이 위안을 주진 않는다. 그래서 추억의 음식과 마음에 남는 따뜻한 기억은 재산도 

배경도 학력도 권력도 아닌 것이다. 국밥을 오성급 호텔에서 특식으로 먹는 정치인들도 마음을

얻으려고 시장에 가서 국밥을 먹는 이유가 아마 이럴 것이라 예상해본다. (물론 아주 광이 나고 

레드 카펫이 깔린 부를 누려보지 않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 

서른 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목숨을 걸 정도로(미친 듯이 열심히 했다는 뜻이 아니라,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께도 부담을 주면서도 선택을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 갈등을 많이 

하며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숨어 있는 그 아이를 이제 방 안에서 나가게 해주고 싶어서 였는 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의미로 계속 죽은 채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

었다. 물론 그 선택은 따뜻한 햇살이 맞이 해 주지 않았다. 또 다른 더 큰 감옥으로 장소를 옮긴 

것 같은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회가 없지는 않다. 하하하

그치만 절실해서 부업으로 하게 된 가르치는 일은 내게 또 다른 아니, 더 든든한, 직장보다도 

내게 더 맞는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그 노동에 맞는 대가를 받고 

적당한 인정을 받는 것 자체가 내게 큰 힘이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고민도 듣고 

내가 다 해줄 수는 없지만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 생기는 오해와 애증, 미래에 생길 수도 있는 

큰 갈등의 도화선을 목도하기도 한다. 물론 내 자식이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질 것 같고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하는 말에 상처를 받고 많이 속상해하기도 한다.  나름 고민에 봉착했을 때는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도 했다. 근데 그 영상의 댓글 들에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보다

어린 아이가 되어 과거의 상처와 부모의 나이가 되었어도 자신에게 했던 부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이 눈물의 댓글을 달고 있었다. 

딥스가 생각나 다시 찾아본 책의 소개글에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지침서라기

보다는 ‘딥스’가 방 안에서 나오는 과정이 부모도 상처가 치유되는 길이 된다는 말이 또 하나의 

빛 줄기를 찾은 느낌이다. … 물론 실전은 어렵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맘 속의 ‘딥스’를

자유롭게 해주는 길이 갇혀 있는 지금의 ‘딥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임을 한 번 더 생각해줬음 하는 마음이 든다. 요즘같이 상상하기도, 생각하기도 어려운 아동학대 뉴스가 나올 때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동네의 품이 든다’는 옛 말이 다시 되뇌어지는 요즘이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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