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변화를 통한 진화는 결국 선택 과정에 의한 것이라는 글을 전했다. 오늘의 나처럼 오늘의 당신이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길 바라며, 이번엔 이 여정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보고자 한다.
‘길 건너편의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영화관의 스크린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본래 의식은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비어있는 하얀 스크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이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같은 것들은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영상과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길 건너편의 나를 바라보지 못하듯,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그 자체를 나라고 생각한다. 슬픈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면 나는 슬픔 자체이며, 비운의 스토리가 상영되고 있으면 나 역시 그 불운의 존재라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 스토리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본래 우리의 마음은 시간마다 장르를 달리하여 상영되는 영화가 아닌 비어 있는 스크린의 상태. 그 고요한 의식 상태이다. 그리고 스크린 위의 영화처럼,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과 생각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겠겠다는 의지가 명상을 시작하는 기본 태도이며, 다음은 바라보는 것. 즉, 의식의 스크린 위에 지금 어떤 감정과 생각이 영사되고 있는지를 바라보고 그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다음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이는 또한 대양의 상태에 비견되고는 한다. 비어있는 스크린의 상태의 고요함처럼 우리의 의식은 대양과 같다는 것이다. 대양의 상태처럼 그 자체로 여여한 마음. 하지만, 그 대양에 바람이 불면 어떠한가. 파도가 일어난다. 일상에서 감정의 파도가 일어날 때에 우리도 그러하다. 매섭게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고, 주변의 것을 덮치며,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요동친다.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억지로 그 감정과 생각을 덮으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명상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오해를 하는 이유이다. 요동치는 파도 위에 뚜껑을 씌운다고 한들 그것이 잠잠해질 리가 없다. 그 안에서 더 요동칠 뿐. 그래서 그 성난 파도를 먼저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그 거리감이 중요하다.
세상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불처럼 일어난 분노의 감정에도 그 끝은 있고, 끝없을 것 같은 사랑 또한 그 끝은 있다. 지금 당장 내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간질간질한 이 느낌에도 끝은 있으며, 힘들게 달려와 드디어 만끽하는 어떤 성취의 순간에도 끝은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라는 대양 위에 일어나는 그 파도에도 그 끝은 있다. 쓰나미처럼 몰려가 당신을 덮칠 것 같은 그 파도에도 끝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믿어라.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억지로 그 성난 파도를 눌러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 대양의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그저 지켜보고 바라보는 것이다. '아, 지금 일어나는 이 감정은 00이구나' 하고 이름 붙여주며 말이다. 성난 파도도 언젠가 대양의 상태로 돌아가듯, 당신이라는 스크린 위에서 지금 절찬리 상영 중인 그 감정과 생각도 결국은 막을 내리는 순간이 시간이 있으니. 그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당신이라는 빈 의식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바라보라. 나 자신이 그 성난 파도인 줄 알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감정에 휩싸여 나를 덮치는 것이 아니며, 나라는 존재가 지금 그 상영관에서 절찬리 상영 중인 그 영화 자체가 아니며, 길 건너의 나 자신도 아닌 그저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고 있는 평안한 의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가? 그렇다면, 그 파도에. 그 영화에 그리고 길 건너의 나 자신에 이름을 붙여보라. 지금 나의 파도는, 영화는, 길 건너의 나는 '어떠한' 상태이구나 하고. 이름 붙여보라.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마음이 평안해짐을 알게 될 것이다.
숲 속의 명상가로 유명한 마이클 싱어는 한 토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가슴속에 Rock(돌)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하나 다 꺼내 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가슴을 짓누르는 그 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그저 삶에서 가라앉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슴속에 어떤 돌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삶에서 발버둥 치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겨우겨우 숨을 내쉬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 가슴속 돌들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삶에서 막히지 않고 흐르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삶은 고통이 아니다. 삶은 단지 당신에게 알려주려 할 뿐이다. 당신이 그 신호를 눈치챌 때, 선택적으로 변화를 결심할 때, 당신은 진화할 수 있다. 또한 그 시작은 명상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싶다. 오늘도 잠시 시간을 내어 길 건너의 자신을, 스크린 위의 영화를 대양 위의 파도를 그리고 마음 속의 돌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질 때,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믿어도 좋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생각을 관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거의 동등한 수준의 생각이 아닌, 상위의 의식이기 때문이다.