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라는 이름의 결과에 대하여.
얼마 전, 나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지인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터라 서로의 삶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명상 안내자 과정을 공부하며 만났기에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이였다.)
"저는 쌤처럼 확고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저는 늘 질문은 많은데, 답을 얻지 못해 늘 갈증을 느꼈거든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나의 경험을 건넸다. "저는 이 일을 20년 넘게 해 왔고, 그 과정에서 쌓인 경험과 직관으로 일을 판단해요. 하지만 선생님은 또 다른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이니, 흔들리고 질문이 일어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 과정 자체가 쌤만의 결과가 될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불안이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성장통임을 인지하고, 더 멋진 결과를 위해 앞으로 10년간 꾸준히 노력해 보겠다며 미소 지었다.
삶은 마치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다른 관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과정을 통과해야만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직선적 구조와도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결과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정과 결과가 맞물려 있는 삶의 구조를 깨닫게 된 건, 최근 나눈 꽤 깊이 있는 대화들 덕분이었다.
얼마 전,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업계에서 나보다 더 오래 종사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6시간 넘게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작은 알베르 카뮈의 작품과 실존주의에 대한 대화였는데, SNS를 통해 무작위로 전달되는 크고 작은 뉴스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접하며 사는 요즘, 실존주의적인 질문들이 자칫 허무주의로 흐르기 쉽다는 대화 끝에 그는 자신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건축을 전공하던 시절, 컴퓨터도 없던 때라 밤새 손으로 과제를 했지. 완벽한 모델을 만들고 싶어 떼고 붙이기를 반복하던 내게 브루스라는 교수님이 물었어. '잘되어가나?' 나는 '이건 진짜 프로젝트가 아니에요. 매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투덜댔지. 그러자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그래? 그럼 뭐가 진짜 프로젝트지? 네가 지금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바로 결과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그때는 그 말이 터무니없게 들렸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 말이 진리였어.
또 이 이야기는 내가 2018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느꼈던 경험과 맞닿아있어. 30분 명상하는 것도 힘들어서 다리 통증과 머릿속 소음으로 괴로워하던 나는 나를 가이드해주던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지, '자꾸 잡생각이 떠오르고 다리도 아파서 집중이 안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내게 '당신은 아주 잘 해냈다. 머릿속 소음을 들었고 아픔을 알아차렸으니 이미 성공한 것이다.라고 말해주었거든."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덧붙여,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속 '도넛의 구멍'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등학생 시절 펼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책에서 그는 '도넛의 구멍은 비어있는 걸까, 존재하는 걸까?'라는 덧없이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데, 나는 그 책을 접한 순간부터 꽤 오래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하고 최근 들어서야 나의 답은 한 가지 생각으로 좁혀졌다. '구멍은 비어있으면서도 존재하는 것'. 비어있는 구멍(과정)이 없다면 도넛(결과)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즉, 과정과 결과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緣起法)의 핵심과 맞닿아 있었다. 차유고피유 차생고피생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 (Asmin sati idaṃ bhavati, asmin asati idaṃ na bhavati),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말처럼, 비어있는 구멍이 없다면 도넛이라는 형태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하루키가 던진 질문에 이제서야 나는 기꺼이 그것은 비어있음이기도 하고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답할 것이다. 과정과 결과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아가 이는 '공(空) / (Śūnyatā).'의 개념으로도 이어진다. 도넛의 구멍이 단순히 무(無)가 아니라 도넛을 도넛이게 하는 필수 요소이듯, 과정이라는 비어있음 또한 결과의 본질을 구성한다. 이렇듯 '공'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과정 자체가 곧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삶은 순차적인 단계를 넘어, 과정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여정인 것이다.
주변의 환경에 따라 관찰하는 대상의 크기나 컬러가 달라 보이는 착시 효과 이미지는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회색 박스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회색 박스는 그 존재가 같지만 우리는 다른 색이라 인지하게 된다. 그와 같이 삶에서도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우리를 둘러싼 요소들과의 비교와 영향 속에 실체를 놓치고 본질을 흐리곤 한다.
때문에 '알아차림' 즉,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차 경적소리 같은 소음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일어난 소리일 뿐임을 명료히 바라보는 순간, 그 소음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인생의 매 순간을 마감 기한이 있는 프로젝트처럼 대하며 결과를 쫓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삶은 순차적인 단계를 넘어, 과정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당신의 불안한 마음에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모든 것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신은 과정이자 결과 속에 살고 있다고 말이다.
이것이 곧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넛에 비유하고, 석가모니가 공(空)을 통해 이야기하였으며, 미하이 칙센트가 몰입(Flow)이라는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친구가 아래와 같은 멋진 말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Life is a process, not a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