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여니에게
아침 5시 알람에 뒤척임도 사치인 새벽 아내와 까만 창의 블라인드를 걷어 내고 눈곱만 걷어낸 고양이 세수로 첫차 같은 텅 빈 740번 버스를 불러 세우러 정류장으로 걷습니다
염좌인지 신경통이 모질게 온 아내의 집게손가락을 조심스레 피해 반쯤 잡은 손을 그리 두껍지 않은 점퍼 외투에 욱여넣고 세워질 리 없는 옷깃을 만져 첫차 같이 썰렁한 버스를 탑니다
비루한 일상답지 않은 동네 테헤란로에는 이천 년 전 태어난 마구간 예수의 생일 촛불들이 벌써 휘영대고 타지도 내리지도 않을 텅 빈 정류장에 세웠다 가다를 반복하다 보면 그 이천 년 전 아기를 동정녀의 몸으로 수태하였다는 마리아의 이름이 걸린 병원 앞에 내려섭니다
인기척 있을 리 없는 키오스크에 수납을 하고 이름 적힌 번호표를 접수 때 한 번 채혈 때 또 한 번 뽑아 기다림만 자욱이 내려앉은 성질 급한 노인네 역정 마땅한 병원 채혈실은 언제나 적막이 함께 합니다
그 적막을 깨는 사정 모르는 띵똥 소리에 호명되는 번호들 호명에 맞추어 이름 생년월일을 관등성명처럼 복창하고서야 따끔한 바늘이 팔의 오금을 찌르고 “따끔하세요”라는 주의인지 경고인지 핑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말끝에 익숙한 통증이 금세 지나갑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고 외래 진료가 시작될 시간까지 마음 한편에 걱정을 가두고 반대편에 기대를 얹는 시간들 속에 뜨겁고 새까만 아메리카노 한잔을 부어 시린 가슴을 달랩니다
혈액수치는 늘 저공비행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불편한 접속사를 끌어와 항암을 강행하기로 하고 빨간 피 두 개와 노란 피 하나 받고 하얀 피 촉진제를 맞으며 피생산을 태업하고 있는 골수 속 조혈모 세포를 달래고 어르기로 합니다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한 뱀파이어 같이 피를 달고 사는 무한궤도 위의 일과는 오후 세시가 되어 일상이라는 단어의 월요일로 다가 서고 아내와 나누는 이름 없는 점심과 저녁 사이 이른 저녁 식탁에서 김치찌개 한 그릇 계란 프라이 하나에 오늘도 무사히란 어릴 적 시내버스마다 걸려있던 기도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마음 녹여 봅니다
누군가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어떤 이들은 비혼의 출생을 만들어 이러쿵저러쿵 훈수꾼 뒷짐지기 딱 좋은 날에도 그저 아주 개인적인 기대를 담아 기도할 뿐입니다
병원 성당에서 기도가 짧아집니다
기도에 열과 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해탈과 열반에 머물러 무언가 바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 욕심과 미련이 간추려지고 이제는 단 한 가지만을 기도합니다
어떤 내일 오더라도 제발
내 사랑하는 이 사람만 크게 당황하지 않게 해 주소서 단 이 한 가지만 아멘
-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