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티스 장르물에 대한 단상
부친과의 영화 추억을 이야기하려고 여러 자료를 보던 중,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표제가 눈에 띈다. 아버지 시대에 제법 회자되었던 영화를, 부친의 구술로 전해 듣던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대학을 가고 나서부터이니 참 오랜 시간 호기심에 가두어 두었다. 청소년기 시절 '호스티스'가 나온다는 이유로 일본의 핑크 무비를 상상했던 말초만 곤두서 있던 구순기의 모습도 부끄럽게 떠 올랐다.
생전 부친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회의 변화를 새삼 느끼게 되곤 하였다. 우리 세대의 영화는 온 가족이 찾아가는 외유의 대상이었고, 그 공간인 영화관은 대표적인 오락과 문화생활의 대명사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부친의 이야기 속의 영화관은 X세대의 '당구장'같은 개념이 아니었을까 싶다. 말씀 속의 영화관은 학생들이 몰래 갔다 걸리면 사달이 나는 곳이었다니 말이다. 은밀하고 불건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에 '극장' 좀 다니는 학생들은 좀 나가는 녀석들로 분류되기 일쑤였다 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사회상을 보려면 당시 영화들을 보면 이해가 가기 쉽다. 소위 '에로 영화', '야한 영화'라는 장르가 영화관의 대표 상영물이 되었고, 혈기왕성한 녀석들은 교모를 눌러쓰고 일탈을 일삼았다. 사실 '에로티즘'이라는 것은 '사회, 정치'와 연결되는 시대의 바로미터로 이해하는 학술적 경향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영화학자 김효정의 <야한 영화의 정치학>이라는 저서에도 자세한 탐구가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야한 영화’ 혹은 에로틱 하위 장르들은 당대의 지배 담론과의 충돌 혹은 대항으로 잉태된 문화적 산물임과 동시에 억압이 생산의 근거로 기능했음을 예시하는 사료이기도 하다. 영화 속 섹스는 때로는 저항과 혁명의 기제로, 자유의 암시로, 그리고 삶과 죽음의 메타포로 쓰이며 성적 엑스터시의 재현 수단을 초월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김효정 <야한 영화의 정치학> 책을 내며 중에서-
한국영화는 일제 강점기의 태동기를 넘어 건국의 혼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장판을 닫아 버린다. 그러다가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대 군사독재 정권의 시대에서야 비로소 봇물이 터지듯 산업적으로나 작품 수로나 양적 성장의 시기를 맞이한다. 엄격하다 못해 가혹한 검열과 통제의 시대는 영화라는 영상 대중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고급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고도의 비유의 시대, 은유와 숨은 그림 찾기의 시대가 된 것이다. 검열을 피해서라도 살색 넘치는 에로신을 추가하는 것이 비법 아닌 비법이 되었다. 이에 동조하여 서울의 아파트와 빌딩의 부감 신을 넣고, 부러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청춘들의 당혹함을 그려 넣는다. 두세 번 꼬아 생각해야 그 의미가 다가서는 연출이 도모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호스티스 장르'가 아닐까 싶다. 서사구조는 단순히 표현하지면 시골 젊은 여성의 서울 상경 수난기다. 풋풋하고 순수했던 젊은 여성이 상경하여 성적 타락과 인생의 좌절을 겪고 끝내 구원받지 못하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자극적인 요소이지만 호스티스는 노동의 계급 중 가장 밑단의 계층이었다. 그 노동 하급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와 시대의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보여주는데도 검열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이 '에로'라는 '야한' 요소였다.
반면에 호스티스 장르는 강간, 성적 노동착취, 남성 주도의 성의식을 드러내면서 여성을 그저 수동적인 피해자로 정형화시켰다는 반작용의 유산도 물려주었다. 이후 <뽕> 시리즈나 <애마부인> 시리즈로 이어지는 신군부 독재 80년대 에로 영화의 스토리 텔링에 스며들고, 호불호가 갈리고 반페미니즘 비판을 받는 김기덕의 영화 세계관에도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성적 도구가 된 처지를 스스로 타락이라 자책하는 여성들의 사고는 외부와 사회의 압박에 의한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르는데, 그녀들의 선택은 자살이거나 행방불명,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마무리 짓고 마는 것이다.
여성이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어서 가능하다는 인식은 한국의 공포영화에 이어졌다. <구미호>, <전설의 고향>, <산불>, <장화와 홍련>, <여고괴담>까지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적인 문제 해결은 죽어서나 한풀이로 가능하다는 상호 텍스트가 성립된다.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여러 편견과 핍박의 근간이 영화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친의 몰래 비디오를 열어 보던 '야한 영화'로 영화 청년으로 거듭났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엠마뉴엘 시리즈>, <차타레(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보면서 성적 욕구 외의 또 다른 호기심과 탐구심이 깊어진 기억이 깊게 남았다. 폴 벤호건의 영화나 미키 루크의 뇌쇄적 야한 영화, 그리고 봉만대 감독의 재기 발랄함과 일본 영상산업을 살린 로망 포르노까지, 에로티시즘은 작품성과 예술적, 미학적 평가를 떠나 영화를 산업으로 연착륙시켜 준 역할이 지대했다고 생각한다.
그 영화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 이유는 자극적인 말초적 영상 때문만은 아니다. 좋은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늘 '시대와 대화가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조망하고 사회의 부조리와 그늘을 직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영화, 먼 옛날의 이야기나 현실성 없는 상상의 이야기라도 '지금 우리는?'을 떠 올리게 해주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배꼽 잡는 코미디이든지 서걱서걱 소름 끼치는 공포물이든, 살색 찬란한 신음 자극적인 야한 영화이든지 좋은 영화라면 세상과 조응하기 마련이다. 1970년대 호스티스 물이나, 80년대의 에로물은 지금의 오락거리 일변의 블록버스터보다 작품성과 흥행성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의 영화가 살색을 둘러서 검열의 눈을 돌리게 해서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깊은 노력은 주목하고 인정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좋은 영화란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