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스테파노 Oct 19. 2024

[늦은 아침 생각] 승모근 (僧帽筋)

웅이가 여니에게

승모근 (僧帽筋)

이 땅 지구도 지고 일어설 만큼
금세 솟아 오른 근육통의 부산물
근심과 걱정을 돌돌 말아
어깨 위에 얹어 놓은 모양이
부처님 오신 날 따가운 햇살에
민둥머리 덮으려 올려놓은 승모와 같다
부처는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품으라 하거늘
나는 온갖 생각을 꼬깃꼬깃 접어
애꿎은 어깨 위에 수심의 언덕을 세운다
지난날이 잊혀지면 이 뾰죽 솟은 살덩이도
부서지는 파도처럼 흩어져 무너져 내릴까
잊으려 무게 올린 데드리프트에
내 승모근은 점점 산을 이룬다
그래서 난 잊지 못하겠지
내 승모근이 솟아 있는 한

-2015년쯤 끄적임-


한때 근수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덕에 제법 굵은 통뼈에 악력과 기립근이 탁월해 운동을 하는 족족 근육으로 자리 잡곤 했었지요. 탁월한 근력과 탄력에 종종 엘리트 스포츠 선수의 길을 제안받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다 부질없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여러 근육 중 가장 발달한 곳이 승모근이었습니다. 크게 벌크 업하지 않아도 티셔츠 목덜미 곁으로 우뚝 솟은 이 녀석 덕분에 좀처럼 시비 걸리지 않은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물론 비례하여 목이 두꺼워지고 짧아 보이는 단점은 있지만, 평균의 남들보다 기운 세고 체력 좋은 이유가 이 승모근과 코끼리라는 별명 붙은 허벅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장을 새로 구입할 때면 바지를 두벌 더 구입해야 허벅지 팽창으로 쉬이 수명 다하는 정장의 사이클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늘씬한 핏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참 가볍지만 행복한 고민 가득한 날들이었습니다.


암세포가 골수에 가득 찬 것도 모른 체 살이 잘 빠진다며 자기 위로했던 작년 이맘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80킬로 중반의 체중이 60킬로 대로 줄어들고, 양쪽 어깨 위 자랑스럽던 승모근도 한주먹도 안 남았으며, 허벅지는 점점 늘씬해졌으니까요.


아내의 보살핌 덕에 10킬로 정도 회복한 요즘입니다. 백신도 항생제 처방도 어려운 시점에 독감이 찾아왔습니다. 열과 통증은 참아내면 그만인데 밤새 발한이 지속되어 잠자리가 흠뻑 젖기 일쑤입니다. 이러다 또다시 얼마 안 남은 승모근이 사라질까 두려웠습니다. 근심과 수심이 켜켜이 쌓인 곳이라도 좋고, 세상 걱정을 다 짊어질 모양새라도 좋으니 양쪽 어깨의 승모근을 다시 마주하고픈 오늘입니다.


근육통이 오면 근육이 자라듯이,

이 아픈 날들이 가면 희망이 가득 자라길 기도해 봅니다.


 -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10년 전 쯤?

이전 04화 [늦은 아침 생각] 우산을 기다리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