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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치하늬커 Apr 04. 2020

[@Jeju]제주에서 캠핑카로 여행하기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캠핑 장소를 찾기까지

I am 행동대장

마음이 시키는 일은 어느샌가 행동에 옮기고 있는 행동대장은 원하는 모습을 보기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행동해야 알게 되는 것들에 확신을 갖는 편. 어쩌다 캡틴이 된 행동대장은 여행 크루 모으기도, 캠핑카 운전도, 회계도, 정박지 탐색도 자처하며 ‘자연스러운’ 캠핑을 꼭 만들어내야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감격과 환희의 감정을 느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분명히 깨닫게 된다.


LA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WBC를 시작하고는 한국으로 가는 첫 출장이었다. 1-2월, 총 9주간의 장기 출장이니 겨울이지만 한국에서도 사람을 모아 캠핑을 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싶었다. 새로운 사람을 모으기가 어려우면 지인들끼리라도 가면 되니까. 무조건 간다는 마음으로 WBC 공식 와인 한 병을 샀고, 이미 두꺼운 겨울옷으로 가득 찬 캐리어에 와인 무게를 추가했다.  


LA에서부터 들고 온 와인


“There is a love of wild nature in everybody.”
“거친 자연(야생)에 대한 사랑은 모두의 가슴속에 있다.”


라벨지에 쓰여있는 존 뮤어(John Muir)의 문구 때문에 WBC 공식주로 채택한 와인병. ‘국립공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뮤어는 자연보호 운동가로 평생을 미국 서부의 숲을 보존하는 데 헌신한 사람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존 뮤어에게 마음의 빚이 있지 않을까. 그의 스피릿이 담긴 와인을 제주 한라산 중턱 숲 한가운데서 개봉할 수 있었으니, 이번 캠핑은 성공이다. 



자연스러운’ 캠핑 성공시키기 대작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는 컨셉을 ‘자연’으로 잡았다. 굳이 캠핑카를 빌린 이유는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로 떠나 자연스럽게 발 가는 곳에 캠핑카를 세우고 자연을 가까이서 즐기는 데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어떤 분명한 상이 있었던 것 같다. 하루는 해변가 바로 앞, 하루는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 무심한 듯 주차된 캠핑카의 모습 같은 거 말이다. 자연스럽게 발 가는 곳에 캠핑카를 세워야 하는데, 어느샌가 원하는 이미지의 장소를 찾을 때까지 액셀을 밟고 있었다. 


금능 해수욕장 오토캠핑장 옆 공터. 캠핑카 바로 앞이 우리의 앞마당이었고, 바로 옆에는 산책길도 있었다.


첫째 날 정박지는 서쪽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가 멈춘 세 번째 해변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도립공원이나 야영지에 전화를 해봐도 주차장에 주차를 하거나 아예 캠핑카 사용이 어렵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무리 지도를 확대했다 축소해도 적절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쭉쭉 뻗은 나무숲을 찾기 위해 한라산 중턱까지는 올라가 보자는 각오로 무거운 캠핑카의 엑셀을 힘껏 밟으며 시속 40의 속도로 엉금엉금 1100 고지를 올랐다. 네비에 ‘법정사’를 찍고 가는 중에 옆으로 난 길이 보이면 고개를 훽 돌려 빠르게 눈으로 스캔을 했다. •고슴도치•는 적당해 보이는 곳을 지나갈 때마다 지도에 현재 위치 핀을 꽂으며 저장해 놨다. 우리가 찾는 조건은 무려 세 가지. 숲이 울창한지, 캠핑카가 들어갈 수 있는지.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작은 공터가 있는지.  



무계획 여행에도 정답이 있다?

법정사에 도착할 때까지 과감하게 핸들을 돌려 샛길로 빠지지 못하자 ‘자연스러운’ 캠핑 장소를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무계획 여행에 모두가 동의했지만, 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건 나니까 내가 완벽한 경험을 선사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죽어도 주차장에 주차하고 싶진 않았다.


‘아, 어제까지 진짜 좋았는데. 오늘 밤 망하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게 캠핑이 처음인 •마미손•의 얼굴을 계속 살피기도 했다. 특히 그녀에게 완벽한 첫 캠핑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마미손•은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 같이 찾으면 되지! 이 상황도 너무 재밌는데?”라는 말로 위안을 시켜줬다. 그 말에 우리가 지금 함께 같이 여행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과 함께라면 내가 정한 세 가지 조건에 딱 떨어지는 곳을 찾지 못해도 괜찮았다. 꽉 짜인 여행이 싫어서 캠핑카를 빌렸음에도 어느 순간 탐험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계획 여행에도 내 안에 정답이 있었던 거다.


법정사에서 차를 돌려 나오며 가장 마지막으로 스캔해 둔 곳에 일단 들어가 봤다. 쭉쭉 뻗은 나무는 아니었지만 나무들이 있었고, 공터 한쪽에는 텐트용 데크도 있었다. 이름 없는 야영지였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생애 첫 캠핑카 여행에서 흘린 눈물

이름 없는 야영지였지만 잘 정비되어 있었기에 그냥 써도 될까 싶던 차에 울타리 너머 인기척이 들렸다. 


-여기서 뭐하게?

-주차해놓고 캠핑카 안에서 잠만 자려고 하는데, 그래도 될까요?

-어디서 왔어?

-서울에서요!


거리가 멀어 서로 메아리를 쳤고, 그다음 허락의 말을 기다리는데 묵묵부답이다.  


-(…)

-유료로 사용료 내고 써도 될까요?

-(…)


'쫓겨나려나? 이 땅 주인이 아닌가? 무단 칩입으로 신고하려나?’ 온갖 생각을 하는 새에 인자한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분이 우리 앞까지 걸어 나오셨다. “화장실도 필요하지 않아? 전기는?” 되려 우리의 필요를 물어보시며 옆에 더 좋은 데가 있다며 캠핑카를 거기다 주차하란다. 


그렇게 만난 촌장님. 본인을 ‘촌장’으로 소개한 이 분은 30년을 생태 학습장을 만들며 자연 그대로를 보존해 온 분이었다. 명함을 받아보니 농학 박사이자 버섯 전문가. 6월 오픈 예정인 생태 학습 야영지 전체를 우리에게 내주셨다.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을 거라고 하니 갑자기 우리를 끌고 숲 속 깊은 곳으로 인도한 촌장님. 버섯을 구워 먹으라고 주셨다. 


한국의 존 뮤어를 만난 듯했다. 거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조성해 놓은 그 장소의 쭉쭉 뻗은 나무며 냄새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몇 시간 동안의 방황, 불평 하나 없던 크루들, 법정사, 일단 어디든 공터가 보이면 들어가 보자는 결정, 하필 그날 그 시간에 야영지를 어떻게 더 다듬을까 구상을 하려고 그곳에 계셨던 촌장님까지. 모든 게 자연스럽게 맞춰진 느낌이었다. 내 두 눈에는 행복해서 벅찬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다. 어디 하나 억지스러운 감정이 없었다. 


나는 크루들에게 "결혼식 때 보다 더 행복해!"라고 외쳤다. 같은 행복이어도 종류가 여러 개였다. 오랜만에 맛 본 감정이었다. 


행복감을 주체할 수 없었던 순간 (좌), 우연이 겹쳐져 둘째 날 정박지도 환상적 (우)



자연스럽게 도달하기

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운명의 연속된 반복에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짜여진 코스를 돌거나 너무 많은 여행 정보를 가지고 가는 형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둘째 날 정박지는 기가 막힌 우연이 모여 찾아졌다. ‘자연스러움'이 컨셉인 이번 여행은 내가 인생에서 어떤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가는지 알게 해 줬다. 구체적인 상은 그리되 결과에 목매달지 말기. 최대한 그 상에 다다르기까지 노력은 하되 조급해하지 말기. 


일단 행동으로 옮겨야 어디라도 갈 수 있지만, 억지로 하지는 않는 것.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날 흘린 눈물의 맛을 알아버렸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돌보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베이스캠프, Women's Basecamp(WBC)는 자연을 사랑하고 아웃도어를 즐기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입니다. 자연 속에서 생활해 보는 ‘캠핑’을 매개로 쉼을 되찾는 라이프 리트릿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WBC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womensbasecamp를 팔로우 하세요!







제주 캠핑카 여행 시리즈 글은 WBC Seoul 팀이 2/14-16에 파일럿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다녀온 내용을 바탕으로 각 크루들의 언어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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