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시간을 걷는 일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나희덕 <속리산> 중-
어느 날 <속리산>이라는 시는 저에게는 일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늘 반복되는 일상이 '퍼펙트 데이'라고 위로하지만, 제자리걸음 같은 발걸음이 저에겐 그저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제 유전자 검사, 골수 검사 결과 2차 항암제 실패가 선언되었습니다. 유전자 수치는 지난번 수치에서 0.1도 어긋 없는 10% 이상의 암이 잔존하고, 골수 검사에서도 염색체 육안 판단으로도 암세포는 줄지 않았습니다. 확진부터 9개월. 보통 이 시점이면 0.1% 미만의 수치를 향해 가는데, 꿈쩍하지 않고 그저 혈구들만 파괴되는 현상이 지속이랍니다.
좌절할 겨를도 없이 3차 항암제를 차주부터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에 보험 급여 확정되었고, 기존 약제 기전과 다른 단백질 포켓을 타깃으로 한 진일보된 약제라니 기대 보기로 합니다. 저의 경우처럼 차도가 없거나 돌연변이 유전자로 내성이 강한 경우 특히 임상 효과가 좋다니 그저 기도하는 맘으로 기대해 봅니다.
그래도 죽음을 이따금 생각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묵상의 마지막은 참 신묘하게도 감사였습니다. 지난겨울에서 조금 늦었더라면, 아내가 서울 병원 전원을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의료대란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렸겠지요. 참 감사할 일입니다. 신약이 식약청과 건보 등재되지 않았다면 치료 포기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 감사할 일입니다.
물질과 여유가 바닥이 날 때면, 그 고비를 딱 넘길 만큼 적당한 도움이 찾아오는 일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렇게 살고자 희망하는 일도 감사, 또 감사합니다.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제가 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 일지도 모릅니다. 신은 채찍이 아니라 시간으로 벌주신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희망과 용기라는 힘도 주시는 듯합니다.
누군가는 단숨에 넘을 수 있는 높이를 저에게는 길게 길게 늘여 주심도 희망과 용기 잃지 말라는 감사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응원은 유효합니다.
<항암 치료비 모금>
SC제일은행 22320191759 박철웅
하나은행 10291039413107 김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