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두 얼굴- 성실한 복무, 나태한 방관

아름다운 지옥의 설계자들- 성해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by 박 스테파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갈월)에서 갈월동 지하차도를 지나 효창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봄마다 이팝나무 향이 흐드러지는 가로수길을 만난다. 길은 약 200미터 남짓한 일방통행로로 이어지다 중간에서 숙명여대 쪽에서 내려오는 도로와 합류한다. 푸른 언덕의 동네, 청파동에서 흘러온 길이다.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2021)에는 청파동의 풍경이 조용히 스며 있다.


“숙명여대 방향으로 접어든 염 여사는 사내를 꼬리처럼 매단 채 골목을 두어 번 지나 작은 삼거리에 다다랐다. 삼거리로 갈라지는 모퉁이에 자리한 편의점. 그것이 염 여사가 소유한 작은 사업체였고, 사내에게 다시 도시락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염 여사가 운영하는 ‘Always’라는 편의점은 숙명여대로 올라가는 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삼거리의 다른 한쪽은 갈월동으로 향한다. 갈월동을 무심히 걷다 보면 어느새 후암동 골목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일대의 길들은 칡넝쿨처럼 얽히고 갈라지며, 멀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래된 동네 특유의 비선형적인 골목들, 돌고 도는 길의 감각이다.


갈월동 지도. 네이버 블로그 스토리탐험가 제공


갈월동(葛月洞)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그러한 얽힘을 품고 있다. 칡(葛)이 많았다는 설, ‘갈월도사’라는 인물이 살았다는 이야기, 혹은 칡 우거진 산과 밝은 달의 풍경을 뜻하는 ‘갈산명월(葛山明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까지. 분명한 하나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그런 궁금증을 안은 채 골목 끝자락에 다다르면, 기묘한 건물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중간 층에 세로로 길게 난 창, 미학의 평가에서 비껴난 음습한 외관. 지금은 ‘민주화 기념관’으로 불리지만, 한때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갈월동 98번지(정확히는 98-8번지)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에 실린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이 장소의 태생적 사연을 정면으로 끌어안는다. 설계를 책임진 건축학과 교수 여재화, 그리고 그의 제자이자 고문 시설의 실제 설계를 맡게 되는 구보승의 심리와 행위를 따라가며, 소설은 역사와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읽다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물들이 아니라, 갈월동 98번지에 여전히 서 있는 그 건물 자체라는 사실을. 말없이 남아, 모든 시간을 기억하는 집.



구의 집, 설계된 침묵의 윤리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역사적 사료 위에 사실과 가상을 정교하게 포개며, 허구임에도 사실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서사를 밀어 올린다.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구의 집’은 현대사의 다크 히스토리로 남은 사적 공간, 남영동 대공분실을 뼈대로 삼는다. 이 건물의 이력 또한 실제 역사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잠사, 곧 명주실을 뽑는 공장이 있었고, 전쟁 이후에는 공업사가 들어섰다. 1976년, 내무부장관 김치열의 발주로 ‘수련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공안 업무의 핵심인 심문과 취조의 장소로 전환된 과정 역시 다큐멘터리적 사실에 가깝다.


소설은 설계 책임자와 실질 수행자를 여재화와 구보승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세우고, 실제 설계자 김수근을 그들의 스승으로 에둘러 배치한다. 이 설정이 작품과 시대의 공명을 강화하는 장치인지, 혹은 독해를 방해하는 요소인지는 독자의 판단으로 남는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인 구의 집의 설계자 구보승은 누구인가.”

- 성해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중에서


이 물음은 실제 설계자 김수근과 그를 두둔해 온 이들의 변명을 탄핵하기 위한 논리적 장치로 읽힌다. 소설 속 여재화는 이 작업이 얼마나 비윤리적이며 비양심적인지 충분히 인지한다. 권력의 눈 밖에 나는 순간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타국을 떠돌다 생을 소진하게 되리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는 처세에 능했고, 정교수 임용과 사회적 명성 역시 권력의 비호 아래에서 획득 가능한 자산임을 냉정하게 계산한다.


증축전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기념사업회 제공


여재화는 헤로데 같은 무모한 탐욕자가 아니라, 빌라도에 가까운 약은 모사꾼이다. 그는 비난을 대신 떠안을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그 자리에 제자 구보승을 세운다. 일의 정합성에 대한 확신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불편한 몫을 조교에게 전가하려 했다. 재능은 있으되 야망이 없고, 다루기 쉬운 인물. 야망을 지닌 자들은 언제든 불씨를 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명성과 재능, 이를 떠받치는 배경에 어설픈 철학이나 사명, 양심이 개입되는 순간 상황은 통제 불능이 된다.


여재화에게 건축가는 깨지고 부딪히기를 주저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그가 말하는 야망이란 그런 것이었다. 건축을 향한 원대한 이상,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함, 방향이 어디를 향하든 선명하게 나아가는 힘. 구보승이 제출한 도면은 기본기가 탄탄했고 오차 없이 정확했다. 성실함 또한 두드러졌다. 그러나 여재화의 눈에는 늘 결정적인 무엇, 곧 야망이 부족해 보였다.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성실함이라는 맹목적 진정성이 오히려 야망이라는 추념적 벡터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반전의 자각이야말로 이 소설 서사의 핵심적 매력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 억압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역사의 오점으로 남는 서사는 낯설지 않다. 이는 ‘기술적 전문성’과 ‘윤리적 책임’ 사이의 균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물들은 과업에 몰입했으나, 그 과업이 놓인 정치적 맥락을 외면함으로써 비극의 일부가 된다. 구보승은 ‘성실한 공동 정범’의 전형으로 남고, 여재화는 불가피함을 핑계 삼는 ‘치밀한 방관자’가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나 이렇게,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방향으로 기여한 틈새에서 자라난다.



좁은 창, 빛을 설계한 폭력


이 소설에서 폭력은 거창한 이념이나 음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형성된다. 건축가 여재화는 이미 사회적 성공의 궤도에 오른 인물이고, 그 관성 속에서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무심히 받아든다. 그것이 국가 기밀 사업, 다시 말해 부도덕하고 비합리적인 일이라는 사실은 그의 결정에 깊은 윤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는 목적의 무게가 아니라 일정과 물량의 불균형이다. 그는 스스로를 과신했고, 시간을 계산했다. 그의 회피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다.


과중한 업무를 분산하기 위해 여재화가 선택한 이는 제자 구보승이다. 구보승은 오래전부터 합리적이고 도식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능력의 결핍이 아니라 성향의 문제에 가깝다. 과도한 문제의식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도 없는 태도. 여재화에게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야망 없는 조수는 의심을 부르지 않고, 스스로 방향을 틀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설계하는 건축물처럼 관리 가능한 존재로 인식된다. 여재화가 감지한 구보승의 본질은 한마디로 ‘안전함’이다.


그러나 이 안전함은 국가 기밀 사업의 실체, 곧 ‘고문실’이라는 공간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구보승의 합리성은 가치 판단이 제거된 채 증폭되며, 이상을 상실한 기능주의로 변질된다. 그는 왜 이 공간이 필요한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만 계산한다. 그 결과는 이상을 덜어낸 합리주의가 낳은 괴물의 그림자다.


1979년 삼척고정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고 김태룡씨가 처음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찍은 사진. 2017.2. 임종진 작가/경향신문 제공


이 지점에서 소설이 겨냥하는 것은 개인의 악의가 아니다. 오히려 사유의 부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유의 부재가 공동체에 남기는 악이다. 목적의 정당성을 묻지 않은 채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태도.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이는 사유를 미루는 선택이며, 그 유예가 반복될수록 행위는 관습이 된다. 관습화된 행위는 더 이상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 복무하는지도 모른 채, 거대한 폭력의 기계 속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존재가 된다.


여재화와 구보승의 관계는 이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출세의 욕망, 합리성에 대한 맹신, 질문하지 않음이라는 태도가 결합될 때 ‘짓는 행위’는 더 이상 중립적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목적을 삭제한 채 폭력을 정교화하는 도구로 변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건축이 윤리와 분리될 때 도달하는 가장 차가운 종착지를 응시한다. 이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3층 취조실’의 창문이다.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 성해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중에서


인간은 ‘희망’ 앞에서 능력 이상의 힘을 끌어내기도 하고,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기도 한다. 구보승은 희망이 깃든 자리를 어떻게 절망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집요하게 답을 찾아낸다. 그것은 ‘빛’의 조절이다. 세로로 길고 좁은 창을 남향으로 내되, 하루에 단 십 분만 빛이 스며들도록 설계한다. 그 빛은 잠시 공간을 훑고 지나가며, 그 끔찍한 장소의 실재를 눈에 각인시킨다. 희망의 빛은 시간이라는 무게를 덧씌운 채 곧바로 절망으로 기운다.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아우라 픽쳐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 상태’는 이런 건축을 통해 물리적 실체를 얻는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좁고 긴 창문, 비정상적인 층고, 소리를 삼키는 흡음재는 그곳을 법의 효력이 정지된 ‘수용소’로 만든다. 건축가는 공간을 통해 인간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격하시키고, 권력이 행사하는 폭력을 미학적으로 정당화한다. 자크 랑시에르의 시선에서 이는 ‘감성적인 것의 분할’이라는 고도의 통제술이다.


문제는 이 모든 성실한 복무가 사유의 나태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악의 사유로 채워진다는 데 있다. 여재화는 그런 생각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자 구보승은 발끈하며 되묻는다.


“선생님이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고요. 저는 그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다 선생님께 배운 건데……”

- 성해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중에서



사람을 짓는 건물, 건물이 만든 악


건축 설계사이자 건축학 교수인 남상문은 『지붕 없는 건축』에서 원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 의회 건물의 재건 계획을 발표하며 남긴 문장,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라는 연설이다. 남상문은 여기에 덧붙여, 좋은 건물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나쁜 건물은 나쁜 사람을 길러낸다는 뜻에 닿는다. 인간이 만든 건물에는 공동체가 품은 존엄과 의지가 스며들고, 건물은 그 용도와 형식만으로도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질서를 조형한다.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자 권력의 의지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가장 거대한 물리적 장치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남영동 대공분실, 오늘날의 민주인권기념관 설계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 점을 서늘하게 환기한다. 예술가의 재능과 전문가의 성실함은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 장치로 변질되는가. 이는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근대가 길러낸 ‘도구적 이성’과 미학적 배치가 결합해 만들어 낸 세계사적 병리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가치 판단을 상실한 이성이 효율성이라는 수단에만 집착할 때 도래할 파국을 경고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석 건축가 카를 비쇼프는 그 경고가 현실이 된 사례다. 그에게 수용소 설계는 학살의 무대를 짓는 일이 아니라, 시신 처리의 동선을 최적화하고 화장로의 내열 성능을 높이는 공학적 과제였다. 그의 도면 위에서 죽음은 수치로 환원되었고, 성실함은 학살을 가속하는 동력이 되었다.


카를 비쇼프(Karl Bischoff)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석 건축가로서, 짧은 시간 안에 대량 학살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시설을 구축했다. 가스실과 소각로 설계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했고, 수용소의 팽창을 주도했다. 이는 기술적 완벽주의가 도덕적 공백 속에서 발휘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였던 그는 1941년 아우슈비츠의 ‘무장친위대 및 경찰 중앙건설국(Zentralbauleitung der Waffen-SS und Polizei)’ 수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행정적 유능함과 계산 속에서, 비교적 소규모였던 수용소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살상 공장으로 변모했다. 비르케나우(Auschwitz II-Birkenau) 확장 과정에서 막사와 감시탑, 철도 노선은 치밀하게 배치되었고, 그 모든 구조는 죽음을 향해 정렬되었다.


1942년 7월 18일, 아우슈비츠에서 건축 설계도를 살펴보는 하인리히 힘러(가운데). 사진: © 에르푸르트 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 박물관


비쇼프 서사의 핵심은, 이 거대한 시설을 끝까지 ‘공학적 문제’로만 다루었다는 점이다. 가스실의 환기 시스템, 시신 운반 동선, 화장로의 내열 성능은 기술적 계산의 대상이었고, 일일 보고서와 공정표에는 공사가 계획보다 앞선다는 기록과 직업적 자부심이 남아 있다.


그가 이끈 중앙건설국은 막대한 자재와 인력을 통제하며 수용소 내부에서 독자적 권력을 행사했다. 부품 공급이 지연될 때 강경한 항의 서한을 보내는 모습은, 오늘날의 유능한 프로젝트 매니저를 연상시킨다. 그에게 건축은 예술도, 인간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국가는 목적을 제시했고, 그는 그것을 가장 경제적이고 신속하게 수행하는 데 몰두했다. 로버트 얀 판 펠트의 『아우슈비츠: 1270년부터 현재까지』(1996)는 비쇼프의 도면과 문서를 통해, ‘평범한 전문성’이 어떻게 거대한 악을 구축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전쟁 말기 그는 관련 서류를 파기하고 도주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남았지만, 그는 전후 오스트리아에서 평범한 건축가로 살다 1950년에 사망했다. 어떠한 사법적 단죄도 없었다. 그의 삶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건축이라는 물질적 형식으로 구현된 사례다. 전문가의 윤리가 부재할 때, 기술은 가장 정교한 살육의 도구로 변한다는 사실을 이 역사는 말없이 증언한다.



고립된 요새, 미뤄진 윤리


이러한 전문가적 냉담함은 귄터 안더스가 말한 ‘프로메테우스적 간극’에서 비롯된다. 건축가는 자신의 펜 끝에서 태어난 도면과,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터져 나올 비명 사이의 거대한 거리를 상상하지 못한다. 설계실의 고요 속에서 그어진 매끄러운 선들은 현장의 구체적 고통을 지워 버리는 세련된 마취제가 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저, 2023)가 보여주듯, 학살의 현장 옆에서 정원을 가꾸는 ‘평범한 전문가’의 일상은 그 자체로 악의 완성이다. 건축과 기술의 어두운 역사는 경고한다. 윤리적 상상력이 결여된 전문성은 언제든 ‘아름다운 지옥’을 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A24스튜디오


구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의 중심인 용산구에 자리하지만, 그 형국은 도시에서 분리된 요새에 가깝다. 서쪽으로는 철도가, 남쪽으로는 미군기지 캠프킴(CAMP KIM)이 놓여 있어 일상의 흐름과 단절된 공간을 이룬다. 고문과 폭력을 전제로 한 시설이라는 점에서, 이 고립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선택이다. 한강대로에서의 접근성은 열어 두되, 건물은 북측에 배치해 부지를 내려다보게 했다. 청파의 완만한 언덕과 후암의 두텁 바위를 등진 모습에는, 도시의 기운을 차단하고 스스로를 봉인한 요새의 태도가 선명하다.


대공분실은 조사 기능을 담당한 ‘분실동’, 통신 정보 분석을 맡은 ‘AMD동’, 그리고 식당과 기계 보일러실이 위치한 ‘부속동’으로 구성되었다. 각 건물은 기능에 따라 분리되었고, 5층 규모의 분실동은 남향으로 놓였다. 좌측에는 2층 규모의 AMD동이 연결되고, 부속동은 그 남측에 따로 배치되었다. 이 공간을 설계한 인물로, 당대의 어용 건축가라 불렸던 김수근의 이름이 거론된다.


김수근은 1960년대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는 국가 프로젝트 다수를 수주한 건축가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맡게 된 정확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정계와의 밀접한 관계가 작용했을 가능성은 크다. 중앙정보부 건물 역시 그의 설계였으나, 10.26사태로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실제 사용에 이르지는 못했다.


1960년대 김종필로 대표되는 집권세력과의 인연이 1970년대까지 이어졌고, 결국 이 프로젝트로 귀결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자연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김수근은 최소한 여재화의 입장에 가까웠을 것으로 읽힌다. 그렇기에 이 건물의 설계가 지닌 의미, 곧 악행의 실체를 누구보다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을 여재화(김수근)의 미루기와 변명은 더욱 악의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여재화는 대장에 구보승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이 끔찍한 공간에 자신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고 여재화는 믿고 싶었다. 대장에 구보승의 이름을 새긴 건 그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야만이었다.”

- 성해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중에서


구보승이 내민 설계와 해석에 분노하며 반대한다 해도, 애초 이 프로젝트는 ‘빨리 해치워야 할 일’이었다. 여재화는 자신의 야망을 완성하기 위해 사유를 멈춘다. 회피와 외면만으로도 그는 이 일에 충분히 기여했다. 깊이 생각하고 묻는 일을 피하는 고의적 나태는, 구보승의 성실한 복무와 경중을 가리기 어렵다.


3층과 5층의 건립당시 약전도(전기 배선, 감시카메라 배선 등). 민주확사업기넘회 제공


바로 이 지점에서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사실과 가상을 엮어 하나의 진실한 무늬를 만든다. 공간과 시간, 역사적 배경은 사실에 단단히 기대면서도, 가상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질문을 던진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수근은 성실한 복무자였는가, 아니면 나태한 방관자였는가. 그 질문의 끝에서 그는,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끝내 변명을 지속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이와 같은 복무자와 방관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가.



짓는 자의 변명, 남겨진 책임


“건축의 실천은 항상 자본을, 때로 권력을 필요로 한다. 건축가의 능력은 멋진 도면을 그리는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설계와 실행의 기회를 만들고 잡아야 한다. 김수근은 능력을 갖추고 기회를 잡은 걸출한 건축가였다. 권력 비호의 처세가였다고 그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고문의 설계자였다는 비난은 죽은 건축가에 대한 모독이다.”

- 서현, <건축가를 위한 변론> 중에서



서울대 건축과의 서현은 물론, 스스로 진보적 건축가를 자처해 온 승효상 또한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설계했을 것이라는 변론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그 건물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안다. 이는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해 치밀하게 연구된 결과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소설 속 여재화처럼, 구보승의 ‘지독한 합리주의’ 앞에서 당혹을 연기하며 완공된 건물에 자신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리고 건물의 정초석에 자신의 이름 대신 타인의 이름을 새기는, 가장 야만적인 발뺌을 선택한다. (실제로 정초석에는 발주자인 내무부장관 김치열의 명의만 남아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정초석. 민주화기념사업회 제공


이와 같은 가해자의 변명은 시간이 흘러도 닳지 않는다. 권력의 야만과 자본의 폭력이 기술적 전문성이라는 매끄러운 가면을 쓸 때, 사회는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변모한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사태와 오늘날 기술 자본이 구축한 노동 압착의 구조는, 공간과 시스템을 설계한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책임을 ‘직무의 성실함’ 뒤로 숨기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날 우리가 목도한 것은 헌법 파괴의 현장에 동원된 군인과 경찰,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 했던 관료들의 무비판적 복종이었다. 그들은 재판 과정에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귄터 안더스가 지적했듯, 현대의 전문가들은 자신이 누르는 ‘버튼’, 즉 명령과 집행이 불러올 파국을 상상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살아간다. 계엄의 종사자와 동조자들에 대한 엄정한 재판은 개인 처벌을 넘어, 국가 폭력의 톱니로 기능한 ‘기술적 전문성’ 자체에 대한 사법적·철학적 유죄 선언이어야 한다.


쿠팡과 같은 거대 기술 자본이 구축한 물류 시스템 또한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현대판 ‘구의 집’의 변주다. 알고리즘은 노동자의 동선을 초 단위로 계산하고, 물류센터라는 폐쇄된 공간은 오직 자본의 회전율만을 위해 작동한다. 이 체계를 설계한 개발자와 운영자들은 스스로를 혁신의 주체로 인식하지만, 실상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한 ‘감성적 분할’의 가해자에 가깝다. 노동자의 비명은 데이터의 노이즈로 처리되고, 배송 완료라는 결과값만이 ‘보이는 것’으로 남는다.


이 구조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법적 조력자들의 철학적 빈곤이다. 거대 악의 도구가 된 이들을 변호하는 이들은 법리를 정의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방패로 사용한다. 그들에게 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질서가 아니라, ‘기술적 허점’을 탐색하는 게임의 규칙에 불과하다. 이는 아도르노가 경고한 도구적 이성이 완성된 풍경이다. 법적 기술자들이 가치 중립이라는 허울 뒤에 숨을 때, 법치는 야만을 보호하는 가장 정교한 외피로 변한다.


김수근이 남영동 분실을 ‘건축 미학’으로 정당화할 수 없었듯, 계엄의 동조자들과 기술 자본의 하수인들 또한 ‘직무의 충실함’이라는 말로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기를 자처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파국에 응답할 주체성을 상실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재판은 법조문을 낭독하는 절차가 아니다. 전문 지식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그 지식 자체가 범죄의 수단임을 선언하는 철학적 투쟁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의도와 무관하게 무언가를 짓는다. 그 결과가 어떻게 평가되든, 세상에는 흔적과 무늬가 남는다. 글을 쓰는 일 또한 그러한 ‘짓기’에 속한다. 무엇을 지을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감당할 것인지는 짓는 동안 끝까지 끌어안아야 할 책임이다. 설명하려 할수록 더 모호해지는 것, 그것이 짓는 일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인식의 고통 대신 흘려보냄과 가벼운 책임을 택한다. 그것은 중력처럼, 늘 가장 쉬운 방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1977년 4월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을 방문한 김종필 전 총리(오른쪽)에게 건축가 김수근이 건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수근 문화재단



보이는 집, 사라지는 의미


미국의 근대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은 건축을 이렇게 정의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옮겨지고, 그렇게 드러난 것은 다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스며든다.” 이 문장은 건축 행위가 지닌 시간적·감각적 순환을 간결하게 압축한다. 이 말에 기대어 보면, 건축은 조형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사회적 분위기와 관념, 시대가 공유하는 무언의 전제들이 설계라는 언어를 통과하며 형태와 재료, 구조라는 가시적 질서로 옮겨진다.


그러나 이 과정은 완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완성된 건축물은 다시 언어를 벗어난다. 공간을 통과하는 몸, 그 안에 머무르고 움직이는 감각 속에서 건축은 설명 이전의 정서를 낳는다. 이는 설계도에 기록될 수 없는 차원이자, 건축가가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같은 공간은 서로 다른 기억을 호출하고, 예기치 않은 사용과 행위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이 지점에서 건축은 다시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 물질로 고정되어 있으나, 그 의미와 작용은 체험자의 감각 속에서 계속 변주되기 때문이다. 칸의 문장이 품은 역설은 여기에 있다. 건축은 관념을 가시화하지만, 그 결과물은 다시 언어 이전의 감응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건축은 보임과 보이지 않음 사이를 왕복하며, 의도와 결과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여백을 남긴다.


성해나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짧은 분량 안에 이 문장보다 두터운 질문을 남긴다. 문학적 성취로서의 의미는 분명하다. 다만 이를 끝까지 밀어붙여 진단하는 문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역사를 해석하는 일은 언제나 난도가 높다. 특히 가까운 과거일수록 윤곽을 붙잡기 어렵다. 건축에서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살펴야 하듯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는 아쉬움도 남는다. 1994년생 작가가 체감하는 1970년대의 공기는 상상과 취재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인리히 전범 재판, 남영동 취조실. 한겨레 자료 사진


남상문은 『지붕 없는 건축』에서 건축 담론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비유를 소개한다. 흔히 ‘사막의 신전’과 ‘숲의 오두막’이라 불리는 대비다. 이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두 가지 태도를 건축적 이미지로 압축한다.


사막은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는 공간이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앞에서 인간은 세계의 전체를 한 번에 마주하고, 홀로 떠 있는 하늘과 대면한다. 이 압도적 개방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미미함을 자각하며, 초월적 존재와의 대화를 위해 고립된 구조물을 세운다. 사막 한가운데 선 신전은 세계의 총체 앞에 선 단독자의 자세를 형상화한 결과다.


숲은 전혀 다른 감각을 요구한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는 전체가 결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식은 언제나 가까운 부분에 머물며, 느슨한 연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세계는 총합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로 체험된다. 숲에서 신은 멀리 있지 않다. 시야 밖과 발치, 숨결 사이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인간은 숲을 지배하기보다 그 일부가 되기를 택한다. 숲 속의 오두막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며, 고립이 아니라 공존을 향한 몸짓이다.


이 두 이미지는 건축의 형식 이전에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를 드러낸다. 전체를 조망하려는 시선과 부분에 머무르려는 감각, 초월을 향한 수직성과 관계를 받아들이는 수평성 사이에서 건축은 인간 인식의 은유로 작동한다.


소설 또한 집을 짓듯 지어 올리는 일이다. 사막 위에 선 인간을 조망하다가도, 숲 속에서처럼 부분으로서의 존재를 사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이야기’에 머무르기를 주저하지 못하는 최근의 젊은 소설들에 비해, 이 작품이 감히 사막에 서 보려 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다만 사막에서 숲을 찾으려는 헛된 수고만 덜어 낼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더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그 가능성에 대한 응원을 이 글의 끝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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