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내'가 '나'를 바라본 강렬한 경험 그리고 두 가지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나의 부탁대로 당신이 하루 10-15분 정도라도 길 건너편의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자연스레 그래서 이제 어떻게 그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그전에 개인적인 과정을 좀 더 써보자면 나의 경우 초반엔 심리상담 도움을 받기도 했다. 회사 내에 심리 상담센터가 있어 개인별로 50분씩 세션이 가능한데, 지난 이야기지만 그 심리 상담의 과정을 써볼까 하고 간간히 수첩에 기록해 둔 글들이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의 누군가 때문에 힘들었고,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당시 상담사님은 왜곡된 거울을 이야기하시며, 왜곡된 거울 속 나를 자주 보게 되면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을 본인은 알지 않느냐고, 그러니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나 대신 나를 '알아차려' 주셨다. 또 다른 날의 대화 내용은 '수식어를 뺀 자신을 사랑하느냐'였다. 수식어를 뺀 나라는 것은 현재 나의 사회적 지위나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취미로 즐기는 일들에 대한 설명도 이름도 나이도 아닌, 그냥 '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어서 상담사님은 ‘그동안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실패해도 잘했어요. 그냥, 잘했어요. 그러니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여주고 사랑해 주세요. 용서해 주고 인정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나'를 '알아차려'주셨던 것이다.
심리 상담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대화가 얼마나 눈물이 나고 위로가 되는지. 그런데 돌아보니 심리 상담이란 그렇게 내가 보지 못하던 길 건너의 나를 바라보는 일을 나 대신해 주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책 '알아차림'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말 잘 듣는 에고(ego)를 갖게 되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인 것이다. 현재의 명상 안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명상이란 길은 심리상담사님이 내게 했던 그 질문들과 따듯한 위로 그리고 칭찬을 내가 나에게 해주는 과정이다. 나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며 저 맨바닥의 뿌리 감정까지 지켜보는 과정. 그렇게 내가 나를 알아차려주고 결국 에고(ego)를 소멸시키는 과정. 더 이상 요동치는 파도가 아닌 저 아래 잠잠한 대양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조금 더 궁금해졌는가? 자, 이제 당신이 한 번이라도 길 건너편의 당신을 바라본 경험이 있다는 전제하에, 행동을 통해 변화의 과정에 한 발 더 다가서 보자.
이 변화의 전제는 내 안에는 다양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림에서 시작한다. 동일자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만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변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변한다는 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뜻한다. 변화란 사고방식, 언행, 습관 그리고 정체성까지 바꾸는 것이며 마침내 삶의 난관을 극복할 때, 변화를 넘어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듯 진화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변할 수 있다. 오히려 작은 생명체들과 식물, 동물이 더 적극적으로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진화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생명체들은 환경에 의해 변화하지만 인간은 자각에 의해 의식적으로 환경을 바꾼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의식적으로 나를 바꾼다는 건 뭘까? 의식적으로 나를 바꾼다는 것은 습관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며, 습관적인 것을 바꾼다는 것은 곧 무의식적인 것들을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에서 진화를 ‘자연에서 생물들이 서로 선택 과정을 거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내가 유의미하게 짚고 싶은 단어는 '선택 과정'이다. 즉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변화하고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며 그럴 때 결국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앞에 쓴 글처럼 처음 길 건너편의 나를 자각한 뒤, 처음 한 일은 변하기 위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의식적인] > [선택 과정을 거쳐] > 궁극적으로는 [진화하는 일]. 그것이 내가 원하는 변화였다. 일상의 삶이 무의식적 행동에 의한 반응으로 채워지는 것이기에, 나의 무의식이 먼저 변해야 했고 그를 위해 의식적으로 뇌에 각인시키는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뇌과학적들이 새로운 뇌의 패턴, 즉 뉴런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이 지금 같은 생활 패턴을 갖게 된 것도 새로운 의지로 해오던 일이 반복되며 결국 무의식의 패턴이 되어 뇌가 그것을 알아서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 그 새로운 패턴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는 일에서 시작했고, 그 뒤엔 기상 시간을 앞당기는 것 그리고 언행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꾸는 순으로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쓰겠지만, 이는 모두 선택적 과정이었다. 그리고 365일을 한 장으로 볼 수 있는 달력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기록들을 가시적인 방법으로 시각을 통해 뇌에게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진화하지 않는 것들은 결국 소멸되거나 제자리에 머무른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안에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마음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구의 방식이자 우주의 본능이니까.
- 변화를 위한 2023년의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